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발효조미료 제품인 미원은 1970년대 초반까지 각 중소기업과 CJ의 도전을 물리치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까지 미원이 있는 집은 ‘좀 사는 집’, 없는 집은 ‘가난한 집’으로 취급받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알 만한다. 지금이야 ‘미원을 친’ 찌개의 인기가 수그러들었지만, 당시엔 ‘미원을 친’ 찌개는 구수함의 상징이었다. CJ가 1963년 중소기업을 인수하고 발효조미료 ‘미풍’을 내면서 도전장을 던졌지만 미원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1977년 말 CJ가 출시한 ‘아이미’가 시장점유율 40%를 넘어 바짝 뒤쫓는 듯했지만 결국 미원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1라운드는 대상의 한판승.
미원이 독점하던 시장은 1975년 CJ가 출시한 복합 천연조미료 ‘쇠고기 다시다’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MSG에 쇠고기와 생선, 양파, 파, 마늘 등 각종 동식물 원료를 첨가한 종합조미료 쇠고기 다시다는 출시 즉시 조미료 시장을 평정하고 1위에 올랐다. 대상은 맛나와 감치미 등 천연성분이 많이 들어간 종합조미료를 출시했지만 다시다의 큰 파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다시다는 현재까지 조미료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2라운드는 CJ의 승.
대상에 대한 이례적 압수수색
다시다는 1975년 11월 출시 후 34년간 국내 조미료 시장에서 1위를 지켰다. 식품업계에서 잘 알려진 장수 히트상품 중 하나. 다시다는 그동안 80% 이상의 경이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단일 상품으로 2009년 말 기준 국내외 판매액이 3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까지 누적판매량은 55만5000t, 3000g 제품 기준으로 팔린 수량만 18억5000만 개에 이른다. 이는 연간 5600만 개, 분당 107개씩 꾸준히 팔렸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팔린 제품을 가로로 이어붙이면 42만5000km로 지구를 10바퀴 반 넘게 돈 길이. 4인 가족 기준으로 가정에서 국, 찌개를 만들 때 평균적으로 다시다를 16g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무려 346억8000만 그릇의 찌개에 다시다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쇠고기 다시다’를 둘러싸고 최근 큰 파열음이 일었다. 6월 28일 CJ가 대상의 ‘쇠고기 진국 다시’ 제품을 상대로 제조판매 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쇠고기 진국 다시’는 대상이 6월 18일 출시한 종합조미료로 겉포장이 CJ의 ‘쇠고기 다시다’와 비슷해 출시 때부터 화제가 됐다. 식품업계는 지금껏 포장 형태가 비슷한 ‘미투’ 제품이 나오면 몇 차례 신경전을 벌이다 상대편에서 포장 형태나 용기, 브랜드명 등을 바꿈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CJ는 대상 측에 한 번의 경고도 없이 소송을 걸었다. CJ 관계자는 “작은 중소업체의 경우는 경고장부터 주지만, 대상 같은 대기업은 영업망이 우리 못지않게 탄탄하기 때문에 경고장을 주고 어쩌고 시간을 주면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 일단 제조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얻는 게 좋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7월 19일 CJ의 손을 들어줬다. CJ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 결정한 것. 서울 북부지법은 “대상이 별지 포장을 사용한 조미료 제품 ‘쇠고기 진국 다시’를 제조, 판매, 수출, 전시하거나 선전광고물에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대상의 ‘쇠고기 진국 다시’가 여러 면에서 CJ의 ‘쇠고기 다시다’와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상 측은 이에 발끈해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응소를 할 예정. 대상 관계자는 “상품 포장의 붉은색 바탕과 원재료 사진은 CJ의 독점적 권한으로 볼 수 없고 일반적으로 허용된 표현 방식이다. 더욱이 ‘쇠고기 진국 다시’는 주로 업소용으로 업소 주인들은 겉포장을 보고 주문하는 게 아니다. 헷갈려서 주문을 잘못할 확률이 없다. ‘쇠고기 진국 다시’에는 미원 마크가 전면 상단에 붙어 있어 소비자가 출처를 오인,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3세대 자연조미료 패권 어디로?
표절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CJ의 ‘쇠고기다시다’와 대상의 ‘쇠고기 진국 다시’. 법원은 ‘진국 다시’를 다시다의 표절이라고 인정했지만 대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소를 준비 중이다.
양사가 이렇게 다시다를 가지고 혈투를 벌이는 이유는 조미료 시장의 변화 때문이다. 미원류 등 발효조미료 시장(1000억 원, 수출 포함)은 연 10%씩 줄어드는 반면, 다시다류 등 종합조미료 시장(연 3%씩 매출 감소)은 아직도 연 2000억 원대의 매출을 유지하며 식당과 업소에서 판매와 수출이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CJ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시장. 앞으로 소송과 수사가 진행되면서 진실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조미료 시장은 1세대 발효조미료 미원 시대와 2세대 종합조미료 다시다 시대를 거쳐 MSG를 비롯, 합성첨가물을 넣지 않은 자연재료 조미료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3세대 자연재료 조미료 시장이 향후 10년간 조미료 시장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데는 두 회사 모두 이견이 없어 보인다.
첫 포문은 CJ가 열었다. 2007년 4월 CJ는 업계 최초로 MSG를 빼고 천연재료로만 만든 다시다 ‘산들애’를 출시했다. 7개월 뒤인 11월에 대상이 MSG를 비롯해 핵산, 산분해간장, 합성착향료, 설탕, 합성보존료 등 모든 인공원료를 넣지 않은 ‘맛선생’을 내놓았다. CJ는 2008년 7월 7가지 인공성분을 완전히 제외한 ‘웰빙 다시다 산들애’를 내놓았고, 지난해 10월에는 이를 다시 국내산 재료로 업그레이드했다.
3세대 자연재료 조미료 시장에선 CJ가 한발 앞서가지만 대상과 큰 차이가 없다. 시장점유율(닐슨 판매액 기준)은 2009년 ‘산들애’ 52.6%, ‘맛선생’ 47.4%, 2010년 7월 말 현재 ‘산들애’ 54.4%, 대상 45.6%로 10%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연간 성장률이 26%에 이르는 3세대 자연조미료 시장의 연간 판매액은 176억 규모로 이들 회사는 올해 매출액이 200억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