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정치인일 때 그는 보수의 책사(策士)로 불렸다.
“나이 일흔 넘은 것 의식하지 않고 살아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귀가해요. 집사람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죠.”
1939년 8월 8월(음력)생.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공보수석,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회창 한나라당’에선 여의도연구소를 이끌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 존립이 위태로울 당시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도왔다. 천막당사로 상징되는 개혁 프로그램을 주도해 위기를 타개했다.
평화재단 윤여준 평화교육원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어색한 듯 어울린다. 안 원장은 그를 멘토(mentor·경험 없는 사람에게 조언과 도움을 베푸는 유경험자)로 여긴다. 윤 원장은 안 원장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질을 하나 갖춰야 합니다. 공적 헌신성이 그것입니다. 올바른 대통령이 되려면 공공성을 위한 봉사정신, 희생정신을 갖춰야 하죠. 공공성이 없으면 권력 사유의식이 생깁니다.”
그는 “안 원장 같은 품성을 지닌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어색한 두 사람? 안철수 원장의 멘토
“의사였습니다. ‘의사는 나 말고도 많다’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변신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잘 만드는 사람은 안 원장밖에 없었어요.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번 것도 아닙니다. 7년 동안 공공을 위해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보급했어요. 이후의 행적도 마찬가지고요. 안 원장은 무서운 공적 헌신성을 지녔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겠다 싶더군요. 정치권, 공직 사회에선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은 공적 헌신성이 부족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무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MB(이명박 대통령)도 유능하죠.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 취급받는 이유는 공적 헌신성이 부족해서예요. 유능함을 활용해 공공에 봉사하지 않고,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만 능력을 쓴 겁니다. 여기에 헌신성이라는 기초가 없으면 좋은 집을 짓지 못한다는 게 공직에 있으면서 느낀 사실입니다.”
25개 도시 순회 청춘콘서트 기획
8월 28일 경남 진주시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안 원장과 ‘시골의사’ 박경철(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나란히 섰다. 전국 순회 대담인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콘서트를 마친 안 원장 주위로 청중과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안 원장이 윤 원장을 따로 불러 “이분이 내 멘토”라고 소개했다.
▼ 청년들이 멘토라고 여기는 사람의 멘토니 할아버지 멘토네요.
“과분하죠(웃음).”
그는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발제자이자 기획자다.
▼ 멘토 노릇은 잘하고 있습니까.
“의기투합한 겁니다. 안철수, 박경철 두 분과 대화하면서 문제의식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기성세대로서 청년에게 ‘미안하다, 가슴 아프다’라는 위로와 격려를 해줘야 한다, 건전한 문제의식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무한 경쟁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쫓기듯 사는데, 뭐가 잘못돼 쫓기는지를 깨우쳐야 해요. 평화재단이 자금과 인프라를 두 분에게 제공합니다. 스태프가 20명쯤 돼요. 서포터스(자원봉사자)를 따로 모집하는데, 2000명 홀에서 할 때는 120명, 1000명 홀에서 할 때는 80명을 투입합니다.”
6월 29일 대전에서 시작한 청춘콘서트는 이날까지 20개 도시를 돌았다. 입소문만으로 3만 명이 모였다. 9월 9일 경북대에서 열리는 청춘콘서트 접수 때는 신청 폭주로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지금껏 2000명 가까운 젊은이가 서포터스로 참여했다.
“서포터스 되는 것도 경쟁이에요. 9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마지막 청춘콘서트가 열립니다. 7000명을 수용하는 곳인데 걱정이 커요. 지방에서 올라오겠다는 청중만 5000명입니다. 관광버스 100대가 필요하죠. 1만 명 넘으면 사고가 날 수 있어요. 장충단공원에 스크린을 설치해 중계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동원할 수 없는 인원이에요. 자발이 아닌 강권으로는 그렇게 모을 수 없습니다.”
▼ 안 원장이 강연을 이용해 정치하는 거군요.
“25개 도시를 4개월간 순회하는 것은 정치 행위죠.”
