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펄린(trampoline). 어린 시절 동네에 따라 봉봉, 방방, 팡팡, 퐁퐁 등으로 다르게 부르던 놀이기구의 영어 명칭이다. 쇠틀을 따라 팽팽하게 연결한 그물망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보면 자기 키만큼이나 높게 뛸 수 있었던, 그래서 잠시나마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던 바로 그 놀이기구. 이 단어에서 스펠링을 살짝 바꿔 ‘트램폴린(Trampauline)’이라 쓰면 아름답고 기품 있는 전자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여성 2인조 신스팝(synthpop) 밴드의 이름이 된다.
독자 대부분에게는 밴드 이름부터 낯설겠지만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한층 더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영어인 데다, 멜로디에서 흔히 말하는 ‘뽕끼’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정보 없이 들으면 외국 밴드로 착각하기 딱 좋지만 분명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들이다. 효선과 나은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가졌음에도 이들에게는 평범한 한국사람의 심금을 음악으로 울리겠다는 포부 따위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8월 18일 발매된 2집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은 사람과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분위기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만큼 대중적이고 호소력 짙은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연인이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호기심 품는 모습을 인간 원형을 찾아 열대우림을 헤매는 인류학자의 탐험에 비유한 곡 ‘Anthropology(인류학)’도 사랑스럽지만, 압권은 앨범 타이틀이 후렴구로 반복되는 ‘Love Me Like Nothing’s Happened Before’다. 사랑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의 가슴 떨림과 애잔함을 이렇게 정묘하게 표현한 음악이 이전에 또 있었을까.
노래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예전에 봤던 영화 장면들이 하이라이트 모음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에서 무언가에 열중한 나머지 소년처럼 떠들어대는 남자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버리던 여주인공의 표정이라든지, ‘얼음여신’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 ‘니노치카’에서 그가 처음으로 활짝 웃는 그림 같은 장면이다.
어릴 적 트램펄린을 신나게 타다가 내려오면 갑자기 지면이 나를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익숙하기에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중력이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한 힘이다. 혹은 뭔가에 취하고 홀리고 빠진 사람만이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의 무게라고 해도 좋겠다. 프랑스 남자와 로맨스에 빠지면서 난생처음 웃음을 배웠던 무뚝뚝한 공산당원 니노치카는 결국 러시아로 송환되고, 짧았던 ‘밀회’가 끝났을 때 여주인공을 기다리던 것은 스산한 이별과 평생을 짊어지고 갈 회한뿐이었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해보자. 어린 시절 우리가 트램펄린 위에 올라가 있을 수 있던 시간은 과연 얼마나 길었을까. 노래 몇 곡, 길어야 CD 한 장을 들을 수 있는 시간 정도 아니었을까.
*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독자 대부분에게는 밴드 이름부터 낯설겠지만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한층 더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영어인 데다, 멜로디에서 흔히 말하는 ‘뽕끼’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정보 없이 들으면 외국 밴드로 착각하기 딱 좋지만 분명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들이다. 효선과 나은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가졌음에도 이들에게는 평범한 한국사람의 심금을 음악으로 울리겠다는 포부 따위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8월 18일 발매된 2집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은 사람과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분위기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만큼 대중적이고 호소력 짙은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연인이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호기심 품는 모습을 인간 원형을 찾아 열대우림을 헤매는 인류학자의 탐험에 비유한 곡 ‘Anthropology(인류학)’도 사랑스럽지만, 압권은 앨범 타이틀이 후렴구로 반복되는 ‘Love Me Like Nothing’s Happened Before’다. 사랑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의 가슴 떨림과 애잔함을 이렇게 정묘하게 표현한 음악이 이전에 또 있었을까.
노래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예전에 봤던 영화 장면들이 하이라이트 모음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에서 무언가에 열중한 나머지 소년처럼 떠들어대는 남자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버리던 여주인공의 표정이라든지, ‘얼음여신’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 ‘니노치카’에서 그가 처음으로 활짝 웃는 그림 같은 장면이다.
어릴 적 트램펄린을 신나게 타다가 내려오면 갑자기 지면이 나를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익숙하기에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중력이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한 힘이다. 혹은 뭔가에 취하고 홀리고 빠진 사람만이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의 무게라고 해도 좋겠다. 프랑스 남자와 로맨스에 빠지면서 난생처음 웃음을 배웠던 무뚝뚝한 공산당원 니노치카는 결국 러시아로 송환되고, 짧았던 ‘밀회’가 끝났을 때 여주인공을 기다리던 것은 스산한 이별과 평생을 짊어지고 갈 회한뿐이었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해보자. 어린 시절 우리가 트램펄린 위에 올라가 있을 수 있던 시간은 과연 얼마나 길었을까. 노래 몇 곡, 길어야 CD 한 장을 들을 수 있는 시간 정도 아니었을까.
*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