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동굴에서만 지냈다. 지나온 세월도 부침이 심했지만, 이번 건은 타격이 컸다. 세상에 얼굴을 내밀면 모두가 “바보”라고 욕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역시 명약이었다.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와 다시금 기지개 켤 준비가 됐다. 6월 11일 만난 서갑수(63) 전 한국기술투자(KTIC) 회장은 재기를 위해 다시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
“제도 지키고선 선구자 될 수 없어”
잔인한 봄이었다. 서갑수 전 회장은 지난 3월 일본계 기업인 SBI코리아홀딩스에 KTIC의 경영권을 내줬다. 24년간 제 몸처럼 아끼던 회사.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 마음이 더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그의 장남 서일우(35) 전 KTIC홀딩스 대표는 구속됐다. 그간의 심경부터 물었다. 담배를 꺼내 문 그는 호흡을 고른 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간 어떻게 지냈나.
“하늘나라에 다녀온 기분이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히 생각하니 부끄러운 점이 없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재산을 탐해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집도 주식도 뺏겼다. 외국 지인이 차를 빌려주고, 친구들 도움으로 골프장에 다니며 바깥활동을 시작하는 중이다. 재판을 받느라 바쁘고.”
▼ 잘못은 없고 억울하기만 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내가 잘못한 것은 사람관리다. 초기에는 벤처계 사람 대부분이 양질이었다. 20년이 지나고 시장이 커지면서 온갖 사람이 들어왔다. 경영권을 뺏긴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다. 제도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벤처와 맞지 않는 제도 때문에 횡령, 배임 등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 구체적으로 제도적 미흡함이란?
“아무도 안 하는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게 벤처다. 벤처캐피털은 가능성을 보고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해야 하는데, 법정에서는 담보를 챙겼느냐고 문책한다. 답답한 일이다. 스톡옵션제도 문제다. 창업자에게 몰아주지 않고 직원들에게 나눠주니 부족한 투자금을 회사 돈에서 끌어오는 일이 자꾸 생긴다.”
▼ 경제 범죄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돈을 못 버는 기업은 사회악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누구나 어렵다. 나로호처럼 벤처도 초기의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법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무시하지 않으면 벤처 신화를 만들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든 개척자는 고난을 당하는 거라 생각한다.”
‘벤처의 봄날’, 다시 올까
1990년대는 벤처의 봄날이었다. 수많은 청년이 주저 없이 ‘젊은 사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벤처 붐’은 ‘벤처 거품’이라는 혹평 속에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제2의 벤처 붐’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서 전 회장은 벤처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볼까.
▼ 최근 스마트폰과 녹색산업 등을 중심으로 벤처업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벤처 붐은 일어날 수 있다. 당대의 신기술에 따라 벤처의 향배도 달라진다. 1990년대 벤처 붐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했다면, 지금의 벤처 붐은 환경문제와 관련한 녹색성장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 할 것이고, 벤처는 그중 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보호무역이 안 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하니, 그만큼 벤처에서 성공하기가 힘들어졌다.”
▼ 지난 실패에서 되새겨야 할 교훈은?
“DJ정부 때 과감한 지원을 등에 없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해졌다. 투자가나 기자가 오면 라면을 먹고, 뒤에서는 벤츠를 타고 다녔다. 투자금을 공돈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배당 못 하는 기업이 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벤처 정신’을 높게 산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것이니 실패도 용인해야 한다. 다만 투자 여부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 NHN, 한글과컴퓨터 등 굴지의 벤처기업을 발굴했다. 투자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나.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사업가 자질을 유심히 살핀다. 사업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투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의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정직한지 등을 두루 판단한다. 미국에서는 6개월 동안 심층조사를 하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 예전과 사업 환경이 많이 변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실리콘밸리는 실패한 벤처기업가들을 복직시킨다. 실패한 경영자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재고돼야 한다. 제도적 아쉬움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정부가 투자자도 경영자도 몸 사리지 않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영세한 기업은 많지만 중견기업은 드물다. 글로벌 시장에서 싸울 수 있는 정도의 기업을 키워야 한다.”
꿈꾸는 노장(老壯)
서 전 회장은 서울고 시절 3년 내내 이과 1등을 도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머리가 좋은 것일까. 스스로는 “지기 싫어하는 근성과 집중력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맨땅에 벤처 토양을 일군 데는 또 다른 강점이 하나 보태진다. 바로 감수성이다. 그는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예술을 좋아한다. 우연히 벤처 쪽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나 싶었다”며 눈을 감고 초년병 시절을 회상했다. 미간 사이 깊게 팬 주름이 더 굵어졌다.
▼ 한국 벤처를 일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화학공학과를 나와 비료회사에서 10년 일했다. 1981년 우연히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현 KTB)에서 일하게 됐다. 벤처캐피털이 뭔지도 몰랐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초기에 30명이 같이 출발했지만 내가 선두주자가 된 건 소명의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 24년간 경영한 KTIC를 잃었다.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텐데.
“가장 아쉬운 점은 굴지의 투자회사를 만들려던 꿈이 무너진 거다. 벤처는 투자가 생명인데, KTIC가 대부업체처럼 변질될까 걱정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신설 벤처 투자는 힘들다. 연륜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벤처의 해외 활로를 개척하는 일을 해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벤처는 영세해서 해외 진출이 힘들다. 엔씨소프트나 NHN 정도 돼야 진출할 수 있다. 투자를 받아 자산금융공사를 인수해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되도록 돕고 싶다.”
