줄넘기
줄넘기를 하고 있다.
지면을 넘기며
지면 위에 선다.
발아래 지면이 팽창될수록
망각이 깊어져
다른 페이지 속으로 섞여 들어간 거짓말들처럼 두 발은 부드럽게 흩어질 뿐
들러붙은 손
하나 둘 셋 심장을 후려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지금 보이지 않는 폭음을 들어 올리는 자는 누구인가
폭음은 어디로 가는가
줄넘기를 하고 있다.
줄 속에 들어가
구부러지는 줄
망각이 깊어져
― 이수명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연습을 한 사람만이 솟구친다
초등학교 입학 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실이 있다. 체육시간이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 체육 과목에는 ‘실기 평가’라는 무시무시한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학기 초에는 한동안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공을 차고 놀았지만, 학기말시험이 다가오면 지정된 종목에 대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평소에는 온화하던 체육선생님도 평가 때만 되면 냉혈한으로 변신했다. 마치 페널티킥을 차려고 골키퍼와 마주 선 기분이었다. 심지어 페널티킥이 실기 평가 종목일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 기가 찬 우연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지경이었다.
윗몸일으키기부터 공 멀리 던지기까지, 학기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들은 자신감과 도전정신에 도취돼 쾌재를 불렀다. 농구공으로 축구를 해도 척척 잘해낼 것 같은 아이들이 한 반에 꼭 몇 명씩은 있었다. 턱걸이와 오래달리기 시험을 보던 날, 나는 내가 그다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학창시절에 기계체조를 했다는 아버지와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한 어머니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3학년이 됐다. 학기 초에 체육선생님은 학기말에 시험을 볼 실기 종목이 ‘줄넘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올해의 생활체육으로 줄넘기가 선정됐다는 것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전신 지구력을 기르는 데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X자 뛰기, 2단 뛰기, 발 바꾸어 뛰기 등 열 개가 넘는 줄넘기 방식을 듣고 나는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줄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줄을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연습은 쉽지 않았다. 도무지 타이밍을 맞추기 가 힘들었던 것이다. 도약은 어색했고 줄을 돌리는 양손은 걸핏하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두 발은 부드럽게 흩어질 뿐” 사뿐히 줄을 넘지 못했다. 발끝이 줄에 걸릴 때마다 다음 단계 진출에 실패한 퀴즈쇼 참가자처럼 나는 몹시 침울해졌다. 달이 떠오르고 밤바람이 불어왔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끝끝내 줄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감이 잡혔다. 기어이 줄을 넘은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열 번, 스무 번을 거뜬히 넘은 것이다. 내가, 다름 아닌 내가, 해낸 것이다. 잠을 자면서도 애써 잡은 감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머릿속으로 줄을 넘는 상상을 하며 잠들었다. 그 덕분에 다음 날 아침, 찌뿌드드한 몸으로 겨우 눈을 떠야 했다.
실기 평가를 보는 날이 밝았다. 그날따라 유독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줄넘기를 질끈 쥔 오른손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윽고 호명이 된 나는 하늘 아래, 운동장 위에, 체육선생님 앞에, 아이들 옆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힘차게 줄을 돌렸다. 위아래, 앞뒤, 양옆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솟구침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순간의 경쾌함을 잊지 못한다. 엄청난 연습을 거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당시의 내게 있었다. “지면을 넘기며”, 그러니까 지면(地面)과 지면(紙面)을 번갈아 넘기며, 나는 더없이 경쾌하게 도약과 착지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날의 땅바닥은 “페이지”처럼 술술 넘어갔지만, 나는 이제 내가 서 있는 지면이 언제나 내 편일 수 없음을 잘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노력하는 것. 때때로 나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내 발에 내가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면 실패를 잊지 않기 위해 인상적인 페이지 귀퉁이처럼 그 순간을 고이 접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팽창”할 것이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폭음”처럼, 나는 묵묵히 강해질 것이다.