그는 비(非)정치의 정치라는 표현을 썼다.
“협의로는 정치가 아니지만, 광의로는 정치하는 겁니다.”
그는 안 원장에게 현실 정치에 뛰어들 책임이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
“젊은이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가졌다는 뜻이라고 강조합니다.”
▼ 안 원장이 협의의 정치에 나설 생각이 있나요.
“아니요. 못 한다고 해요.”
▼ 설득하는 중이군요.
“그렇죠.”
▼ 대안 없이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
“안 원장은 이렇게 말해요. ‘지식인은 말로 행동합니다. 말하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대안을 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제기만 하면 됩니다. 정치인, 관료가 문제제기를 받아서 대안을 만들어야 해요.’ 맞는 말 아닌가요. 대안을 마련하라고 국민이 세금으로 정치인, 관료를 뒷받침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긋난 부분이 무엇인지, 뭐가 잘못 돌아가는지 정치인이든 관료든 들여다보려 하질 않아요.”
월간 ‘신동아’가 창간 80주년 특집으로 여론조사 회사 리서치앤리서치와 함께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을 물었다. 안 원장은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가 꼽은 1위는 안 원장, 2위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도 1위가 안 원장이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집단에서 안 원장은 문 이사장,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에 이은 3위. 보수와 중도가 선호하고 진보도 주목하는 ‘광의의 정치인’인 셈이다. 안 원장은 연령대별 지지율도 고르게 나타났다. 19~29세에선 1위, 30·40대와 60대 이상에선 2위를 차지했다.
정통 보수의 길을 걸어온 윤 원장에게 “안 원장은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라고 물었다.
“보수, 진보 한쪽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안 원장 스스로도 ‘보수, 진보를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해요. 안 원장에게 나는 보수, 진보가 아닌 합리와 비합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해줬습니다. 안 원장은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눈다고 하더군요. 합리와 비합리, 상식과 비상식, 비슷하지 않나요?”
그는 안 원장이 합리적이지 않은 보수(保守)를 합리적으로 보수(補修)하는 구실을 맡길 바라는 듯했다.
“구조적 문제를 고쳐야 합니다. 보수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일부 세력은 고치지 말자고 합니다. 정치 세력이 고치지 않으면 시민이 일어섭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한국의 근간이에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계속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런데 공정한 시장주의, 건강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면 좌파라고 몰아세웁니다. 우파의 저명한 교수가 나 보고 좌파라 하더군요. 내가 좌파래요. 자기가 선 자리가 오른쪽 끝인 것을 모르는 겁니다. 고치지 말자는 거예요.”
그의 말을 들으니 서울대 강원택 교수가 쓴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가 떠올랐다. 영국 보수당 역사를 담은 책이다.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도전이 거세던 1920년대 보수당을 이끈 스탠리 볼드윈은 ‘새로운 보수주의’를 제창했다. 보수당이 반(反)노동자 세력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사회 조화’ ‘산업적 동반자 관계’를 부르짖었다. 보수당은 이 같은 선제적 대응을 통해 보수주의를 지켜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공정한 사회’ ‘공생 발전’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이 대통령이 내놓은 어젠다에 회의적이다.
“MB가 잘 못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쑥스러워요. 대통령이 시대의 어젠다를 내놓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어젠다가 좋다고 신뢰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공·사생활을 통해 공정을 살리려 노력한다는 것을 느끼는 국민이 별로 없으면 공허한 거죠. 4대강 공사하면서 녹색성장을 외치면 누가 신뢰합니까. 전략을 수립한 후 어젠다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아요. 말의 신뢰를 저버린 사람이 내놓은 어젠다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개념이 풍화(風化)하고 있지 않나요?”
