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국내 복귀는 이뤄질까? 2010년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박찬호(왼쪽)가 류현진에게 구질을 설명하고 있다. 박찬호는 평소 “마무리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지도자보다 유소년 야구 육성 포부
박찬호는 2009년 8월경 서울 성수동 ‘서울의 숲’ 근처에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현재 비어 있지만, 투자가 아닌 거주 목적이다. 강남구 신사동에 지하 4층, 지상 13층 규모의 시가 100억 원 상당의 ‘PSG(Park’s Sports Group) 빌딩’을 소유한 그가 서울에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LA 시내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마리나 델레이의 최고급 콘도 단지에 집이 있는 박찬호가 서울 시내 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국내 무대 복귀를 앞둔 포석이었다.
박찬호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팀61’ 관계자는 당시 “아파트 구입은 언젠가 한국에서 뛰겠다는 결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호의 아파트 구입은 ‘마무리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 막연한 희망사항이 아닌 ‘명확한 플랜’임을 시사한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의향을 반복적으로 내비치며 ‘프로야구 지도자’보다 ‘유소년 야구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공주 출신의 그가 매년 ‘박찬호기 전국초등학교 야구대회’를 개최하며 유소년 야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도 그래서다. 박찬호는 한국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연고 구단인 한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빙그레(한화의 전신)에 대한 추억이 많다. 당장 내년부터 한화에서 뛴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 마지막 팀은 한화가 될 것이다. 같은 생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물론 박찬호가 지금 당장 국내 무대 복귀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온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게 야구인 대부분의 의견이다. 박찬호가 깍듯이 모시는 두산 김경문 감독은 “최적의 기회는 지금”이라고 단언했다. 박찬호의 공주고 선배이기도 한 김 감독은 “찬호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더라도 마흔을 앞두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더욱이 (빅리그에서) 갈 팀을 찾지 못해 돌아오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 최다승 신기록도 세웠으니 지금이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또 다른 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찬호가 복귀를 결심한다고 해서 당장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있는 건 아니다. 현 제도에서는 한화와 입단 계약을 조율한 뒤 내년 8월에 열릴 ‘신인 드래프트’에 응해야 하고, 한화가 지명해야 내년 시즌부터 뛸 수 있다. 원칙적인 절차가 이렇다는 말이다. 박찬호는 1999년 이전에 해외로 진출한 경우여서 국내 구단이 지명한 적이 없다. 지명 우선권은 연고 구단인 한화가 가지고 있다. 올해 8개 구단 중 꼴찌였던 한화가 2012년 드래프트를 통해 박찬호를 신인 1라운드 첫 순위에 지명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지금 한국 복귀를 결정하더라도 박찬호로선 1년간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 마흔을 눈앞에 둔 투수에게 1년의 공백기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찬호는 특별조치를 통해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눈여겨볼 사례가 2007년 4월 2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실시했던 ‘해외진출 선수 특별지명’이다. 당시 KBO는 한국 프로야구 중흥을 위해 1999년 이후 해외에 진출해 5년이 지난 선수에 한해 한국 무대 복귀를 허락한다는 취지로 해외진출 선수 특별지명을 실시, KIA 최희섭과 롯데 송승준, 삼성 채태인 등이 혜택을 받았다. 한화는 공교롭게도 당시 지명순위 추첨에서 마지막 순번인 6번을 뽑아 지명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박찬호의 결심’에 시선 집중
2010년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밸런스 강화운동을 하는 박찬호. 박찬호가 국내로 돌아올 때, 그가 입단할 팀은 한화가 유력하다.
박찬호는 빅리그 서부 최고의 명문 LA 다저스와 미국을 상징하는 동부의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했다. 두 팀에서 모두 뛴 행운의 선수는 빅리그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올해 양키스에서 2승, 피츠버그에서 2승을 따내며 일본인 노모 히데오가 갖고 있던 아시아인 통산 최다 123승 기록을 깨고 124승의 값진 열매도 따냈다. 한국인 빅리거 1세대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박찬호는 스스로도 “많은 걸 이뤘다”고 말한다. 17년 빅리거로 활약한 박찬호가 이루지 못한 꿈은 단 하나, ‘챔피언 반지’를 껴보는 것이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았던 다른 팀의 제안을 뿌리치고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박찬호가 앞으로 1~2년 빅리그에서 더 뛰어 챔피언 반지를 끼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현 소속팀 피츠버그 잔류는 물론, 우승 유력팀으로의 이적은 더욱 어렵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젊은 선수 중심으로 새판을 짜는 피츠버그도 몸값이 비싼 박찬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할 가능성은 낮다. 다른 팀 역시 마찬가지. 박찬호가 내년 시즌 미국에서 다시 뛰려면, 마이너리그 계약을 받아들인 뒤 스프링캠프에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 빅리그 무대를 밟아야 한다.
박찬호는 한국 복귀에 대해 “가족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한 그는 가족의 뜻을 존중한다. 박찬호가 걱정하듯 아내 박리혜(35) 씨, 딸 애린(4)과 세린(2)에겐 한국 생활이 낯선 환경과의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원정 생활을 해야 하는 빅리그와 다르게 국내에서 뛴다면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박찬호가 한화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만 하면, 제도상의 문제를 포함해 현실적인 장벽은 의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이 크다. 계약금 문제로 한화와 줄다리기할 상황도 아니다.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면, 2011년 한국 프로야구는 또 다른 중흥의 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박찬호의 결심’을 더 주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