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미국 시애틀에서 일본을 경유해 오산에 도착한 미군 전세기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왼쪽). 51전투비행단장이 군인과 가족들을 환영했다.
워키토키를 들고 관제탑과 교신 중이던 주한미군 파일스 중위가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작은 점 하나가 보였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항공기는 오산 에어베이스(Air Base·이하 AB)를 선회해 랜딩, 활주로를 돌아 항공터미널 앞에 멈춰 섰다. 미국 시애틀에서 이륙해 일본 미사와AB를 경유한 노스아메리칸 767기가 예정보다 28분 늦게 도착했다.
이 항공기는 한국에서 폐쇄된 지 4년 반 만에 다시 날아온 첫 번째 미군 전세기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Patriot Express)다. 이 전세기는 승객 70명을 태우고 4월 5일 낮 12시 48분 미7공군사령부가 주둔한 오산AB로 날아왔다. 51전투비행단 비행단장은 주임원사와 함께 ‘WELCOME TO KOREA’라고 새겨진 항공터미널 앞에서 전세기를 타고 온 군인과 가족들의 손을 잡으며 한국 방문을 환영했다.
이제 미군에게는 휴가든, 공무를 위한 방문이든 상관없이 해외에 나갈 때 항공기를 타는 쉬운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러므로 공항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공군기지에서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나 ‘스페이스A(Space Available·여유 공간)’를 이용하면 된다. 이 항공기들은 모두 미 공군 항공수송사령부(AMC·Air Mobility Command)에서 통제하고, 육·해군 상관없이 모든 군인과 가족이 이용할 수 있다.
4년 반 만에 뜬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
미군에게 필요한 병력과 장비를 전 세계 어디로든 날려보내기에 ‘속달사령부’로 통하는 AMC는 미 수송사령부(USTRANSCOM)의 산하 조직이다. 그리고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는 미군이 민간회사와 계약한 전세기 서비스로, 27달러만 내면 미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올 수 있다.
이런 값싸고 편리한 전세기가 한국에서 폐쇄된 것은 2005년 10월. 주한미군 측은 병력이 감소해 낭비되는 예산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전세기 폐쇄로 대략 6700만 달러의 경비가 절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써 세계 27개 지역을 날아다니는 전세기가 주한미군에게만 폐쇄됐다.
미군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전세기가 폐쇄되기 전인 2004년 한 해 동안 전세기를 이용한 미군과 가족은 3만6000여 명이었다. 이들은 전세기가 폐쇄된 이후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고, 그만큼 시간과 돈이 소모돼 불만이 많았다. 그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난 최근, 비행경로와 운항시간이 확정되고 전세기가 다시 운항되기 시작했다.
비행경로는 두 가지다. 시애틀에서 미사와AB를 경유해 오산AB에 내리는 것이 하나고, 시애틀에서 일본 요코타AB를 거쳐 오산AB에서 기착한 뒤 군산AB에 내리는 것이 나머지 하나다. 미사와 경로에서는 240명 정원의 보잉 767기, 요코타 경로에서는 190명 정원의 보잉 757기가 운항된다. 주한미군이 전세기를 다시 운항하는 이유는 평택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의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지고, 주한미군의 근무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택에는 현재 미7공군사령부와 캠프 험프리스에 미육군항공단이 주둔해 있으며, 수년 후 주한미군사령부, ‘유사(EUSA)’로 통하는 미8군사령부, 전방부대인 미2사단이 합류한다.
또한 주한미군의 근무기간이 3년으로 바뀌면서 군인의 상당수가 가족을 데려올 수 있게 됐다. 그럼 비행기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오산AB는 지금보다 3배 큰 항공터미널을 오는 7월에 열 예정이다. 군인 수송을 전담하는 항공수송사령부 수송대대인 731 AMS(Air Mobility Sguardon)의 대대장 페니 대령은 이렇게 말한다.
“전세기를 다시 운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한미군의 복지 향상이라고 보면 된다. 장기근무가 가능해져 더 많은 미군 가족이 한국에 올 텐데, 그들이 인천까지 이동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7공군 51전투비행단의 매튜 스타인스 대위는 “이제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미국 본토와 괌의 앤더슨 기지, 하와이 히컴 기지에서 날아오는 수송기들은 화물을 적재하고 남은 공간에 휴가를 떠나는 미군들을 태워준다. 그래서 이 수송기들을 스페이스A라고 부르는 것이다.
