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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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도 아웃도어용 가격이 미쳤다

겉옷 이어 가격 거품 논란 확산…제일모직까지 시장에 뛰어들 채비

  • 김수현 국민일보 경제부 기자 siempre@kmib.co.kr

    입력2011-09-26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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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옷도 아웃도어용 가격이 미쳤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느는 가운데 주 5일제 정착이라는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맞물리면서 아웃도어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년 동안 간편하고 저렴한 트레이닝복을 입고도 잘만 오르던 뒷산에 뭐하러 비싼 아웃도어 의류를 풀세트로 입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공무원 한모(51) 씨는 남편이 뒷산에 산책을 나갈 때마다 새로 산 고어텍스 재킷과 기능성 바지를 챙겨 입는다며 어이없어 했다. 날마다 산책 겸 오르는 뒷산에 굳이 ‘히말라야 복장’을 하고 가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것. 한씨는 “아웃도어 제품의 인기를 틈타 업체가 풀세트 마케팅으로 가격을 올려 받는다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중곡동에 사는 주부 김주희(45) 씨는 한 달에 한 번 친목모임에 나갈 때마다 아웃도어 의류를 입는다. 등산이나 트레킹 등을 위한 모임은 아니지만, 얼마 전부터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참석하는 회원이 늘면서 옷차림을 바꿨다. 김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원이 골프웨어를 많이 입었는데 올해는 아웃도어 웨어가 대세”라고 귀띔했다.

    아웃도어 ‘국민복’ 시대

    ‘국민복’ 혹은 ‘교복 훈녀 패션’. 2011년 아웃도어 의류에 붙은 새로운 이름이다. 1년 전만 해도 아웃도어 의류는 ‘등산복’이나 ‘아저씨 옷’이라 부르는,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그 대상 영역이 넓어졌다.



    일단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인구 자체가 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웃도어 활동이라 하면 등산만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캠핑이나 트레킹, 하이킹은 물론 ‘올레길 걷기운동’ 등이 새로운 활동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주 5일제 정착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아웃도어족(族)이 생겨났다. 이들은 일상복이나 트레이닝복을 벗어 던지고 자연스레 아웃도어용 기능성 의류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웃도어 시장에 여성이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한 것도 폭발적인 성장세의 한 이유다. 검은색의 투박한 등산복 제작에 그치던 아웃도어 브랜드는 넓어진 아웃도어 활동 영역에 걸맞게 겸용이 가능하거나, 캐주얼복과 믹스매치해 코디할 수 있는 디자인의 옷을 다양하게 내놨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관계자는 “일명 ‘이연희 재킷’이라 부르는 노란색 고어텍스 재킷은 출시하자마자 전국 매장에서 모두 품절됐다”며 “아웃도어 시장에서 소외됐던 여성이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소비층의 증가는 중고생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교복에도 아웃도어 제품을 하나쯤 코디해줘야 하는 센스’가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웃도어 브랜드의 가방, 다운 점퍼, 바람막이 점퍼를 이용하는 중고생이 늘었다. 고등학교 2학년 김재연(17) 양은 “요즘엔 교복에 포인트가 되는 아웃도어 가방 하나는 메야 ‘교복 훈녀 패션’을 완성한다”면서 “루이비통 스피디 백을 명품계의 ‘3초백’이라 한다면 공효진의 빨강 배낭은 교복계의 ‘3초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복’ 아웃도어 의류의 가격은 결코 ‘국민복’스럽지 않다. 운동할 때 가볍게, 교복 위에 편히 입기엔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일부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은 소위 ‘명품’ 수준이다. 코오롱스포츠의 풀세트는 332만9000원, K2는 220만4000원이다. 노스페이스도 217만5000원짜리 풀세트를 판다. 웬만한 고어텍스 재킷은 40만 원 이상이며, 신발과 배낭도 각각 20만 원이 넘는다. 10만 원권 수표를 꺼내 티셔츠 한 장을 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비싼 가격의 아웃도어 의류를 입는 이들은 대부분 “비싼 만큼 가치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150만 원을 들여 아웃도어 의류 한 벌을 마련했다는 회사원 고준희(34) 씨는 “가격이 비싼 만큼 품질이 확실히 다르고 기능이 좋다는 걸 몸소 느낀다”며 “비싼 만큼 옷이 좋으니 사치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사 김민정(28) 씨 역시 “학교 산악회 선생님 사이에서도 아웃도어 의류와 관련해 은근히 경쟁심이 있다”면서 “아웃도어 의류는 평소에도 입을 수 있어 몇십만 원이라 해도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제품 가격은 명품 수준

    속옷도 아웃도어용 가격이 미쳤다

    아웃도어 판매 업체들이 아웃도어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면서 가격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다. 10만 원권 수표를 꺼내도 티셔츠 한 장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듯 고가 제품이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데 성공하면서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주요 백화점의 올해 상반기 아웃도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의 매출 증가율은 각각 47%, 44%. 이는 롯데백화점의 같은 기간 명품 매출 증가율(39.5%)보다 높다.

