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던 기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던 추억,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배수로를 파며 고생하던 이야기, 숯으로 범벅이 된 감자를 먹느라 얼굴에 온통 검댕이 칠을 하고 서로 바라보며 웃던 순간, 흐르는 세월과 편리해진 세상 속에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밀쳐버린 그 꿈. 이제 많은 사람이 그 잊힌 꿈을 가슴속에서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 가족의 소중함 일깨운 ‘1박2일’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캠핑 붐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익숙하지만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떠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에 다가서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캠핑에 열광하는 것일까.
서울 도봉구에 사는 회사원 김명수(43) 씨. 김씨는 그동안 후배에게 치받히고 상사에게 눌리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가끔 연휴 때면 가족과 함께 의무감으로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도로정체 걱정에 출발 전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거래처 임직원이나 동문과 이따금 골프도 쳤지만 그 또한 사회생활의 연장일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김씨는 가족과 대화를 안 한 지 오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뭘 위해 사는 걸까.’
깊은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가족이 아니라, 남남이 되고 말겠다는 위기의식이 김씨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하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던 김씨는 우연히 한 단어를 마주했다. ‘캠핑.’ 김씨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젊은 날의 추억이 용솟음쳤다.
‘그래!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인 캠핑을 해보자.’
김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캠핑 정보를 모으고, 캠핑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캠핑을 가자”는 말에 김씨 아내는 처음엔 심드렁해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도 약간의 관심만 보일 뿐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김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비상금을 털고, 시간외수당을 챙겨 캠핑 장비를 사 모았다. 가족과 첫 캠핑에 나서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밀린 업무로 야근을 하면서도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설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토요일 오전. 아침 겸 점심을 먹은 김씨 가족은 집을 나섰다. 두 시간을 달려 예약해둔 캠핑장에 도착했다. 우거진 푸른 숲만 봐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캠핑장 옆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더위가 가셨다.
‘그래, 이 맛이야!’
김씨는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야영 준비를 했다. 학창시절에 다뤄보긴 했지만, 최신 캠핑 장비를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아내와 아들딸까지 거들었지만 김씨 가족은 두 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괜히 캠핑하자고 해서 아이들까지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 잘하는 일일까.’
그 순간 회의가 엄습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캠핑 준비를 마쳤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깜깜해졌다.
네온사인에 눈이 길들여진 탓일까. 숲속에서 맞는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랜턴을 밝혔다. 어린 시절에 봤던 호롱불이 떠올랐다. 마른 장작을 도끼로 쪼개 모닥불도 피웠다. 김씨 가족은 5000만 명의 국민요리인 삼겹살을 구웠다. 김씨는 오랜만에 아내와 소주잔도 기울였다. 김씨 아내가 감자를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 숯이 돼가는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김씨는 사회생활에 바빠서, 아내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겨워서,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서 그동안 대화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곳 캠핑장에서 김씨 가족은 서로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왜 그럴까. 이것이 자연의 힘일까.
김씨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힘들다는 이유만 내세우면서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큰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별이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저 별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켜왔을 텐데, 도시의 휘황찬란한 인공 불빛 속에서 그 존재를 잊고 지냈구나. 별빛만 잊고 산 것이 아니지.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를 원망하며 투정했는지도 몰라.’
김씨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번 열린 김씨 가족의 이야기보따리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그 또래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신조어도 배웠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김씨 가족은 천막 안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땅바닥의 불편함보다 부풀어 오른 가슴 때문에 김씨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 6시,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김씨가 천막 밖으로 나와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는 사이 김씨 아내도 벌써 잠이 깼는지 밖으로 나왔다. 둘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셨다.
짧은 1박2일의 캠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정체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야기꽃을 피운 김씨 가족은 지루한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온 김씨 가족은 벌써부터 다음 주 캠핑 행선지를 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족이 오롯이 함께 하는 취미이자 자연 속에 몸을 맡겨 재충전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캠핑은 이제 김씨 가족에게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 웃음꽃을 피우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행복이 뭐 별건가. 꿈만 같은 행복은 캠핑이라는 작은 도전으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 연인들의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
100여 번 이력서를 제출한 끝에 어렵사리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신입사원 이지훈(28·서울 종로구) 씨. 자신이 몸담은 자리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씨는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까지 남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한다. 그런 그에게는 대학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진작 결혼해 함께하고 싶었지만, 취직이 최우선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막상 직장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해야 할 일에 치여 오래 사귄 연인들이 그렇듯, 여자친구에게 의무감 비슷하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가고, 놀이동산을 찾기도 하지만 대학시절의 낭만을 찾긴 힘들었다. 사실 이씨는 익숙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느라 주말 데이트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주말이 다가오면 이씨는 주말에 뭘 해야 할지 고민부터 앞섰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이씨는 한 친구에게 “캠핑을 즐겨 다닌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그래, 캠핑! 캠핑을 가자!’
