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회관의 바싹불고기는 불기운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식당들은 재개발로 어쩔 수 없이 이동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40년, 50년 된 음식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음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재개업을 하는 경우가 숱하다. 대표적인 예가 종로의 피맛골이다. 한국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서민의 음식점 골목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역전회관도 그런 경우인데, 오래된 점포가 주는 멋스러움은 사라졌지만 음식 맛은 간직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역전회관은 1962년에 개업했다. 홍어삼합, 낙지초회 등 일품요리와 함께 ‘바싹불고기’로 명성을 쌓았다. 쇠고기를 다져 양념을 하고 불에 ‘바싹’ 구웠다 해서 나온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불고기는 얇게 썬 쇠고기를 간장 양념해 불에 구워 먹는 음식을 말한다. 국물을 자작하게 해 불판 가장자리 홈통에 국물이 괴면 사리나 밥을 더하여 먹는다. 그러나 역전회관 불고기에는 국물이 없다. 잘게 다져 갖은 양념을 한 쇠고기를 얇게 펴서 숯불에 구워 접시에 담아낸다. 두툼한 떡갈비와 조리법은 비슷하나 모양새가 사뭇 다르다. 쇠고기를 얇게 저며 굽는 서울식 너비아니의 변형으로 보면 된다.
역전회관의 바싹불고기는 불기운의 맛이라 할 수 있다. 다진 쇠고기를 얇게 펴서 강한 불에 순간적으로 익히므로 후각적으로는 불에 구운 양념쇠고기의 향이 물씬 오르고 입안에서는 육즙이 잘 잡힌 쇠고기가 사르르 녹는다. 이런 식의 불고기는 식으면서 수분이 달아나고 육질이 딱딱해지는데 역전회관의 바싹불고기는 한참을 두어도 촉촉하다. 양념에 비법이 있지 않나 싶다.
자리를 옮겨 역전회관이란 상호가 지역과 잘 어울릴까 싶었는데, 마포 명물인 갈비집 골목과 연이어 자리해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내부는 훨씬 깔끔하고 편안해졌다.
용산에서 마포로 이전할 때 사연이 있었다. 용산에서처럼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했는데도 그랬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다가 마포의 새 주방설비를 버리고 용산의 옛날 주방설비를 다시 들여다 썼더니 맛이 돌아왔다. 맛이란 오묘해 자리, 사람, 기물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이야기다.
역전회관 음식을 제대로 먹자면 4인 이상 팀을 이뤄 가는 것이 유리하다. 바싹불고기와 낙지초회, 홍어삼합 등으로 세트화해 다소 저렴하게 팔기 때문이다. 선지해장국은 기포 없이 단단하고 신선한 선지 맛이 일품이다. 마포 용강동 일대는 직장인의 저녁 회식자리가 많은 곳이다. 예약하지 않으면 조용한 내실을 확보할 수 없다. 가족끼리 갈 때는 평일 저녁을 피하는 것이 좋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5호선 마포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우회전해 150m 전방을 바라보면 역전회관 간판이 보인다. 전화 02-703-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