    업계 1위 노스페이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6000억 원대였다. 2013년에는 국내 단일 패션 브랜드 최초로 매출 1조 원 반열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오롱스포츠와 K2도 각각 4200억 원과 3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그 뒤를 이어 블랙야크와 컬럼비아가 40% 이상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며 2000억 원대 벽을 넘어섰다.

    인기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는 것도 고가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요즘 아웃도어 브랜드 모델은 현빈, 조인성, 고수 등 인기 남자배우는 물론 가수 이승기, 이효리, 2PM 등 톱스타 가 차지했다. 최근에는 소녀시대 윤아도 등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줄줄이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니 톱스타를 통한 마케팅 방법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며 “요즘 광고 시장에서도 아파트, 화장품이 아닌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상종가 쳤다고 평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2010년 이전의 아웃도어 브랜드 TV 광고는 특정 브랜드 중심으로 국내 산악인이나 외국인을 모델로 출연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최근 추세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특히 코오롱스포츠는 캠핑을 주로 하는 KBS ‘1박2일’의 이승기 등과 계약을 맺어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했다. K2는 해병대에 입대한 현빈을 모델로 택해 그가 직접 아웃도어 활동에 도전한다는 스토리텔링을 담은 광고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 백화점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 직원 이모(29) 씨는 “유명 모델만 보고 들어와 착용제품 전체를 풀세트로 사가는 고객이 적지 않다”며 “연예인을 보기가 쉽지 않은 지방 매장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에이글 관계자 역시 “얼마 전 ‘1박2일’ 여배우 특집편에서 배우 김하늘 씨가 신고 나온 초록색 레인부츠가 방송 직후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열풍에 힘입어 최근에는 겉옷이 아닌 아웃도어용 속옷까지 큰 인기를 끈다. 올해는 5~6월부터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장마가 길게 계속되면서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아웃도어용 속옷 수요가 지난해보다 급격히 증가했다. 컬럼비아 관계자는 “이번 여름에는 유독 더운 날씨와 습도 때문에 땀 흡수 및 배출이 잘되는 제품을 찾는 등산·트레킹족이 늘면서 매출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대형 패션업체 새로운 경쟁자로

    아웃도어용 속옷의 가격은 상의 3만~4만 원, 하의 2만~3만 원대로 일반 속옷보다 비싼 편이다. 하지만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 땀 흡수 효과가 탁월해 수요가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맥시프레쉬 플러스’라는 특허 소재를 속옷에 사용하는 노스페이스의 한 관계자는 “아웃도어용 속옷은 땀 냄새는 물론 장년층 특유의 몸 냄새까지 없애준다”면서 “반복 세탁에도 소취 및 항균 기능이 반영구적이고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아 집에서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속옷까지 비싼 아웃도어용 제품을 꼭 착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회사원 정혜진(41) 씨는 “남편이 자전거를 탈 때 입는다며 아웃도어용 속옷을 사달라고 해 실소를 금치 못했다”면서 “아무리 아웃도어 열풍이라 해도 업체의 꼼수가 너무 눈에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최홍상(32) 씨 역시 “아웃도어 의류 자체가 기능성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땀 흡수가 되는데, 아웃도어용 속옷까지 입는 것은 좀 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웃도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삼성그룹 계열사이자 메이저 의류업체인 제일모직도 내년 상반기 자사 브랜드 빈폴 아웃도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 고가 마케팅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국내 패션업체 가운데 아웃도어 라인이 없는 곳은 제일모직뿐이다. FnC 코오롱은 코오롱스포츠, LG패션은 라푸마, 이랜드는 버그하우스가 있다.

    올해 아웃도어 시장 매출이 지난해 3조 원을 뛰어넘어 4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제일모직에서도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뒤늦게나마 뛰어든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일모직의 패션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빈폴이 연간 5000억 원 매출을 달성했지만, 노스페이스는 빈폴을 앞서 6000억 원대를 넘겼다”며 “제일모직 처지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일모직은 이미 전문 인력으로 전담팀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대형 패션업체까지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미 포화 상태인 기존 브랜드 매출이 분산됨은 물론, 각종 광고 및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자연스레 아웃도어 제품 가격도 치솟으리라고 예상한다. 업체들의 피 튀기는 경쟁으로 가격이 오르면 그 부담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으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아웃도어 시장의 영역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돼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각 브랜드가 공격적인 홍보 전략을 내세우면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비쌀수록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에 고가 제품을 내놓는 과당경쟁을 업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도 제품을 고를 때 원하는 기능을 갖췄는지 살펴보고 유사한 제품을 꼼꼼히 비교한 뒤 신중히 구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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