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사상 초유의 정전대란이 일어났다. 이튿날 오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호떡집에 불난 것 같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다. 이 대통령의 질타에는 날이 서 있었다. 김우겸 한전 사장 직무대행은 몸을 움츠렸다. 이 대통령은 관계자들을 35분 동안 꾸짖었다. 책임소재를 따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 대통령 : (한전이) 자기 마음대로 (전력 공급을) 자르고 해도 되는 건가.
김 사장대행 : 전력거래소에서 그런 거 한다.
이 대통령 : 한전이 하는 건 뭔가.
김 사장대행 : 한전이 하는 건 전력 수요가 많아져 조절하는 부분에 대해…. 전력거래소 요청을 받아 사전에 조정했다.
이 대통령 : 거래소에서 단전하라고 하면 단전하느냐. 단전 전에 매뉴얼상 뭐가 없나.
김 사장대행 : 사전 홍보하게 돼 있다. 이번에는 워낙 계통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어서 사전 조치를 못했다.
이 대통령 : 그런 경우 단전을 자기 맘대로 해도 되나.
김 사장대행 : 급전 운영상 단전이 늦어지면 전국 계통이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그 상황은 전적으로 전력거래소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화풀이?
‘전국 계통이 무너지는 상황’은 블랙아웃(동시 정전)을 의미한다.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전력 인프라가 통째로 마비된다. 복구에 최소 2, 3일이 걸린다. 복구 기간엔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 9월 15일 한국은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다. 계통 전체에 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고자 순환 정전에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의 비판은 서슬이 퍼랬다. 초가을 무더위에 전력 수요 예측을 잘못해 전국이 암흑천지로 변할 뻔했으니, 이 대통령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한전이 아닌 지식경제부 산하 전력거래소를 질타해야 했다. 헛발질한 꼴이다. 참모진이 전력산업과 관련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도 보인다.
실상은 이렇다. 한전은 9·15 정전대란과 관련해 사실상 책임이 없다. ‘뇌’를 전력거래소에 내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전기라고 하면 으레 한전을 떠올리지만, 수급과 관련한 전권을 전력거래소가 행사한다. 2001년 4월 이전에는 한전이 전기 생산 및 판매를 독점했다.
시곗바늘을 잠시 거꾸로 돌려보자. 1999년 한국은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독점 전력회사인 한전의 분할 및 민영화가 골자였다. 한전의 발전 부문을 6개 회사로 나누고 전력거래소를 설치하는 1단계 구조 개편을 2001년 4월 완료했다. 한국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중부발전 등 6개사가 한전의 자회사 형태로 출범했다. 배전 부문도 발전 부문과 마찬가지로 분할한 뒤 민영화할 방침이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구조개편특별위원회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기대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다고 결론짓고 정부에 전력산업 구조 개편 중단을 요구했다. 시장원리를 도입했다가 부작용으로 고생한 영국과 민영화 이후 정전사태를 겪은 미국 캘리포니아 사례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지만,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에 불안을 야기하는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를 사실상 접었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민영화를 목표로 구조를 개편한 뒤 이후 계획을 중단함으로써 기형적 형태를 띤다. 전력거래소가 계통운영(SO)을 책임지고, 한전이 송전망운영(TO)을 맡는다. 발전은 한전의 발전 자회사가 한다. 전력거래소가 ‘뇌’, 발전 자회사가 ‘심장’, 한전이 ‘핏줄’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전력거래소의 전력 수요 예측에 따라 발전 자회사가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판다. 전력거래소는 예비전력 감소 정도에 따라 발전소 가동을 늘리거나 절전을 유도하는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한다.
지경부 등 관련 기관 “네 탓이오” 떠넘기기
“자기 마음대로 자르고 해도 되는 건가” “거래소에서 단전하라고 하면 단전하느냐”라는 이 대통령의 질타는 타깃을 잘못 겨냥했다. ‘서울역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 격’이라는 비판이 전력산업 종사자 사이에서 회자된다. 뇌가 명령하면 핏줄이 따라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사이가 좋지 않다. 소 닭 보듯 한다. 전력거래소는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출신 ‘낙하산’이 많다. 임원 11명 가운데 지경부 출신이 4명, 경북도 의원 출신이 1명이다. 이사장은 지경부 국장 출신. 직원이 307명인데, 간부 비율이 60%에 달한다. 발전 자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파는 과정에서 챙기는 수수료로 먹고산다. 한전이 먹여 살리는 낙하산의 천국이자 꿈의 직장인 셈이다.
전력거래소가 원자력, 화력, 수력 등 다양한 발전소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SO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배전 분할과 도소매 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정쩡한 구조 개편이므로 전력거래소의 SO와 한전 TO를 재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SO와 TO가 분리돼 전력거래소 계통 운영 담당자의 현장감이 저하했다” “잘못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이번 정전 사태를 불렀다”는 시각도 있다.