집에 돌아온 이씨는 창고를 뒤져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닐 때 사용하던 천막과 간단한 장비를 찾아냈다. 캠핑 장비를 챙긴 이씨는 대뜸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에 캠핑 가자!”
“웬 캠핑! 날도 더운데….”
캠핑을 내켜 하지 않는 여자친구에게 이씨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멋진 하루를 보내고 오자”는 달콤한 말로 계획을 밀어붙였다.
토요일 오전, 이씨와 여자친구는 서울-춘천 간 전철을 타고 가평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 휴양림에서 내렸다. 한적한 목재데크에 천막을 치고 은박 돗자리를 깔았다. 제법 분위기가 근사했다. 일회용 믹스커피를 타서 마신 뒤 산책을 나섰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이 피톤치드를 마구 발산했다.
휴양림을 돌아본 뒤 천막으로 돌아와 여자친구와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이씨. 마트에서 사온 즉석 쌀밥에 국, 그리고 삼겹살과 김치밖에 없었지만, 부부가 된 듯한 느낌에 이씨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하늘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더니 갑자기 비를 쏟아부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씨와 여자친구는 젖으면 안 되는 물건부터 챙겨 천막에 밀어 넣었다.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천막 앞의 조그만 공간에서 밥을 해먹기로 했다. 스토브에 물을 끓여 즉석 쌀밥을 데웠다. ‘아차,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구나.’
“어쩌지”라며 난감해하는 여자친구에게 이씨는 땅에 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를 다듬어 젓가락을 만들어줬다. 국을 끓이려는데 이번엔 숟가락이 없었다. 이씨는 빗속을 뚫고 이웃 캠핑객에게 사정해 여분의 숟가락을 빌려왔다.
이제 삼겹살을 구울 차례다. 주변이 컴컴해진 탓에 고기가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친구와 함께 구워 먹는 삼겹살 맛은 일품이었다. 두 사람은 비좁은 천막에 마주 앉아 진짜 나무 젓가락으로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무서울 만큼 적막한 숲속 하늘 위로 달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데크에 걸터앉아 이야기 꾸러미를 끄집어냈다. 대학시절 이야기, 현재 처한 어려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나누는 사이 달은 어느새 중천에 이르렀다. 휘영청 뜬 달은 두 사람의 미래를 밝혀주는 듯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 사람 냄새 나는 동호회와 단체 캠핑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활동하다 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교류할 일이 많아진다. 지역별로 모이기도 하고, 띠 모임도 있다. 누군가가 카페에 올린 캠핑 후기에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며 울기도 한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 사는 진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캠핑 동호회다. 그러다 의기투합하면 오프라인 모임도 갖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때로는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을 나누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아이에게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많은 가족이 모이면 아무리 조심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조그만 캠핑장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 좋다.
캠핑에 참가한 가족별로 요리를 한 가지씩 마련해 뷔페 식단을 꾸민다. 생일파티를 하기도 하고, 아이 돌찬지를 열기도 한다, 부모님의 칠순잔치를 캠핑장에서 하는 사람도 있다. 캠핑에 참가한 사람은 서로에게 직업이나 출신학교를 물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물론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 사이로 좀 더 가까워지려고 나이를 묻는 경우는 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캠핑을 하면 서로를 웃음으로 대하게 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모인 취미 동호회 가운데 갓난아기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등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캠핑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캠핑 동호회에 가입하는 순간 전국적으로 캠핑 친구가 생긴다. 가끔은 부모형제와 친척을 캠핑장에 초대한다. 함께 바비큐를 굽고, 들통에 국을 끓이고, 큼지막한 솥에 밥을 해 잔치를 연다. 낯선 사람을 도우려는 단체 김장캠핑에도 참가할 수 있다. 잠시 잊고 살았던 추억을 들춰내주던 캠핑은 이제 가족 행복의 매개체이자, 남을 돌보려는 징검다리로서 그 소임을 확대하고 있다. 캠핑하는 사람 모두는 캠핑을 통해 서로에게서 사람 사는 진한 냄새를 맡고 산다.
