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6월 8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국내시장용 갤럭시S를 공개했다. SK텔레콤 하성민 사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과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사진 왼쪽부터)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폰 열풍은 신드롬을 넘어 사회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모바일 혁명까지 일으켰다.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면서 노키아에 이어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했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4%대에 그쳐, 대만의 HTC에조차 밀리는 굴욕을 맛봤다.
출시 5일 만에 10만 대 판매 기염
그로부터 지난 6개월간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겨냥한 최고의 저격수를 키우는 데 갖은 공을 들였다. 아이폰을 잡기 위해 구글과 손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슈퍼 아몰레드, 분리형 배터리 등 삼성전자의 화려한 하드웨어 스펙을 가미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내놓았다. 하드웨어 스펙의 우수함으로 소프트웨어의 미진함을 메우려 한다는 옴니아폰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신종균 사장은 “슈퍼 아몰레드, 슈퍼 디자인, 슈퍼 앱을 갖춘 갤럭시S는 바로 슈퍼 스마트폰”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4G가 6월 8일 미국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같은 날 갤럭시S를 한국에서 선보이며 정면충돌도 불사했다. ‘2차 스마트폰 대전’은 갤럭시S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호의적이어서 1차 대전과 비교적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6월 24일 국내 출시 첫날 5시간 만에 공급물량 1만 대가 모두 팔리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출시 5일 만에 10만 대 판매를 돌파하면서 국내 단말기 판매 역사상 단일 기종으로는 최단기간 10만 가입자를 달성해 아이폰의 이전 최고 기록(출시 10일 10만 대 돌파)을 경신했다.
외견상 갤럭시S의 선전이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외 IT전문가들은 “단지 갤럭시S가 아이폰보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삼성전자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선 갤럭시S의 판매량 상당수가 법인 영업에서 나오고 있음을 지적하며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마케팅 승리”라고 평가절하 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의 핵심요소인 운영체제,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삼성전자의 근본적 고민이 갤럭시S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 그러다 보니 갤럭시S가 진정 아이폰의 저격수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자는 반응이 대다수다. 드림위즈 이찬진 대표는 “아이폰을 사려는 사람은 결국 아이폰을 산다. 갤럭시S도 아이폰보다는 다른 안드로이드폰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이 애플의 맞상대로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한 갤럭시S를 선정함으로써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경쟁은 애플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의 맞대결로 좁혀졌다. 현재 운영체제 판도는 애플과 구글 외에도 노키아의 심비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 등 다양한 운영체제가 각축을 벌이는 춘추전국 상황으로 PC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이 석권한 것과는 대비된다. 한 IT전문가는 “삼성전자도 지난 5월 독자적으로 개발한 바다 운영체제를 유럽시장에 선보이며 운영체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갤럭시S 출시로 스스로 고백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운영체제를 구글에 의지하다 보니 운영체제의 버전업에 맞춰 삼성전자 스스로 전체 개발일정 로드맵을 짜고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추종전략 큰 틀에서 변동 없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스펙을 접목시킨 갤럭시S는 현존하는 최고의 안드로이드폰으로 불린다.
앱스토리 박민규 대표는 “오랜 기간 애플이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삼성이 따라잡기 쉽지 않다. 스티브 잡스처럼 IT와 철학을 접목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차이를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사 갤럭시S가 아이폰4G보다 많이 팔린다 해도 수익 면에선 여전히 아이폰4G가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수익창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단말기를 대량 판매해 일정한 마진을 남기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갤럭시S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애플은 아이폰 단말기 판매를 통해 20% 이상 영업이익을, 아이폰 사용자들이 어플을 구매할 때마다 구매금액의 25~30%를 매출로 확보한다. 또한 아이튠스에서 영화나 음악을 구매할 때도 구매금액의 25%를 매출로, 그리고 독점계약을 맺는 이동통신회사에도 2년간에 걸쳐 일정 금액을 로열티로 받는다. 이처럼 애플은 수익모델이 다양화돼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포함해 전체 휴대전화 판매량은 삼성전자에 밀리지만 영업이익은 2배 가까이 많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를 출시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외쳤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삼성전자가 구사한 전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반도체, TV, 휴대전화 등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품목 중 어느 것 하나 먼저 시장에서 만들어낸 것은 없다. 시장 선도자들이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며 새로운 방식의 제품을 내놓으면, 재빨리 습득해 더 좋은 제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1등을 따라잡는 것이 그동안 삼성전자가 취해온 전략이었다.
애플의 운영체제와 경쟁하고자 삼성전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갤럭시S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를 보강하기 위해 자체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시장에서 우수한 개발자를 모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보다는 시장 선도자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1등과 경쟁하려는 전략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원광연 교수는 “삼성전자는 이미 최고의 하드웨어 제조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할 수도, 변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빨리 그것을 습득하고 더 좋은 제품을 내놓는 전략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두고 일부에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폄하했다. 이때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워보라고 한 뒤 아무도 하지 못하자 달걀을 깨서 세웠다. 콜럼버스는 “남이 먼저 한 것을 따라 하기는 쉽지만 처음에 하기는 힘들다”고 일갈했다. 비록 삼성전자가 현존하는 최고의 안드로이드폰으로 평가받는 갤럭시S를 내놓았지만, 시장이 깜짝 놀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창조적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갤럭시S의 선전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