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가야 신이치 지음/ 최경국 옮김/ 이순/ 272쪽/ 1만2800원
후루하시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자 책을 전달하려고 가문의 무사 마쓰이 이치마사를 찾았다. 무사시의 유명을 따르기 위해 지금 여기서 한 번만 읽고 외우라고 말했다. 후루하시의 기억력에 미치지 못한 마쓰이는 책을 내일 아침까지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마쓰이는 기록하지 않고 밤새 숙독해 겨우 전체를 암기했다. 다음 날 점심이 돼도 후루하시가 책을 가지러 오지 않아 사람을 보냈더니, 안타깝게도 전날 저녁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했다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에 걸쳐 활약한 길거리 장사꾼인 이치류사이 류이치는 독서가였지만 장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한 번 읽은 책은 죄다 외웠기에 남에게 주고 곁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가끔 무대에서 기억술에 대해 공연했다.
일찍이 기억력은 인간의 가장 우수한 능력이었다. 문자가 발명됐을 때 기억력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인쇄술의 발명은 기억술의 전제를 잃게 만들었다. 기억과 재생의 명수인 컴퓨터의 출현은 인간에게 무조건 기억하는 것보다 수많은 정보 중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선택지적 망각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하지만 선택지적 망각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책과 인간의 운명을 탐구해온 한 편집자의 동서고금 독서 박물지’란 부제가 붙은 ‘책을 읽고 양을 잃다’를 읽으면서 다독가인 저자 쓰루가야 신이치의 놀라운 기억력과 선택지적 망각술이 부러웠다. 책을 읽고 며칠만 지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하나의 테마를 잡으면 적어도 서너 권의 동서양 고전을 언급하면서 생각의 실마리가 줄을 타듯 꼬리를 이어간다. 이런 능력은 암기보다 더 갖추기 힘든 능력이 아닌가 싶다.
한문학자인 강명관은 오랫동안 읽어온 책이 가슴속에 쌓였다가 온갖 이야기가 돼서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책화(冊話)’라는 말로 표현했다.
“읽기를 통해 흡수된 책들은 독자의 머릿속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세월이 가면 그 흔적들은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과 독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소리친다. 자신을 꺼내달라고.” 그 이야기를 꺼내놓으니 바로 이 책이 됐다는 것이다. 나도 적지 않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지만 저자의 지식 편집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묵독, 책 점보기, 세부효과, 기억술, 유학자와 괴담, 장서인, 이명과 필명, 향기 나는 유리, 근시, 다독, 정독, 신데렐라의 변형 등 착상이 빛나는 테마마다 동서고금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편 글을 나야말로 양이 아닌 가족을 잃을 정도로 빠져들어 읽었다.
책 제목 ‘책을 읽고 양을 잃다’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독서망양(讀書亡羊)’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양을 치던 장(臧)이 죽간(竹簡)을 끼고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책읽기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알려주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에도 시대 본초학자인 오노 란잔은 책과 표본이 쌓여 있는 거실에 파묻혀서 하루 종일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는데, 세 끼 식사도 거실로 가져오게 해 언제 먹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 3년 동안 기거했던 손부(孫婦)를 몰라볼 정도였다. 대학 해부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청일전쟁이 일어난 줄 몰랐다는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 다구치 가즈미나 러일전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첫 번째 문화훈장을 받은 천문학자 기무라 사카에야말로 ‘독서망양’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대 문장’이란 말이 있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글을 읽은 이가 성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대문장가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야말로 그런 사람의 표본이 아닌가 싶었다.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간다의 고서점가를 누비며 수많은 옛 전거를 들춰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본의 환경이 정말 부러웠다. 고서회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1920~30년대 회원제 취미 모임의 잡지인 ‘집고(集古)’ 50권을 구해 화적(貨狄)상이라 불리는 신성한 목상의 유래를 추적하는 글을 읽으면서는, 이런 서점가(街) 하나 갖추지 못한 우리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