에릭 트라네 노드풀(북유럽 전력거래소)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중간에 멈춰 서 있는 건 이상하다. 어정쩡한 구조여서 사고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원리 도입이 어렵다면 과거처럼 발전, 송전, 배전 일원화 체제로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가 ‘대죄’를 저지른 것 맞지만, 순환 단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인위적으로 순환 정전에 나서지 않으면 기계적으로 단전해 블랙아웃을 예방하는데, 이 경우는 단전 범위가 넓고 피해가 크다. 또한 기계적 단전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인 터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1977년 블랙아웃 때 미국 뉴욕은 약탈의 도시로 바뀌었다.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양수발전기에서 전기를 일으켜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돌리는 식으로 전력망을 복구한다. 그러나 그 기간엔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산업시설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전력거래소는 소비량 예측에 실패한 데다 예비전력을 과다 계상했다. 예비전력으로 잡혔던 양수발전소엔 물이 없었다고 한다. 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유기적으로 소통하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발전소 25기(원전 3기 포함)가 정비를 이유로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요컨대 지경부, 전력거래소, 한전, 발전 자회사가 비상시에 대비한 시스템을 올바르게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네 탓만 외치는 꼴이다.
최근엔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전력 수요가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저렴해 다른 에너지 수요가 전력으로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은 점도 전기 수요를 부추겼다. 한전이 보유한 308개 발전기는 보통 1년 6개월마다 정비해야 한다. 소비가 많은 여름과 겨울을 피하면 봄가을에 정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시사철 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발전소 건설 예비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가 전력 수요 증가를 과소 예측해 발전소 건설을 취소하거나 지연해서다.
전문가들은 대응 방안을 크게 넷으로 나눈다. 첫째 SO, TO를 예전처럼 일원화해 예측 신뢰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예전처럼 ‘하나의 한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시민과 기업이 저항한다는 점에서 정권 차원의 부담이 크다. 셋째는 발전소를 새로 지어 예비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발전소를 짓는 데만 원자력 10년, 석탄 6~8년, 가스 4년이 필요하므로 단기 처방이 될 순 없다. 수요를 과다 예측해 발전소를 쓸데없이 많이 지으면 그것도 낭비다. 넷째가 가장 중요하다. 시민이 전기를 아껴 쓰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한전을 질타할 때 일부 참석자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토를 달지 못했다. 책임소재를 따지겠다는 이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전의 상임이사 7명 중 대구·경북(TK) 출신이 4명, 한나라당 출신이 1명이다. 11개 자회사 이사 및 감사 22명 중 17명이 TK, 고려대, 한나라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다. 김중겸 한전 신임 사장도 TK, 고려대, 현대건설 출신이다. 전력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비전문가가 경영하고 감사할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 대통령 : (한전이) 자기 마음대로 (전력 공급을) 자르고 해도 되는 건가.
김 사장대행 : 전력거래소에서 그런 거 한다.
이 대통령 : 한전이 하는 건 뭔가.
김 사장대행 : 한전이 하는 건 전력 수요가 많아져 조절하는 부분에 대해…. 전력거래소 요청을 받아 사전에 조정했다.
이 대통령 : 거래소에서 단전하라고 하면 단전하느냐. 단전 전에 매뉴얼상 뭐가 없나.
김 사장대행 : 사전 홍보하게 돼 있다. 이번에는 워낙 계통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어서 사전 조치를 못했다.
이 대통령 : 그런 경우 단전을 자기 맘대로 해도 되나.
김 사장대행 : 급전 운영상 단전이 늦어지면 전국 계통이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그 상황은 전적으로 전력거래소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화풀이?
‘전국 계통이 무너지는 상황’은 블랙아웃(동시 정전)을 의미한다.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전력 인프라가 통째로 마비된다. 복구에 최소 2, 3일이 걸린다. 복구 기간엔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 9월 15일 한국은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다. 계통 전체에 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고자 순환 정전에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의 비판은 서슬이 퍼랬다. 초가을 무더위에 전력 수요 예측을 잘못해 전국이 암흑천지로 변할 뻔했으니, 이 대통령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한전이 아닌 지식경제부 산하 전력거래소를 질타해야 했다. 헛발질한 꼴이다. 참모진이 전력산업과 관련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도 보인다.
실상은 이렇다. 한전은 9·15 정전대란과 관련해 사실상 책임이 없다. ‘뇌’를 전력거래소에 내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전기라고 하면 으레 한전을 떠올리지만, 수급과 관련한 전권을 전력거래소가 행사한다. 2001년 4월 이전에는 한전이 전기 생산 및 판매를 독점했다.
