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의 판결은 인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 판결은 인도 북부 아요디아 지역 바브리 이슬람 사원과 그 주변 약 1만1000㎡의 토지소유권에 관련된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번 판결이 “단순한 이슈가 아닌 인도 현대사 퍼즐의 중요한 조각이 됐다”고 표현했다. 과연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기에 전 인도인이 지방 고등법원의 판결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이유는 이 사안으로 종교폭동이 일어나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독립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 카스트와 종교가 늘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이 두 가지는 계층, 집단 간 대립과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12월 6일 극우 힌두교인들이 저지른 바브리 이슬람 사원 파괴사건은 인도 전역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극단적 종교 갈등을 유발해 3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이는 인도 독립 이후 최악의 종교폭동 사건으로 기록됐다. 폭동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급부상한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바브리 이슬람 사원이 들어선 자리가 힌두교의 주요 신인 람의 탄생지이자 람의 사원이 있었던 장소라 주장하며 힌두교인들을 선동해 일어났다. 학자들은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계획적으로 종교폭동을 일으켰다고 본다.
1만1000㎡ 땅이 불러일으킨 갈등
이후 몇 차례 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종교폭동이 일어났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바브리 이슬람 사원과 주변 약 1만1000㎡의 토지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질문만 남았다. 1992년 12월 11일 대법원이 사원과 주변 토지를 관리한다고 발표했지만 어디까지나 사태 진정을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인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각오로 판결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판결문 발표 후 내용과 판결 기준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판결문은 분쟁과 관련된 세 단체인 람 랄라(Ram Lalla), 니르모히 아카라(Nirmohi Akhara), 수니파 중앙기금위원회(Sunni Central Waqf Board)가 사원 주변의 토지를 3분의 1씩 나눠 가지라고 명했다. 또 현재 사라진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중앙 돔은 그 아래가 람의 탄생지인 점을 인정해 힌두교에 귀속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3명의 판사 중 샤르마 판사는 “람의 탄생지는 법률적 인격체이자 신격이다”고 말했고, 다른 두 판사는 “람 자체가 법률상 인격체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부동산 소유권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고 밝혔다. 3명의 판사는 만장일치로 람이 바브리 이슬람 사원과 주변 토지 소유의 주체라 본 것이다.
대부분의 인도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번 판결이 신화 속 신의 존재를 역사적 고증 없이 종교적 믿음과 신념에 기대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2003년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으로부터 사원 자리에 대한 발굴조사를 의뢰받아 인도 고고학 조사단(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ASI)이 작성한 574쪽 분량의 보고서가 판결의 참고자료가 된 점을 비난했다. 보고서에는 “바브리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자리에서 10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힌두사원의 잔재가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판사들이 처음부터 힌두교 측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힌두교 측은 토지 배분의 3분의 2가 자기네 단체에 돌아갔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법원이 분쟁지역을 람의 탄생지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승리했음을 강조한다. 판결 직후 일부 힌두교 옹호 언론사와 관련 단체 사무실이 축제 분위기를 띠어 여론을 의식한 원로들이 이를 자제시켰다. 급진적인 민족봉사단(RSS)과 세계힌두협의회(VHP)는 무슬림 측에 배분된 3분의 1의 토지마저 기부받아 람 사원 건축을 진행할 의지가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나마 인도인민당(BJP)이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며 무슬림에게 주어진 3분의 1 땅에 이슬람사원이 건설돼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인도인민당의 이러한 말은 무슬림들이 반발할 때 힌두교인이 관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색한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 지적한다.
당장 이슬람교는 충격에 빠졌다. 무슬림 중 지식인층은 “이번 판결로 인도에서 무슬림은 완전히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나아가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인도에서도 곧 나타날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무슬림 관련 단체는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슬림의 심리적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미 수니파 중앙기금위원회와 자매단체인 바브리 이슬람 사원 행동위원회(Babri Masjid Action Committee)는 대법원에 상고할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슬람교 측도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따르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일부 무슬림은 이번 판결이 무슬림 측에 유리하게 나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아느냐 반문하며 판결 결과에 안심했다. 종교폭동을 우려한 무슬림들은 판결이 나오기 직전 안전한 이웃 마을이나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부동산의 주인이 神이 될 수 있나
인도 정치권은 말을 아끼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인도 집권여당 국민회의당은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파괴는 엄연한 범죄 행위라는 태도다. 집권여당인 만큼 판결 문제를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지으면서 무슬림 표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다. 인도 법조계는 “과연 종교적 신념과 믿음의 대상인 무형의 신이 유형의 부동산 소유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견고히 만들어 분쟁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비판이 대세지만, 지리멸렬한 분쟁 해결을 위한 최선이었다는 의견도 소수 있다. 하지만 분쟁을 해결해야 할 중앙정부가 정치 상황을 고려해 몸을 사리고 있고, 이번 판결을 정치적 재기의 기회로 삼으려는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들과 관련 단체들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어 도리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긍정적인 부분은 분쟁 해결을 폭력에 의지하기보다 법정에 맡기려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법과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도 사람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다른 이슬람교 단체도 대법원에 상고를 준비하고 있어 향후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또 한 번 인도인들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인도는 독립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 카스트와 종교가 늘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이 두 가지는 계층, 집단 간 대립과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12월 6일 극우 힌두교인들이 저지른 바브리 이슬람 사원 파괴사건은 인도 전역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극단적 종교 갈등을 유발해 3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이는 인도 독립 이후 최악의 종교폭동 사건으로 기록됐다. 폭동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급부상한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바브리 이슬람 사원이 들어선 자리가 힌두교의 주요 신인 람의 탄생지이자 람의 사원이 있었던 장소라 주장하며 힌두교인들을 선동해 일어났다. 학자들은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계획적으로 종교폭동을 일으켰다고 본다.
