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SK와이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에서 김태균코치와 이영재 1루 심판이 판정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라운드의 판관’ ‘포청천’으로 불리는 심판.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들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때론 볼에 맞아 온몸에 피멍이 든다. 보호 장비 탓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러나 언론이나 팬 눈에 최대한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야 ‘100점’이 된다. 열 번 잘 보다가도 한 번 잘못 보면 큰일 난다. 심판의 숙명이다.
‘국민 감독’으로 불린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은 현역 지휘봉을 잡았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심판의 오심? 그건 그날 게임의 팔자일 뿐이다.”
오심도 게임의 일부고, 심판도 사람이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간다는 말이다. 뜻하지 않게 심판 덕을 보는 게임도 있게 마련이고, 반대로 그릇된 판정 탓에 게임을 망치는 날도 있지만 그것 역시 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김 위원장의 말을 놓고 심판의 오심문제에 관한 정답이라고들 한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는 10명의 중앙심판과 연고지 6곳의 주재심판 등 16명이 심판을 맡았다. 현재와 달리 하루에 기껏해야 3게임이 열리던 그때, 중앙심판 3명과 주재심판 1명 등 4명이 한 게임에 투입됐다. 이듬해부터 주재심판 제도가 없어지고 점차 심판 수도 늘었다. 2011시즌 KBO 등록심판은 1·2군을 포함해 총 38명이다.
열 번 잘하다 한 번 잘못하면 질타
4심제(포스트시즌의 경우 좌우선상 심판까지 6심제)로 진행하는 현 프로야구 1군 리그는 평상시 5개 조로 운영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심판 1명까지 포함해 각 조는 5명으로 짜고, 조별로 선참이 조장을 맡는다. 1개 조씩 순번대로 돌아가며 4주간 2군으로 내려가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1군에 속한 심판이 오심 등으로 물의를 빚으면 2군 소속으로 강등하기도 하고, 그 빈자리를 2군 소속 심판을 승격시켜 메우기도 한다. 퓨처스리그라 부르는 2군 게임은 아직도 2심, 또는 3심제로 운영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심판의 장난’이 어느 정도 횡행했다. A구단은 B심판이 구심을 맡으면 ‘오늘 게임은 힘들다’고 지레 짐작하고 포기한 때도 있었다. C심판은 D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팀에는 유독 불리한 판정을 많이 내려 ‘현역 시절 둘 사이의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란 말이 나돌기도 했다. 과거에는 경기 후 감독이 심판실로 찾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장면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 같은 ‘의도적인 장난’은 사실상 없어졌다. 지방팀 소속 모 감독은 “구단들이 몇몇 심판에게 알게 모르게 느끼던 피해의식은 이제 대부분 없어졌다. 심판도 사람이고 개인별 경험과 능력 차가 있기 때문에 종종 오심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의도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심판들의 자질이 향상됐음에도 오심은 줄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명심판으로 이름을 날린 브루스 닐 프로밍은 2007년 68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빅리그를 대표하는 포청천이었다. 각 구단 선수단은 물론, 팬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비선수 출신으로 18세였던 1958년 심판 일을 시작한 그는 1971년 빅리그 심판으로 승격할 때까지 마이너리그에서 13년 동안 기량을 갈고 닦았다.
선수 출신만 선발 폐쇄적 분위기
미국에서 프로야구(물론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는) 심판이 되려면 5주 동안 은퇴 심판이 교육하는 사설 심판학교를 수료해야 한다. 수료했다고 해도, 루키리그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게임을 펼쳐야 한다. 미국 프로야구 심판의 60%가량이 일반인 출신이란 통계가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는 선수 출신 심판 비율이 마이너리그보다 높지만, 일반인에게도 프로야구 심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반면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반인이 심판이 된 것은 2001년 엄재국 씨 딱 한 사람뿐이다. 엄씨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야구심판학교에 들어간 뒤 100대 1에 가까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심판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2군 리그에서 활약하다 단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한 채 3년 만에 사표를 썼다. 어느 종목보다 룰이 복잡하고 순간적인 판단이 중요한 야구의 특성상, 선수 출신이 아무래도 일반인 출신보다 유리할 수 밖에 없다.
2009년 11월 KBO와 대한야구협회가 출범시킨 야구심판학교는 4주 과정으로, 일반과정과 전문과정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일반과정 출신자 중 성적우수자는 아마추어 야구 심판으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진다. 전문과정 출신자 중 성적우수자는 프로야구 심판 선발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다. 심판학교를 수료한 일반인, 정확히 말해 비선수 출신 중 프로 1군 무대를 밟은 사람은 이제껏 한 명도 없다. 4주에 걸쳐 12일간 실시하는 전문과정에서 일반인이 선수 출신을 넘어서기엔 원천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한국야구가 더 크게 도약하려면 좀 더 많은 일반인에게 프로야구 심판이 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2007년만 해도 심판 내 파벌 싸움이 벌어져 물의를 빚었다.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프로 심판은 선수 출신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선수 출신만 뽑다 보니, 심판 내 연공서열 문화가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심판 스스로도 정체한다는 말이 나온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심판으로라도 이루겠다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비선수 출신 프로 1군 심판이 어서 빨리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