그는 한국 보수가 “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前 대표는 품격이 다른 분”
“한국의 이념은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결합입니다. 자유주의는 사민주의적 가치를 포함하죠. 과거에 보수 세력이 자유주의 이름으로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를 억압한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나쁜 것이라면서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세력이 등장했죠. 산업화는 보수 세력이 이룬 빛 아닙니까. 보수가 이렇게 고백해야 해요. ‘빛을 보는 과정에서 확신을 갖고 행한 일 가운데 되돌아보니 잘못된 것들이 있었다. 지금부터 고치겠다.’ 산업화는 보수 세력의 빛나는 성과지만 정부, 관료의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닙니다.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어요.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 포용하는 보수를 지향하지 않으면 도덕적 권위를 잃어요. 그런 현상이 지금 나타나지 않나요? 보수의 가치는 관용, 포용, 배려, 연민에 있다는 걸 깨우쳐야 합니다.”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고백 적임자 가운데 한 명이겠군요.
“그렇죠.”
▼ 박 전 대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잘하겠지, 뭐. 나만큼 박 전 대표를 가까이서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는 분이 또 있겠어요. 품격이 다른 분이에요.”
그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도 회의적이다.
“김정일은 나쁘죠. 그렇지만 북한 정권을 담당하니 대화를 안 할 도리가 없어요.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는 관여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 조짐이 나타나던데, 방향 전환이 지나치게 늦었어요.”
▼ 포퓰리즘 논란이 거셉니다.
그는 “포퓰리즘은 망국적이다. 막아야 한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정이 주택, 교육, 의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자식을 대학 보내기 버겁잖아요. 오래전부터 많은 국가가 복지를 제공했어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우니 국가에 ‘도와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걸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부당합니다. 보편적 복지는 국가가 가야 할 길이에요. 보편적 복지를 목표로 세우고 재정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으로 복지를 늘려가야 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면 안 돼죠.”
그는 비합리, 비상식이 아닌 합리,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꾼다. 보수(保守)의 보수(補修)를 시대정신으로 여기는 듯했다. 또한 합리, 상식의 상징으로 ‘안철수’라는 인물에게 기대를 건다. 그는 현실 인식이 적확한 전략가, 기획통으로 이름 높았다. 총기(聰氣)가 예전과 같은지, 예전만 못 한지 지켜볼 일이다.
“나이 일흔 넘은 것 의식하지 않고 살아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귀가해요. 집사람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죠.”
1939년 8월 8월(음력)생.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공보수석,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회창 한나라당’에선 여의도연구소를 이끌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 존립이 위태로울 당시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도왔다. 천막당사로 상징되는 개혁 프로그램을 주도해 위기를 타개했다.
평화재단 윤여준 평화교육원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어색한 듯 어울린다. 안 원장은 그를 멘토(mentor·경험 없는 사람에게 조언과 도움을 베푸는 유경험자)로 여긴다. 윤 원장은 안 원장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질을 하나 갖춰야 합니다. 공적 헌신성이 그것입니다. 올바른 대통령이 되려면 공공성을 위한 봉사정신, 희생정신을 갖춰야 하죠. 공공성이 없으면 권력 사유의식이 생깁니다.”
그는 “안 원장 같은 품성을 지닌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어색한 두 사람? 안철수 원장의 멘토
“의사였습니다. ‘의사는 나 말고도 많다’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변신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잘 만드는 사람은 안 원장밖에 없었어요.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번 것도 아닙니다. 7년 동안 공공을 위해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보급했어요. 이후의 행적도 마찬가지고요. 안 원장은 무서운 공적 헌신성을 지녔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겠다 싶더군요. 정치권, 공직 사회에선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은 공적 헌신성이 부족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무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MB(이명박 대통령)도 유능하죠.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 취급받는 이유는 공적 헌신성이 부족해서예요. 유능함을 활용해 공공에 봉사하지 않고,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만 능력을 쓴 겁니다. 여기에 헌신성이라는 기초가 없으면 좋은 집을 짓지 못한다는 게 공직에 있으면서 느낀 사실입니다.”
25개 도시 순회 청춘콘서트 기획
8월 28일 경남 진주시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안 원장과 ‘시골의사’ 박경철(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나란히 섰다. 전국 순회 대담인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콘서트를 마친 안 원장 주위로 청중과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안 원장이 윤 원장을 따로 불러 “이분이 내 멘토”라고 소개했다.