사업 구상을 열정적으로 펼쳐놓는 그에게 물었다. “사업안에 대해 공감하는 파트너를 찾았나?”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돈 대줄 사람이 있냐고? 일본, 중국, 중동 등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것이다. 이야기가 잘되고 있다.”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벤처기업을 길러낼 수 있을까. 내년 봄의 만남을 기약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제도 지키고선 선구자 될 수 없어”
잔인한 봄이었다. 서갑수 전 회장은 지난 3월 일본계 기업인 SBI코리아홀딩스에 KTIC의 경영권을 내줬다. 24년간 제 몸처럼 아끼던 회사.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 마음이 더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그의 장남 서일우(35) 전 KTIC홀딩스 대표는 구속됐다. 그간의 심경부터 물었다. 담배를 꺼내 문 그는 호흡을 고른 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간 어떻게 지냈나.
“하늘나라에 다녀온 기분이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히 생각하니 부끄러운 점이 없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재산을 탐해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집도 주식도 뺏겼다. 외국 지인이 차를 빌려주고, 친구들 도움으로 골프장에 다니며 바깥활동을 시작하는 중이다. 재판을 받느라 바쁘고.”
▼ 잘못은 없고 억울하기만 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내가 잘못한 것은 사람관리다. 초기에는 벤처계 사람 대부분이 양질이었다. 20년이 지나고 시장이 커지면서 온갖 사람이 들어왔다. 경영권을 뺏긴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다. 제도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벤처와 맞지 않는 제도 때문에 횡령, 배임 등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 구체적으로 제도적 미흡함이란?
“아무도 안 하는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게 벤처다. 벤처캐피털은 가능성을 보고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해야 하는데, 법정에서는 담보를 챙겼느냐고 문책한다. 답답한 일이다. 스톡옵션제도 문제다. 창업자에게 몰아주지 않고 직원들에게 나눠주니 부족한 투자금을 회사 돈에서 끌어오는 일이 자꾸 생긴다.”
▼ 경제 범죄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돈을 못 버는 기업은 사회악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누구나 어렵다. 나로호처럼 벤처도 초기의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법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무시하지 않으면 벤처 신화를 만들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든 개척자는 고난을 당하는 거라 생각한다.”
‘벤처의 봄날’, 다시 올까
1990년대는 벤처의 봄날이었다. 수많은 청년이 주저 없이 ‘젊은 사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벤처 붐’은 ‘벤처 거품’이라는 혹평 속에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제2의 벤처 붐’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서 전 회장은 벤처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볼까.
▼ 최근 스마트폰과 녹색산업 등을 중심으로 벤처업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벤처 붐은 일어날 수 있다. 당대의 신기술에 따라 벤처의 향배도 달라진다. 1990년대 벤처 붐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했다면, 지금의 벤처 붐은 환경문제와 관련한 녹색성장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 할 것이고, 벤처는 그중 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보호무역이 안 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하니, 그만큼 벤처에서 성공하기가 힘들어졌다.”
▼ 지난 실패에서 되새겨야 할 교훈은?
“DJ정부 때 과감한 지원을 등에 없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해졌다. 투자가나 기자가 오면 라면을 먹고, 뒤에서는 벤츠를 타고 다녔다. 투자금을 공돈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배당 못 하는 기업이 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벤처 정신’을 높게 산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것이니 실패도 용인해야 한다. 다만 투자 여부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 NHN, 한글과컴퓨터 등 굴지의 벤처기업을 발굴했다. 투자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나.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사업가 자질을 유심히 살핀다. 사업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투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의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정직한지 등을 두루 판단한다. 미국에서는 6개월 동안 심층조사를 하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 예전과 사업 환경이 많이 변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실리콘밸리는 실패한 벤처기업가들을 복직시킨다. 실패한 경영자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재고돼야 한다. 제도적 아쉬움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정부가 투자자도 경영자도 몸 사리지 않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영세한 기업은 많지만 중견기업은 드물다. 글로벌 시장에서 싸울 수 있는 정도의 기업을 키워야 한다.”
꿈꾸는 노장(老壯)
서 전 회장은 서울고 시절 3년 내내 이과 1등을 도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머리가 좋은 것일까. 스스로는 “지기 싫어하는 근성과 집중력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맨땅에 벤처 토양을 일군 데는 또 다른 강점이 하나 보태진다. 바로 감수성이다. 그는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예술을 좋아한다. 우연히 벤처 쪽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나 싶었다”며 눈을 감고 초년병 시절을 회상했다. 미간 사이 깊게 팬 주름이 더 굵어졌다.
▼ 한국 벤처를 일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화학공학과를 나와 비료회사에서 10년 일했다. 1981년 우연히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현 KTB)에서 일하게 됐다. 벤처캐피털이 뭔지도 몰랐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초기에 30명이 같이 출발했지만 내가 선두주자가 된 건 소명의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 24년간 경영한 KTIC를 잃었다.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텐데.
“가장 아쉬운 점은 굴지의 투자회사를 만들려던 꿈이 무너진 거다. 벤처는 투자가 생명인데, KTIC가 대부업체처럼 변질될까 걱정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신설 벤처 투자는 힘들다. 연륜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벤처의 해외 활로를 개척하는 일을 해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벤처는 영세해서 해외 진출이 힘들다. 엔씨소프트나 NHN 정도 돼야 진출할 수 있다. 투자를 받아 자산금융공사를 인수해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되도록 돕고 싶다.”
사업 구상을 열정적으로 펼쳐놓는 그에게 물었다. “사업안에 대해 공감하는 파트너를 찾았나?”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돈 대줄 사람이 있냐고? 일본, 중국, 중동 등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것이다. 이야기가 잘되고 있다.”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벤처기업을 길러낼 수 있을까. 내년 봄의 만남을 기약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