스페이스A는 공무로 이용할 때는 무료이고 휴가 때도 23달러 정도만 내면 되며, 예약할 필요 없이 공군기지 비행장으로 바로 가면 된다. 만약 휴가를 떠나고자 한다면 짐을 챙겨 공군기지 비행장으로 가서 번호가 적힌 대기자 티켓을 받는다. 그리고 자리가 나면 먼저 온 순서대로 부르는 ‘스페이스A 콜’을 기다렸다가 타면 되는 것. 이는 일반 민간공항의 ‘스탠바이 티켓’과 비슷한데, 빈자리가 없으면 숙소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아침에 동료들에게 손 흔들고 나갔다가 저녁에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운이 나쁘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스페이스A는 기지마다 일정 수의 자리만 허용돼 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패트리어트 익스프레스는 예약을 해야 하지만 200명 내외가 탑승할 수 있다.
관광특구를 ‘쇼핑천국’으로 바꿔야
미군들이 간단히 ‘세븐에이에프(7AF)’라고 부르는 미7공군은 태평양 공군 산하의 부대이며, 오산AB의 51전투비행단과 군산AB의 8전투비행단이 타격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7공군에는 그 유명한 스파이 항공기 U-2를 운용하는 5정찰비행대대가 있다. 이 비밀부대는 암호명 ‘드래건 레이디’로 부르는 U-2를 고공에 띄워 전자적 침입을 통해 평양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체가 온통 검정색인 이 스파이 항공기는 지금도 매일 북한을 향해 오산AB 활주로에서 이륙한다.
7공군사령부가 주둔한 평택시 송탄은 ‘관광특구’로 고객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제주도와 이태원 다음으로 달러 수입이 많은 곳이다. 이곳의 호황기는 1980년대에서부터 90년대까지였다.
오산AB 기지사령관이던 크리스 쇼 대령이 1996년 서명한 자료에는, 1995년 한 해 동안 전세기와 C-5, C-17, C-141 등 스페이스A를 타고 날아와 평택의 항공터미널을 통과한 여행자가 8만여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미군들은 요코타AB, 미사와AB, 오키나와의 가데나AB, 그리고 괌과 하와이에서 공짜나 다름없는 항공기를 타고 송탄으로 날아와 쇼핑을 하고 음식과 술을 먹으며 여가를 즐겼다. 그 후 2005년 전세기 운항이 중단되자, 송탄 관광특구에는 해외 미군들이 예전의 절반도 오지 않아 상인들은 달러를 예전에 비해 반도 벌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달러를 아낌없이 풀고 가던 그들이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이런 탓에 이곳 상인들은 전세기의 운항 재개를 반기고 있다.
오산AB 정문 앞에서 오랫동안 양복점을 운영했고, 미 공군의 명예 주임원사이기도 한 이경추 씨는 기대심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세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쏟아놓느냐에 따라 매상에 큰 차이가 난다.”
그의 가게는 역대 7공군 사령관들이 단골로 이용하던 곳이다. 이제 머지않아 하와이의 미군보다 쇼핑을 2배나 더 많이 한다는 주일미군들이 전세기를 타고 오산AB로 날아올 것이다.
그러나 송탄 관광특구는 기지 앞의 쇼핑몰만 확장됐을 뿐, 특별히 달라지거나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물가가 올라서 예전만큼 인기가 없으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 육군이 있는 캠프 험프리스에는 현재 2400가구가 입주할 미군 가족숙소가 지어지고 있다. 수년 후 평택은 최대 미군 주둔도시가 될 것이며, 미군과 그 가족, 군속 등 5만 명에 가까운 미국인이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과 질이 뛰어난 상품을 개발해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이곳 관광특구에 공급하고, 면세혜택까지 주어 세계적인 쇼핑천국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주말마다 해외 미군들이 스페이스A와 전세기를 타고 앞다퉈 한국으로 날아올 터. 그럼 달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