▼ 청년들이 멘토라고 여기는 사람의 멘토니 할아버지 멘토네요.
“과분하죠(웃음).”
그는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발제자이자 기획자다.
▼ 멘토 노릇은 잘하고 있습니까.
“의기투합한 겁니다. 안철수, 박경철 두 분과 대화하면서 문제의식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기성세대로서 청년에게 ‘미안하다, 가슴 아프다’라는 위로와 격려를 해줘야 한다, 건전한 문제의식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무한 경쟁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쫓기듯 사는데, 뭐가 잘못돼 쫓기는지를 깨우쳐야 해요. 평화재단이 자금과 인프라를 두 분에게 제공합니다. 스태프가 20명쯤 돼요. 서포터스(자원봉사자)를 따로 모집하는데, 2000명 홀에서 할 때는 120명, 1000명 홀에서 할 때는 80명을 투입합니다.”
6월 29일 대전에서 시작한 청춘콘서트는 이날까지 20개 도시를 돌았다. 입소문만으로 3만 명이 모였다. 9월 9일 경북대에서 열리는 청춘콘서트 접수 때는 신청 폭주로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지금껏 2000명 가까운 젊은이가 서포터스로 참여했다.
“서포터스 되는 것도 경쟁이에요. 9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마지막 청춘콘서트가 열립니다. 7000명을 수용하는 곳인데 걱정이 커요. 지방에서 올라오겠다는 청중만 5000명입니다. 관광버스 100대가 필요하죠. 1만 명 넘으면 사고가 날 수 있어요. 장충단공원에 스크린을 설치해 중계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동원할 수 없는 인원이에요. 자발이 아닌 강권으로는 그렇게 모을 수 없습니다.”
▼ 안 원장이 강연을 이용해 정치하는 거군요.
“25개 도시를 4개월간 순회하는 것은 정치 행위죠.”
그는 비(非)정치의 정치라는 표현을 썼다.
“협의로는 정치가 아니지만, 광의로는 정치하는 겁니다.”
그는 안 원장에게 현실 정치에 뛰어들 책임이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
“젊은이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가졌다는 뜻이라고 강조합니다.”
▼ 안 원장이 협의의 정치에 나설 생각이 있나요.
“아니요. 못 한다고 해요.”
▼ 설득하는 중이군요.
“그렇죠.”
▼ 대안 없이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
“안 원장은 이렇게 말해요. ‘지식인은 말로 행동합니다. 말하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대안을 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제기만 하면 됩니다. 정치인, 관료가 문제제기를 받아서 대안을 만들어야 해요.’ 맞는 말 아닌가요. 대안을 마련하라고 국민이 세금으로 정치인, 관료를 뒷받침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긋난 부분이 무엇인지, 뭐가 잘못 돌아가는지 정치인이든 관료든 들여다보려 하질 않아요.”
월간 ‘신동아’가 창간 80주년 특집으로 여론조사 회사 리서치앤리서치와 함께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을 물었다. 안 원장은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가 꼽은 1위는 안 원장, 2위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도 1위가 안 원장이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집단에서 안 원장은 문 이사장,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에 이은 3위. 보수와 중도가 선호하고 진보도 주목하는 ‘광의의 정치인’인 셈이다. 안 원장은 연령대별 지지율도 고르게 나타났다. 19~29세에선 1위, 30·40대와 60대 이상에선 2위를 차지했다.
정통 보수의 길을 걸어온 윤 원장에게 “안 원장은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라고 물었다.
“보수, 진보 한쪽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안 원장 스스로도 ‘보수, 진보를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해요. 안 원장에게 나는 보수, 진보가 아닌 합리와 비합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해줬습니다. 안 원장은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눈다고 하더군요. 합리와 비합리, 상식과 비상식, 비슷하지 않나요?”