시곗바늘을 잠시 거꾸로 돌려보자. 1999년 한국은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독점 전력회사인 한전의 분할 및 민영화가 골자였다. 한전의 발전 부문을 6개 회사로 나누고 전력거래소를 설치하는 1단계 구조 개편을 2001년 4월 완료했다. 한국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중부발전 등 6개사가 한전의 자회사 형태로 출범했다. 배전 부문도 발전 부문과 마찬가지로 분할한 뒤 민영화할 방침이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구조개편특별위원회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기대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다고 결론짓고 정부에 전력산업 구조 개편 중단을 요구했다. 시장원리를 도입했다가 부작용으로 고생한 영국과 민영화 이후 정전사태를 겪은 미국 캘리포니아 사례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지만,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에 불안을 야기하는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를 사실상 접었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민영화를 목표로 구조를 개편한 뒤 이후 계획을 중단함으로써 기형적 형태를 띤다. 전력거래소가 계통운영(SO)을 책임지고, 한전이 송전망운영(TO)을 맡는다. 발전은 한전의 발전 자회사가 한다. 전력거래소가 ‘뇌’, 발전 자회사가 ‘심장’, 한전이 ‘핏줄’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전력거래소의 전력 수요 예측에 따라 발전 자회사가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판다. 전력거래소는 예비전력 감소 정도에 따라 발전소 가동을 늘리거나 절전을 유도하는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9월 16일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본사를 방문해 정전사태를 질책하고 철저한 대책 마련을 당부하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자르고 해도 되는 건가” “거래소에서 단전하라고 하면 단전하느냐”라는 이 대통령의 질타는 타깃을 잘못 겨냥했다. ‘서울역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 격’이라는 비판이 전력산업 종사자 사이에서 회자된다. 뇌가 명령하면 핏줄이 따라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사이가 좋지 않다. 소 닭 보듯 한다. 전력거래소는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출신 ‘낙하산’이 많다. 임원 11명 가운데 지경부 출신이 4명, 경북도 의원 출신이 1명이다. 이사장은 지경부 국장 출신. 직원이 307명인데, 간부 비율이 60%에 달한다. 발전 자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파는 과정에서 챙기는 수수료로 먹고산다. 한전이 먹여 살리는 낙하산의 천국이자 꿈의 직장인 셈이다.
전력거래소가 원자력, 화력, 수력 등 다양한 발전소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SO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배전 분할과 도소매 경쟁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정쩡한 구조 개편이므로 전력거래소의 SO와 한전 TO를 재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SO와 TO가 분리돼 전력거래소 계통 운영 담당자의 현장감이 저하했다” “잘못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이번 정전 사태를 불렀다”는 시각도 있다.
에릭 트라네 노드풀(북유럽 전력거래소)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중간에 멈춰 서 있는 건 이상하다. 어정쩡한 구조여서 사고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원리 도입이 어렵다면 과거처럼 발전, 송전, 배전 일원화 체제로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가 ‘대죄’를 저지른 것 맞지만, 순환 단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인위적으로 순환 정전에 나서지 않으면 기계적으로 단전해 블랙아웃을 예방하는데, 이 경우는 단전 범위가 넓고 피해가 크다. 또한 기계적 단전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인 터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1977년 블랙아웃 때 미국 뉴욕은 약탈의 도시로 바뀌었다.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양수발전기에서 전기를 일으켜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돌리는 식으로 전력망을 복구한다. 그러나 그 기간엔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산업시설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전력거래소는 소비량 예측에 실패한 데다 예비전력을 과다 계상했다. 예비전력으로 잡혔던 양수발전소엔 물이 없었다고 한다. 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유기적으로 소통하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발전소 25기(원전 3기 포함)가 정비를 이유로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요컨대 지경부, 전력거래소, 한전, 발전 자회사가 비상시에 대비한 시스템을 올바르게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네 탓만 외치는 꼴이다.
최근엔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전력 수요가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저렴해 다른 에너지 수요가 전력으로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은 점도 전기 수요를 부추겼다. 한전이 보유한 308개 발전기는 보통 1년 6개월마다 정비해야 한다. 소비가 많은 여름과 겨울을 피하면 봄가을에 정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시사철 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발전소 건설 예비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가 전력 수요 증가를 과소 예측해 발전소 건설을 취소하거나 지연해서다.
전문가들은 대응 방안을 크게 넷으로 나눈다. 첫째 SO, TO를 예전처럼 일원화해 예측 신뢰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예전처럼 ‘하나의 한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시민과 기업이 저항한다는 점에서 정권 차원의 부담이 크다. 셋째는 발전소를 새로 지어 예비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발전소를 짓는 데만 원자력 10년, 석탄 6~8년, 가스 4년이 필요하므로 단기 처방이 될 순 없다. 수요를 과다 예측해 발전소를 쓸데없이 많이 지으면 그것도 낭비다. 넷째가 가장 중요하다. 시민이 전기를 아껴 쓰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한전을 질타할 때 일부 참석자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토를 달지 못했다. 책임소재를 따지겠다는 이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전의 상임이사 7명 중 대구·경북(TK) 출신이 4명, 한나라당 출신이 1명이다. 11개 자회사 이사 및 감사 22명 중 17명이 TK, 고려대, 한나라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다. 김중겸 한전 신임 사장도 TK, 고려대, 현대건설 출신이다. 전력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비전문가가 경영하고 감사할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