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비교 대상이 많다. 연출가나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다루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5세 영국인 알렉산더 젤딘이 연출한 ‘맥베스’에는 “완벽할 수 없다면 내 방식대로”라는 뚝심이 녹아 있다. 그동안의 맥베스와는 다르다. 젊고 화끈하다. 어떤 제약도 없다. 파격적인 연출 속에서 이야기는 힘이 넘친다. 단언컨대, 이보다 흥미로운 맥베스는 없었다.
코더 성의 영주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 왕이 되기 위해 던컨 왕을 죽인다. 하지만 맥베스 부부는 왕을 죽인 대신 두려움을 덤으로 얻었다. 왕이 된 맥베스는 귀신의 환영에 시달린다. 남편의 범행을 부추기고 도왔던 맥베스 부인 역시 죄책감에 몸서리친다. 게다가 그들은 마녀들의 마지막 예언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뱅코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마녀의 예언이 모두 맞아떨어졌으니 뱅코나 그의 자식이 왕좌를 빼앗을 것이라 확신한 맥베스는, 차례로 뱅코와 다른 귀족들을 죽인다. 그럼에도 그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맥베스 부인은 자살하고 맥베스도 생명의 촛불을 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젊은 부부의 과욕과 악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후대에 에밀 졸라가 ‘테레즈 라캥’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한 적 있다. 영화 ‘박쥐’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불륜관계의 두 남녀는 여자의 남편만 죽이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인은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함께 죽어간다. 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비교 대상이 많다. 연출가나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다루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5세 영국인 알렉산더 젤딘이 연출한 ‘맥베스’에는 “완벽할 수 없다면 내 방식대로”라는 뚝심이 녹아 있다. 그동안의 맥베스와는 다르다. 젊고 화끈하다. 어떤 제약도 없다. 파격적인 연출 속에서 이야기는 힘이 넘친다. 단언컨대, 이보다 흥미로운 맥베스는 없었다.
코더 성의 영주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 왕이 되기 위해 던컨 왕을 죽인다. 하지만 맥베스 부부는 왕을 죽인 대신 두려움을 덤으로 얻었다. 왕이 된 맥베스는 귀신의 환영에 시달린다. 남편의 범행을 부추기고 도왔던 맥베스 부인 역시 죄책감에 몸서리친다. 게다가 그들은 마녀들의 마지막 예언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뱅코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마녀의 예언이 모두 맞아떨어졌으니 뱅코나 그의 자식이 왕좌를 빼앗을 것이라 확신한 맥베스는, 차례로 뱅코와 다른 귀족들을 죽인다. 그럼에도 그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맥베스 부인은 자살하고 맥베스도 생명의 촛불을 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젊은 부부의 과욕과 악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후대에 에밀 졸라가 ‘테레즈 라캥’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한 적 있다. 영화 ‘박쥐’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불륜관계의 두 남녀는 여자의 남편만 죽이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인은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함께 죽어간다. 두 작품은 말한다. 인간은 타인을 죽일 수 있지만 자신의 양심까지 죽일 수는 없다고.
수많은 ‘맥베스’ 중에서도 이 작품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는 대사와 무대, 그리고 배우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는 화려한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문어체가 대부분이다. 140자 트위터와 자음만을 이용한 줄임말에 익숙한 요즘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황한 대사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면서도 본연의 상징을 죽이지 않았다. ‘배우 입에 착착 달라붙는’ 대사는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뿐더러 배우들의 집중도 높였다.