1만1000㎡ 땅이 불러일으킨 갈등
이후 몇 차례 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종교폭동이 일어났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바브리 이슬람 사원과 주변 약 1만1000㎡의 토지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질문만 남았다. 1992년 12월 11일 대법원이 사원과 주변 토지를 관리한다고 발표했지만 어디까지나 사태 진정을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인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각오로 판결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판결문 발표 후 내용과 판결 기준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판결문은 분쟁과 관련된 세 단체인 람 랄라(Ram Lalla), 니르모히 아카라(Nirmohi Akhara), 수니파 중앙기금위원회(Sunni Central Waqf Board)가 사원 주변의 토지를 3분의 1씩 나눠 가지라고 명했다. 또 현재 사라진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중앙 돔은 그 아래가 람의 탄생지인 점을 인정해 힌두교에 귀속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3명의 판사 중 샤르마 판사는 “람의 탄생지는 법률적 인격체이자 신격이다”고 말했고, 다른 두 판사는 “람 자체가 법률상 인격체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부동산 소유권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고 밝혔다. 3명의 판사는 만장일치로 람이 바브리 이슬람 사원과 주변 토지 소유의 주체라 본 것이다.
대부분의 인도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번 판결이 신화 속 신의 존재를 역사적 고증 없이 종교적 믿음과 신념에 기대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2003년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으로부터 사원 자리에 대한 발굴조사를 의뢰받아 인도 고고학 조사단(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ASI)이 작성한 574쪽 분량의 보고서가 판결의 참고자료가 된 점을 비난했다. 보고서에는 “바브리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자리에서 10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힌두사원의 잔재가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판사들이 처음부터 힌두교 측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힌두교 측은 토지 배분의 3분의 2가 자기네 단체에 돌아갔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법원이 분쟁지역을 람의 탄생지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승리했음을 강조한다. 판결 직후 일부 힌두교 옹호 언론사와 관련 단체 사무실이 축제 분위기를 띠어 여론을 의식한 원로들이 이를 자제시켰다. 급진적인 민족봉사단(RSS)과 세계힌두협의회(VHP)는 무슬림 측에 배분된 3분의 1의 토지마저 기부받아 람 사원 건축을 진행할 의지가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나마 인도인민당(BJP)이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며 무슬림에게 주어진 3분의 1 땅에 이슬람사원이 건설돼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인도인민당의 이러한 말은 무슬림들이 반발할 때 힌두교인이 관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색한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 지적한다.
당장 이슬람교는 충격에 빠졌다. 무슬림 중 지식인층은 “이번 판결로 인도에서 무슬림은 완전히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나아가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인도에서도 곧 나타날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무슬림 관련 단체는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슬림의 심리적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미 수니파 중앙기금위원회와 자매단체인 바브리 이슬람 사원 행동위원회(Babri Masjid Action Committee)는 대법원에 상고할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슬람교 측도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따르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일부 무슬림은 이번 판결이 무슬림 측에 유리하게 나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아느냐 반문하며 판결 결과에 안심했다. 종교폭동을 우려한 무슬림들은 판결이 나오기 직전 안전한 이웃 마을이나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부동산의 주인이 神이 될 수 있나
인도 정치권은 말을 아끼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인도 집권여당 국민회의당은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파괴는 엄연한 범죄 행위라는 태도다. 집권여당인 만큼 판결 문제를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지으면서 무슬림 표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다. 인도 법조계는 “과연 종교적 신념과 믿음의 대상인 무형의 신이 유형의 부동산 소유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견고히 만들어 분쟁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비판이 대세지만, 지리멸렬한 분쟁 해결을 위한 최선이었다는 의견도 소수 있다. 하지만 분쟁을 해결해야 할 중앙정부가 정치 상황을 고려해 몸을 사리고 있고, 이번 판결을 정치적 재기의 기회로 삼으려는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들과 관련 단체들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어 도리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긍정적인 부분은 분쟁 해결을 폭력에 의지하기보다 법정에 맡기려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법과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도 사람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다른 이슬람교 단체도 대법원에 상고를 준비하고 있어 향후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또 한 번 인도인들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