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교회 8·15대성회’에 참석한 개신교계 보수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진보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신도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원로는 조용기(순복음교회), 김장환(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와 김삼환(명성교회), 최성규(순복음인천교회)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전 대표회장 이광선(신일교회), 신임 대표회장 길자연(왕성교회) 목사 6명이었다. 조용기, 김장환 두 원로목사가 지난해 12월 21일 치러진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이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현 대표회장인 이 목사와 길 목사의 화해를 위해 마련한 자리로 알려졌다.
대표회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양측의 갈등은 선거 이후 금권선거 폭로 등이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결국 이날 모임에서도 원로목사들의 화해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김장환 원로목사의 한 측근은 “원로목사들이 한국 교회를 위해 서로 양보하자고 설득했지만, 두 목사가 서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광선 목사와 길자연 목사 대립
청와대 관계자들은 개신교계의 이 같은 분열을 우려한다. 개신교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기반이다. 이 대통령이 가톨릭계와 불교계의 반발에도 4대강 사업을 강행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개신교계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개신교계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될 경우 집권 후반기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한기총은 현재 66개 교단과 19개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해 국내 개신교계에서는 최대 규모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음은 물론이다.
한기총 내부 분열은 소속된 교단 간의 세력 다툼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기총 내 가장 대표적인 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하 예장통합)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하 예장합동)이다. 예장통합은 단일 교단인 데 비해 예장합동은 여러 교단으로 분열됐다가 최근 다시 세를 결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장통합보다 예장합동이 더 보수적이다.
두 교단 중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 지지에 앞장섰던 곳은 예장통합이다. 이 대통령이 다녔던 소망교회도 예장통합 교단 소속이다. 대선 때 이 대통령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것으로 알려진 김삼환, 이광선 목사 모두 예장통합 교단 소속이다. 덕분에 이들도 교계 내 영향력이 커졌다.
교권 둘러싼 진흙탕 싸움 양상
2009년 말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이 목사가 상대 후보를 많은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던 것은 이 대통령과의 관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계 한 목사는 “이광선 목사가 후보로 나왔을 때 대부분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는데 이 대통령의 의중이 이 목사에게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교계에서는 이 목사가 이번 2011년 대표회장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 목사는 후보등록 마감시간 직전 갑작스레 불출마를 선언해, 교계에선 그 이유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 목사는 “고심 끝에 최근 몇 년간 대표회장을 배출하지 못한 합동 교단을 배려해 대표회장직을 내려놓게 됐다”고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는 게 교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기총 대표회장은 최근 6년간 예장통합 교단 소속 목사가 연속으로 맡는 등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에 예장합동 측은 지난해 9월 총회에서 길 목사를 자신들의 교단 후보로 뽑았고, 교계에선 이번 선거가 이 목사와 길 목사 2파전으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이었던 만큼 이 목사의 불출마 선언은 더더욱 의외였다. 이 목사는 대신 또 다른 후보인 김동권(진주교회) 원로목사를 사실상 지지했다.
하지만 김 목사의 도전도 교계에선 뜻밖의 일로 받아들였다. 예장합동 소속인 김 목사는 지난해 교단 내부 후보경선에서 732표 중 40표를 얻는 데 그쳐 3위로 낙선했기 때문. 당시 경선에서 길 목사는 492표를 얻어 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예장합동 교단 소속 목사들 간의 대결로 선거가 치러졌고, 길 목사의 승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청와대가 나서 중재 시도?
문제는 선거 당일 터졌다. 한기총 대표회장은 명예회장 및 공동회장단과 회원 교단·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실행위원 213명이 선출하고 곧바로 총회 인준 절차를 거친다. 총회 의장은 전임 대표회장이 맡는다. 이 목사는 총회 인준 과정에서 잠시 소란이 일자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포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30여 명의 목사와 함께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수는 총회 전체 참석자의 10%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자리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참석자가 총회를 진행해 길 목사의 대표회장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이 목사는 2009년 말 대표회장 선거 당시 “돈 선거를 했다”고 양심선언한 데 이어 길 목사의 돈 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표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기총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기총의 개혁을 촉구하는 등 조직적인 행동에 돌입한 상태다.
교계에선 이에 대해 한기총 교권을 둘러싼 이 목사와 길 목사의 진흙탕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각에선 이들 세력 간 교권 다툼이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의 교단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한기총이라는 거대 조직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이 대통령 지지기반의 분열을 뜻한다.
그러잖아도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는 정부 여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정책을 저지하려 노력해왔다. 이슬람 채권(수쿠크)에 과세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법(수쿠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에 부담을 느낀 한나라당 지도부는 수쿠크법 개정 연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에 교계 내부의 분열이 이어진다면 이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도 이를 우려한 까닭인지 교계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 직접 중재를 시도하려 했으나 일부 원로의 반대로 뜻을 접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원로목사 측 관계자는 “교계 원로들은 교계의 일이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교계의 일은 교계에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그러나 이 대통령의 교계 원로목사 초청 시도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대통령실 박명환 국민소통비서관은 “개신교계의 갈등은 교회 내부 문제다. 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나설 문제가 아니다. 평소 이 대통령은 교계 원로들을 모시고 싶어 하지만, 이번 일로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비서관은 다만 수쿠크 법안에 대한 한기총의 반대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종교적 접근보다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금융경제정책비서관실에서 한기총 목사들을 만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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