무대 구성 역시 환상적이다. 100석 남짓 작은 공연장을 참신하게 이용한다. 배우들은 객석 쪽 문에서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관객 옆자리에 앉아 대사를 읊기도 한다. 무대 천장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다. 배우가 허공을 보고 이야기할 때 그의 표정이 고스란히 무대 중앙 하얀 스크린에 중계된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스크린은 한순간에 부부의 침실을 가리는 버티컬로 변한다. 버티컬이 열릴 때마다 마치 부부의 침실을 훔쳐보는 듯하다. 부부가 밀담을 나누는 침실과 ‘악령의 얼굴을 냉정의 가면으로 숨겨야 하는’ 거실은 고작 버티컬 하나로 분리된다. 은밀하고 에로틱하다. 젊은 연출가의 탁월한 감각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대학로 연극판을 지켜온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젊은 연출가전’ 중 한 작품이다. 오랜 연륜의 극단은 권위를 버리고 젊은 연출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들이 이뤄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극단의 대표이기도 한 배우 김소희는 광기 어린 팜므파탈 ‘맥베스 부인’ 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3월 6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
코더 성의 영주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 왕이 되기 위해 던컨 왕을 죽인다. 하지만 맥베스 부부는 왕을 죽인 대신 두려움을 덤으로 얻었다. 왕이 된 맥베스는 귀신의 환영에 시달린다. 남편의 범행을 부추기고 도왔던 맥베스 부인 역시 죄책감에 몸서리친다. 게다가 그들은 마녀들의 마지막 예언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뱅코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마녀의 예언이 모두 맞아떨어졌으니 뱅코나 그의 자식이 왕좌를 빼앗을 것이라 확신한 맥베스는, 차례로 뱅코와 다른 귀족들을 죽인다. 그럼에도 그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맥베스 부인은 자살하고 맥베스도 생명의 촛불을 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젊은 부부의 과욕과 악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후대에 에밀 졸라가 ‘테레즈 라캥’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한 적 있다. 영화 ‘박쥐’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불륜관계의 두 남녀는 여자의 남편만 죽이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인은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함께 죽어간다. 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비교 대상이 많다. 연출가나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다루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5세 영국인 알렉산더 젤딘이 연출한 ‘맥베스’에는 “완벽할 수 없다면 내 방식대로”라는 뚝심이 녹아 있다. 그동안의 맥베스와는 다르다. 젊고 화끈하다. 어떤 제약도 없다. 파격적인 연출 속에서 이야기는 힘이 넘친다. 단언컨대, 이보다 흥미로운 맥베스는 없었다.
코더 성의 영주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 왕이 되기 위해 던컨 왕을 죽인다. 하지만 맥베스 부부는 왕을 죽인 대신 두려움을 덤으로 얻었다. 왕이 된 맥베스는 귀신의 환영에 시달린다. 남편의 범행을 부추기고 도왔던 맥베스 부인 역시 죄책감에 몸서리친다. 게다가 그들은 마녀들의 마지막 예언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뱅코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마녀의 예언이 모두 맞아떨어졌으니 뱅코나 그의 자식이 왕좌를 빼앗을 것이라 확신한 맥베스는, 차례로 뱅코와 다른 귀족들을 죽인다. 그럼에도 그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맥베스 부인은 자살하고 맥베스도 생명의 촛불을 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젊은 부부의 과욕과 악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후대에 에밀 졸라가 ‘테레즈 라캥’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한 적 있다. 영화 ‘박쥐’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불륜관계의 두 남녀는 여자의 남편만 죽이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인은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함께 죽어간다. 두 작품은 말한다. 인간은 타인을 죽일 수 있지만 자신의 양심까지 죽일 수는 없다고.
수많은 ‘맥베스’ 중에서도 이 작품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는 대사와 무대, 그리고 배우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는 화려한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문어체가 대부분이다. 140자 트위터와 자음만을 이용한 줄임말에 익숙한 요즘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황한 대사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면서도 본연의 상징을 죽이지 않았다. ‘배우 입에 착착 달라붙는’ 대사는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뿐더러 배우들의 집중도 높였다.
무대 구성 역시 환상적이다. 100석 남짓 작은 공연장을 참신하게 이용한다. 배우들은 객석 쪽 문에서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관객 옆자리에 앉아 대사를 읊기도 한다. 무대 천장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다. 배우가 허공을 보고 이야기할 때 그의 표정이 고스란히 무대 중앙 하얀 스크린에 중계된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스크린은 한순간에 부부의 침실을 가리는 버티컬로 변한다. 버티컬이 열릴 때마다 마치 부부의 침실을 훔쳐보는 듯하다. 부부가 밀담을 나누는 침실과 ‘악령의 얼굴을 냉정의 가면으로 숨겨야 하는’ 거실은 고작 버티컬 하나로 분리된다. 은밀하고 에로틱하다. 젊은 연출가의 탁월한 감각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대학로 연극판을 지켜온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젊은 연출가전’ 중 한 작품이다. 오랜 연륜의 극단은 권위를 버리고 젊은 연출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들이 이뤄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극단의 대표이기도 한 배우 김소희는 광기 어린 팜므파탈 ‘맥베스 부인’ 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3월 6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