그는 안 원장이 합리적이지 않은 보수(保守)를 합리적으로 보수(補修)하는 구실을 맡길 바라는 듯했다.
“구조적 문제를 고쳐야 합니다. 보수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일부 세력은 고치지 말자고 합니다. 정치 세력이 고치지 않으면 시민이 일어섭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한국의 근간이에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계속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런데 공정한 시장주의, 건강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면 좌파라고 몰아세웁니다. 우파의 저명한 교수가 나 보고 좌파라 하더군요. 내가 좌파래요. 자기가 선 자리가 오른쪽 끝인 것을 모르는 겁니다. 고치지 말자는 거예요.”
그의 말을 들으니 서울대 강원택 교수가 쓴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가 떠올랐다. 영국 보수당 역사를 담은 책이다.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도전이 거세던 1920년대 보수당을 이끈 스탠리 볼드윈은 ‘새로운 보수주의’를 제창했다. 보수당이 반(反)노동자 세력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사회 조화’ ‘산업적 동반자 관계’를 부르짖었다. 보수당은 이 같은 선제적 대응을 통해 보수주의를 지켜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공정한 사회’ ‘공생 발전’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이 대통령이 내놓은 어젠다에 회의적이다.
“MB가 잘 못 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쑥스러워요. 대통령이 시대의 어젠다를 내놓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어젠다가 좋다고 신뢰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공·사생활을 통해 공정을 살리려 노력한다는 것을 느끼는 국민이 별로 없으면 공허한 거죠. 4대강 공사하면서 녹색성장을 외치면 누가 신뢰합니까. 전략을 수립한 후 어젠다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아요. 말의 신뢰를 저버린 사람이 내놓은 어젠다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개념이 풍화(風化)하고 있지 않나요?”
그는 한국 보수가 “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8월 12일 경남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한국의 이념은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결합입니다. 자유주의는 사민주의적 가치를 포함하죠. 과거에 보수 세력이 자유주의 이름으로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를 억압한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나쁜 것이라면서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세력이 등장했죠. 산업화는 보수 세력이 이룬 빛 아닙니까. 보수가 이렇게 고백해야 해요. ‘빛을 보는 과정에서 확신을 갖고 행한 일 가운데 되돌아보니 잘못된 것들이 있었다. 지금부터 고치겠다.’ 산업화는 보수 세력의 빛나는 성과지만 정부, 관료의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닙니다.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어요.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 포용하는 보수를 지향하지 않으면 도덕적 권위를 잃어요. 그런 현상이 지금 나타나지 않나요? 보수의 가치는 관용, 포용, 배려, 연민에 있다는 걸 깨우쳐야 합니다.”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고백 적임자 가운데 한 명이겠군요.
“그렇죠.”
▼ 박 전 대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잘하겠지, 뭐. 나만큼 박 전 대표를 가까이서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는 분이 또 있겠어요. 품격이 다른 분이에요.”
그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도 회의적이다.
“김정일은 나쁘죠. 그렇지만 북한 정권을 담당하니 대화를 안 할 도리가 없어요.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는 관여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 조짐이 나타나던데, 방향 전환이 지나치게 늦었어요.”
▼ 포퓰리즘 논란이 거셉니다.
그는 “포퓰리즘은 망국적이다. 막아야 한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정이 주택, 교육, 의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자식을 대학 보내기 버겁잖아요. 오래전부터 많은 국가가 복지를 제공했어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우니 국가에 ‘도와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걸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부당합니다. 보편적 복지는 국가가 가야 할 길이에요. 보편적 복지를 목표로 세우고 재정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으로 복지를 늘려가야 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면 안 돼죠.”
그는 비합리, 비상식이 아닌 합리,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꾼다. 보수(保守)의 보수(補修)를 시대정신으로 여기는 듯했다. 또한 합리, 상식의 상징으로 ‘안철수’라는 인물에게 기대를 건다. 그는 현실 인식이 적확한 전략가, 기획통으로 이름 높았다. 총기(聰氣)가 예전과 같은지, 예전만 못 한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