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컬렉션’ 전시장.(위) 권진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1970년, 건칠, 130x120x31cm(아래)
문뜩 다양한 맥주병이나 병뚜껑을 모아 전시하거나, 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품들을 선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조각가 고 권진규(1922~1973) 작가의 작품이 지상 2층 전시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하이트컬렉션 개막전인 ‘권진규:탈주(Exile, External-Internal)’는 ‘영원과 내면을 향한 탈주’라는 주제를 ‘전령’ ‘구멍’ ‘구원’ ‘침묵’의 4개 섹션으로 구성했는데요.
특히 전시장 정면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눈길을 끕니다. 원래 교회의 주문을 받아 제작했으나 반입이 거부된 작품이라고 해요. 상처로 가득한 몸, 볼이 움푹 팬 늙고 마른 얼굴, 때로 찌든 피부 등 성자가 아닌 비루한 인간 예수를 표현했기 때문이죠. 쇠사슬에 목을 매 세상을 등진 작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됩니다.
현재 하이트 문화재단은 권진규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문덕 이사장이 권 작가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 그의 작품을 수집했다고 해요. 하이트컬렉션을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 역시 권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앞으로도 재단이 소장한 그의 작품 위주로 전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권 작가와 하이트진로그룹 사이에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고 하네요. 어찌 됐든 밝고 유쾌하고 시원하게 갈증을 날려버리는 맥주와는 상반된 이미지죠.
‘하이트컬렉션’ 전시장은 본사 1층 로비 바닥을 철거해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수직으로 연결했는데요. 앞서 말했듯 지상 2층엔 권 작가의 작품이,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 천장까지엔 서도호 작가의 설치작인 ‘인과(Cause · Effect)’가 놓여 있습니다. 서로의 어깨에 얹힌 소형 인물상 11만여 개가 거대한 회오리처럼 펼쳐진 ‘인과’는 어마어마한 결과물도 결국 작은 한 개인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상징하는 듯하죠. 지하 1층 벽면에는 ‘인과’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설계 과정의 드로잉 등이 전시됩니다.
하이트진로그룹 관계자는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인 기업이 직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소장품을 공개함으로써 소통의 길을 넓히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관람 시간이 월요일부터 금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평일에 찾아오기가 어려운 시간대이니까요. 2011년 3월 4일까지. 문의 02-3219-0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