# 가족의 소중함 일깨운 ‘1박2일’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캠핑 붐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익숙하지만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떠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에 다가서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캠핑에 열광하는 것일까.
서울 도봉구에 사는 회사원 김명수(43) 씨. 김씨는 그동안 후배에게 치받히고 상사에게 눌리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가끔 연휴 때면 가족과 함께 의무감으로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도로정체 걱정에 출발 전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거래처 임직원이나 동문과 이따금 골프도 쳤지만 그 또한 사회생활의 연장일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김씨는 가족과 대화를 안 한 지 오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뭘 위해 사는 걸까.’
깊은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가족이 아니라, 남남이 되고 말겠다는 위기의식이 김씨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하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던 김씨는 우연히 한 단어를 마주했다. ‘캠핑.’ 김씨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젊은 날의 추억이 용솟음쳤다.
‘그래!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인 캠핑을 해보자.’
김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캠핑 정보를 모으고, 캠핑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캠핑을 가자”는 말에 김씨 아내는 처음엔 심드렁해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도 약간의 관심만 보일 뿐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김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비상금을 털고, 시간외수당을 챙겨 캠핑 장비를 사 모았다. 가족과 첫 캠핑에 나서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밀린 업무로 야근을 하면서도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설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토요일 오전. 아침 겸 점심을 먹은 김씨 가족은 집을 나섰다. 두 시간을 달려 예약해둔 캠핑장에 도착했다. 우거진 푸른 숲만 봐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캠핑장 옆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더위가 가셨다.
‘그래, 이 맛이야!’
김씨는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야영 준비를 했다. 학창시절에 다뤄보긴 했지만, 최신 캠핑 장비를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아내와 아들딸까지 거들었지만 김씨 가족은 두 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괜히 캠핑하자고 해서 아이들까지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 잘하는 일일까.’
그 순간 회의가 엄습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캠핑 준비를 마쳤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깜깜해졌다.
네온사인에 눈이 길들여진 탓일까. 숲속에서 맞는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랜턴을 밝혔다. 어린 시절에 봤던 호롱불이 떠올랐다. 마른 장작을 도끼로 쪼개 모닥불도 피웠다. 김씨 가족은 5000만 명의 국민요리인 삼겹살을 구웠다. 김씨는 오랜만에 아내와 소주잔도 기울였다. 김씨 아내가 감자를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 숯이 돼가는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김씨는 사회생활에 바빠서, 아내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겨워서,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서 그동안 대화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곳 캠핑장에서 김씨 가족은 서로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왜 그럴까. 이것이 자연의 힘일까.
김씨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힘들다는 이유만 내세우면서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큰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별이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저 별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켜왔을 텐데, 도시의 휘황찬란한 인공 불빛 속에서 그 존재를 잊고 지냈구나. 별빛만 잊고 산 것이 아니지.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를 원망하며 투정했는지도 몰라.’
김씨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번 열린 김씨 가족의 이야기보따리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그 또래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신조어도 배웠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김씨 가족은 천막 안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땅바닥의 불편함보다 부풀어 오른 가슴 때문에 김씨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 6시,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김씨가 천막 밖으로 나와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는 사이 김씨 아내도 벌써 잠이 깼는지 밖으로 나왔다. 둘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셨다.
짧은 1박2일의 캠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정체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야기꽃을 피운 김씨 가족은 지루한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온 김씨 가족은 벌써부터 다음 주 캠핑 행선지를 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족이 오롯이 함께 하는 취미이자 자연 속에 몸을 맡겨 재충전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캠핑은 이제 김씨 가족에게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 웃음꽃을 피우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행복이 뭐 별건가. 꿈만 같은 행복은 캠핑이라는 작은 도전으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 연인들의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
100여 번 이력서를 제출한 끝에 어렵사리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신입사원 이지훈(28·서울 종로구) 씨. 자신이 몸담은 자리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씨는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까지 남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한다. 그런 그에게는 대학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진작 결혼해 함께하고 싶었지만, 취직이 최우선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막상 직장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해야 할 일에 치여 오래 사귄 연인들이 그렇듯, 여자친구에게 의무감 비슷하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가고, 놀이동산을 찾기도 하지만 대학시절의 낭만을 찾긴 힘들었다. 사실 이씨는 익숙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느라 주말 데이트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주말이 다가오면 이씨는 주말에 뭘 해야 할지 고민부터 앞섰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이씨는 한 친구에게 “캠핑을 즐겨 다닌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그래, 캠핑! 캠핑을 가자!’