*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줄넘기를 하고 있다.
지면을 넘기며
지면 위에 선다.
발아래 지면이 팽창될수록
망각이 깊어져
다른 페이지 속으로 섞여 들어간 거짓말들처럼 두 발은 부드럽게 흩어질 뿐
들러붙은 손
하나 둘 셋 심장을 후려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지금 보이지 않는 폭음을 들어 올리는 자는 누구인가
폭음은 어디로 가는가
줄넘기를 하고 있다.
줄 속에 들어가
구부러지는 줄
망각이 깊어져
― 이수명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연습을 한 사람만이 솟구친다
초등학교 입학 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실이 있다. 체육시간이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 체육 과목에는 ‘실기 평가’라는 무시무시한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학기 초에는 한동안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공을 차고 놀았지만, 학기말시험이 다가오면 지정된 종목에 대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평소에는 온화하던 체육선생님도 평가 때만 되면 냉혈한으로 변신했다. 마치 페널티킥을 차려고 골키퍼와 마주 선 기분이었다. 심지어 페널티킥이 실기 평가 종목일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 기가 찬 우연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지경이었다.
윗몸일으키기부터 공 멀리 던지기까지, 학기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들은 자신감과 도전정신에 도취돼 쾌재를 불렀다. 농구공으로 축구를 해도 척척 잘해낼 것 같은 아이들이 한 반에 꼭 몇 명씩은 있었다. 턱걸이와 오래달리기 시험을 보던 날, 나는 내가 그다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학창시절에 기계체조를 했다는 아버지와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한 어머니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3학년이 됐다. 학기 초에 체육선생님은 학기말에 시험을 볼 실기 종목이 ‘줄넘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올해의 생활체육으로 줄넘기가 선정됐다는 것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전신 지구력을 기르는 데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X자 뛰기, 2단 뛰기, 발 바꾸어 뛰기 등 열 개가 넘는 줄넘기 방식을 듣고 나는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줄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줄을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연습은 쉽지 않았다. 도무지 타이밍을 맞추기 가 힘들었던 것이다. 도약은 어색했고 줄을 돌리는 양손은 걸핏하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두 발은 부드럽게 흩어질 뿐” 사뿐히 줄을 넘지 못했다. 발끝이 줄에 걸릴 때마다 다음 단계 진출에 실패한 퀴즈쇼 참가자처럼 나는 몹시 침울해졌다. 달이 떠오르고 밤바람이 불어왔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끝끝내 줄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감이 잡혔다. 기어이 줄을 넘은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열 번, 스무 번을 거뜬히 넘은 것이다. 내가, 다름 아닌 내가, 해낸 것이다. 잠을 자면서도 애써 잡은 감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머릿속으로 줄을 넘는 상상을 하며 잠들었다. 그 덕분에 다음 날 아침, 찌뿌드드한 몸으로 겨우 눈을 떠야 했다.
실기 평가를 보는 날이 밝았다. 그날따라 유독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줄넘기를 질끈 쥔 오른손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윽고 호명이 된 나는 하늘 아래, 운동장 위에, 체육선생님 앞에, 아이들 옆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힘차게 줄을 돌렸다. 위아래, 앞뒤, 양옆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솟구침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순간의 경쾌함을 잊지 못한다. 엄청난 연습을 거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당시의 내게 있었다. “지면을 넘기며”, 그러니까 지면(地面)과 지면(紙面)을 번갈아 넘기며, 나는 더없이 경쾌하게 도약과 착지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날의 땅바닥은 “페이지”처럼 술술 넘어갔지만, 나는 이제 내가 서 있는 지면이 언제나 내 편일 수 없음을 잘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노력하는 것. 때때로 나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내 발에 내가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면 실패를 잊지 않기 위해 인상적인 페이지 귀퉁이처럼 그 순간을 고이 접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팽창”할 것이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폭음”처럼, 나는 묵묵히 강해질 것이다.
*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