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주이스라엘 한국대사(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내년에 메달 및 감사증서를 받을 수상 예정자들.
이스라엘은 한국전쟁 물자지원국 32개국 중 하나로 실제 참전국은 아니다. 한국전에 참가하지 않은 나라에 어떻게 참전용사가 있을까. 이들은 모두 미군으로, 한국전에 참가했다가 이스라엘로 이민 온 유대인이다. 마영삼 주이스라엘 한국대사는 우연히 행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 대사가 프랑스 노르망디 유엔군 묘역을 방문했을 때다. 십자가가 새겨진 수많은 묘비 사이에서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박힌 묘비들을 보고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유대인이 있다면 한국전쟁에 참가한 유대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대사관이 반세기도 더 지난 전쟁에 참가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전용사 상당수가 고인이 됐고, 이스라엘이 참전국이 아니어서 관련 자료를 모으는 데도 애를 먹었다. 한국대사관은 워싱턴에 본부를 둔 유대인 참전용사 단체(JWV) 이스라엘 지부를 통해 참전용사를 수소문했다. 올해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참전용사를 찾는 광고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참전용사는 이미 메달과 감사증서를 받은 8명을 포함해 17명으로, 내년에는 남은 9명이 메달과 감사증서를 받을 예정이다.
반세기 지난 일 또렷이 기억
마 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전에 참가한 나라와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켜낸 숭고한 행위’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반면 북한은 체제에 변화가 없지만, 그럼에도 형제애로써 북한의 형제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연설을 이어가던 마 대사는 중간에 말을 바꿔, 이날 오후 2시 30분에 있었던 북한과 포르투갈 축구 경기에서 북한이 패배했다며 한국-나이지리아전에서 한국의 형제들이 더 낫다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행사에 참석한 노병들은 반세기도 지난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이날 메달을 받은 조슈아 스케러 씨는 전쟁 막바지인 1953년에 참전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한국전에 참가했다기에 당신의 나이가 80살은 된 줄 알았다”고 하자 스케러 씨는 “난 1933년에 태어났고 올해 77살이다. 그때는 히틀러가 집권한 해였다. 나는 19살에 한국에 갔다”라고 힘주어 말할 정도로 정정했다. 또한 벤 로빈 씨는 1952년 21세 때 미 해군으로 부산에서 6개월간 복무하며, 한국 해군에 전쟁물자로 공급된 미 해군 함정의 운용법을 지도했다. 로빈 씨는 가족행사 때문에 불참하려 했지만 자랑스러운 메달을 받는 모습을 두 아들과 손자,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모두 데리고 참석했다. 1973년 이스라엘로 건너온 로빈 씨는 이스라엘 방위군(IDF) 장교로 복무하며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에도 참가했다. 로빈 씨의 두 아들도 이스라엘 공군(IAF)으로 복무했다.
메달 수상자는 아니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사진을 목에 건 노병도 있었다. 랭거트 허틀리 씨는 한국전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한국 복무 경험이 있다. 허틀리 씨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을 때 한국 복무 경험을 언급하며 축하편지를 보냈고, 반 총장의 사인이 담긴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 옆자리의 동료도 한국에서 복무했다. 그는 “내가 있던 지역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혹시 문산리, 양구리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 중년 부부도 “성남에 미군 캠프가 있느냐”며 말을 붙여왔다. 그들이 들고 있는 오래된 사진에는 상병 조너선 이름이 선명한 군복 차림의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이 부부 중 남편의 아버지로 1954년 한국에서 복무하며 재건사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복무했지만 한국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며 “한국어가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와 다른 언어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고(故) 이르윈 골드슈타인 씨 가족은 달랐다. 골드슈타인 씨는 한국전쟁에 참가했을 때 배웠던 ‘아리랑’을 안식일 가족식사 때마다 불렀다. 골드슈타인 씨의 아내는 “가족 앞에서 메달과 감사증서를 받았던 순간이 남편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골드슈타인 씨는 지난해 메달과 감사증서를 받은 일주일 뒤 눈을 감았다. 참전 노병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자신들 생애의 한 부분을 기억해준 한국에 고마워했고, 가족 앞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스라엘은 한국전 종전의 숨은 공로자
한국 국민은 잘 모르지만 한국전쟁 휴전에는 이스라엘의 역할이 컸다. 당시 이스라엘 유엔대사이자 유엔총회 부의장이던 아바 에반은 이스라엘 총리 모셰 샤레트와 함께 한국전쟁 휴전결의안의 기안을 주도했다. 하지만 휴전결의안을 이스라엘이 제출할 경우 아랍국가들을 비롯해 주변국의 반대에 부딪힐 우려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기꺼이 유럽국가가 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에 동의해주었다.
마 대사는 “알고 보면 한국과 이스라엘은 동지애와도 같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이 행사로 양국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을 지켜보며 문득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거기에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참석자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한국과 이스라엘이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사진을 목에 걸고 있는 랭거트 허틀리 씨와 동료. 한국전에 참가한 벤 로빈 씨와 그의 아내. 정복을 입은 퇴역 군인들이 행사장을 찾았다(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