집에 돌아온 이씨는 창고를 뒤져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닐 때 사용하던 천막과 간단한 장비를 찾아냈다. 캠핑 장비를 챙긴 이씨는 대뜸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에 캠핑 가자!”
“웬 캠핑! 날도 더운데….”
캠핑을 내켜 하지 않는 여자친구에게 이씨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멋진 하루를 보내고 오자”는 달콤한 말로 계획을 밀어붙였다.
토요일 오전, 이씨와 여자친구는 서울-춘천 간 전철을 타고 가평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 휴양림에서 내렸다. 한적한 목재데크에 천막을 치고 은박 돗자리를 깔았다. 제법 분위기가 근사했다. 일회용 믹스커피를 타서 마신 뒤 산책을 나섰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이 피톤치드를 마구 발산했다.
휴양림을 돌아본 뒤 천막으로 돌아와 여자친구와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이씨. 마트에서 사온 즉석 쌀밥에 국, 그리고 삼겹살과 김치밖에 없었지만, 부부가 된 듯한 느낌에 이씨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하늘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더니 갑자기 비를 쏟아부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씨와 여자친구는 젖으면 안 되는 물건부터 챙겨 천막에 밀어 넣었다.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천막 앞의 조그만 공간에서 밥을 해먹기로 했다. 스토브에 물을 끓여 즉석 쌀밥을 데웠다. ‘아차,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구나.’
“어쩌지”라며 난감해하는 여자친구에게 이씨는 땅에 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를 다듬어 젓가락을 만들어줬다. 국을 끓이려는데 이번엔 숟가락이 없었다. 이씨는 빗속을 뚫고 이웃 캠핑객에게 사정해 여분의 숟가락을 빌려왔다.
이제 삼겹살을 구울 차례다. 주변이 컴컴해진 탓에 고기가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친구와 함께 구워 먹는 삼겹살 맛은 일품이었다. 두 사람은 비좁은 천막에 마주 앉아 진짜 나무 젓가락으로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무서울 만큼 적막한 숲속 하늘 위로 달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데크에 걸터앉아 이야기 꾸러미를 끄집어냈다. 대학시절 이야기, 현재 처한 어려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나누는 사이 달은 어느새 중천에 이르렀다. 휘영청 뜬 달은 두 사람의 미래를 밝혀주는 듯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 사람 냄새 나는 동호회와 단체 캠핑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활동하다 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교류할 일이 많아진다. 지역별로 모이기도 하고, 띠 모임도 있다. 누군가가 카페에 올린 캠핑 후기에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며 울기도 한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 사는 진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캠핑 동호회다. 그러다 의기투합하면 오프라인 모임도 갖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때로는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을 나누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아이에게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많은 가족이 모이면 아무리 조심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조그만 캠핑장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 좋다.
캠핑에 참가한 가족별로 요리를 한 가지씩 마련해 뷔페 식단을 꾸민다. 생일파티를 하기도 하고, 아이 돌찬지를 열기도 한다, 부모님의 칠순잔치를 캠핑장에서 하는 사람도 있다. 캠핑에 참가한 사람은 서로에게 직업이나 출신학교를 물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물론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 사이로 좀 더 가까워지려고 나이를 묻는 경우는 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캠핑을 하면 서로를 웃음으로 대하게 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모인 취미 동호회 가운데 갓난아기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등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캠핑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캠핑 동호회에 가입하는 순간 전국적으로 캠핑 친구가 생긴다. 가끔은 부모형제와 친척을 캠핑장에 초대한다. 함께 바비큐를 굽고, 들통에 국을 끓이고, 큼지막한 솥에 밥을 해 잔치를 연다. 낯선 사람을 도우려는 단체 김장캠핑에도 참가할 수 있다. 잠시 잊고 살았던 추억을 들춰내주던 캠핑은 이제 가족 행복의 매개체이자, 남을 돌보려는 징검다리로서 그 소임을 확대하고 있다. 캠핑하는 사람 모두는 캠핑을 통해 서로에게서 사람 사는 진한 냄새를 맡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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