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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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m 쌓여 있는 흙, 벽에 갇힌 마을

파주시 문산읍 내포1리 … 침수는 물론 대기오염, 조망권 피해 우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2-10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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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m 쌓여 있는 흙, 벽에 갇힌 마을

    산업단지 지반과 진입도로 높이를 수평으로 맞추면서 마을 입구에 6m가량 높게 성토가 됐다. 펜스가 쳐진 옆쪽으로 성토가 이뤄지고 방음벽까지 설치되면 도로는 마을보다 10m 가까이 높아져 마을은 4면이 갇힌 형국이 된다.

    “절간 같았던 마을이 이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내포1리.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주민 우성제(42) 씨는 더 이상 이곳에서 여느 시골마을과 같은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쉰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포클레인이 흙을 걷어내고, 흙과 모래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분주히 오가는 모습에 일말의 기대마저 산산이 부서진다.

    월롱산업단지 진입로 공사 … 4면이 싸인 형국

    마을 건너편은 경기도시공사 감독 아래 파주월롱산업단지 기반공사가 한창이다. LG화학, LG이노텍 등이 들어서는 산업단지 공사는 현재 80% 이상의 공정률을 보인다. 산업단지 앞쪽으로는 기존의 도로를 덮고, 보호수를 옮기는 등 도로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발표되고 2007년 진입도로 개설공사를 위해 마을 주민공청회를 했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마을 토지에 대한 수용이 들어왔을 때도 큰 반대는 없었다. 주민 이정일(53) 씨는 “지금도 산업단지를 만들고 공장이 들어서는 데 반대는 없다.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마을에 큰 피해 없이 조용히 공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진입도로를 만들면서 뜻밖의 문제가 불거졌다. 산업단지 지반과 진입도로 높이를 수평으로 맞추다 보니 도로가 인근 마을 입구보다 6m 이상 높게 성토됐던 것. 소음을 막기 위해 방음벽까지 설치하면 10m 가까이 높아진다. 마을 입구에 거대한 벽이 만들어지면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졸지에 저수지처럼 갇힌 형국이 됐다. 이씨는 “마을 건너편 산업단지에 7층 높이의 건물들까지 들어서면 마을은 완벽하게 가려진다. 조망권 침해는 둘째치고 당장 올여름 비로 인한 침수 피해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마을이 여름이면 많은 비가 내려 물이 넘치는 상습침체 구역이라고 주장한다. 국지성 강우라도 내리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내포1리 마을 이장 김천기(68) 씨는 “지금 도로가 만들어지는 곳 바로 옆에 집이 두 채 있었다. 1996년 홍수 때 그 두 집이 잠겼다. 복개공사로 아직 하수도 관련 공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토사나 각종 건설폐기 오물로 배수구가 막히면 물이 범람하게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진입도로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하루에 마을을 서너 차례 오가던 버스의 정류장도 기존 위치에서 더욱 멀어졌다. 계획대로 도로가 마을보다 10m 가까이 높아지면 주민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45도에 가까운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 150여m를 둘러서 돌아가야 한다. 김천기 씨는 “주민 대부분이 60, 70대 노인인데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 150여m를 돌아가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마을 전체가 푹 가라앉은 분지 형태가 되다 보니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공사를 하면서 마을 주변 공기가 나빠졌는데, 성토가 돼 분지지형에 갇혀버리면서 통풍이 제대로 안 돼 공기는 더욱 나빠졌다. 더욱이 마을 주변 산업단지에 화학업체가 들어서다 보니 화학물질로 인한 공기오염까지 걱정하게 됐다. 우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없던 아토피까지 생겼다. 시골마을임에도 공기가 나쁘니 아이들더러 밖에 나가서 놀지 말라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최초 환경영향평가서에 나온 것과 달리 성토 문제가 불거지자 주민들은 파주시, 경기도시공사, 경기도 등을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파주시, 국민권익위원회를 포함한 관련 기관들은 침수피해는 없다며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주시는 “50년 빈도의 강우에도 통수능력이 충분하고 수리적으로도 안전하게 설계돼 홍수 피해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검토됐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침수피해에 대한 우려만으로 마을 전체를 6m 높이로 성토해달라는 신청인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다만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침수피해 예방을 위해 배수설비를 충분히 설치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산업단지 조성과 진입도로 공사를 담당하는 파주시와 경기도시공사는 ‘문제는 없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해결한다’며 주민들 앞에 나섰다. 경기도시공사는 주민들과의 논의 끝에 마을 입구에서 직선 거리로 130m까지 지반을 높이는 공사를 계획했다. 진입도로는 파주시 관할이지만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도로가 만들어지는 만큼, 성토는 파주시가 담당하고 이때 생기는 보상 문제는 경기도시공사가 맡는 것으로 업무분담이 이뤄졌다.

    경기도시공사, 전체 주민 동의 없어 해결에 난색

    주민들 역시 성토 공사를 위해 주민 103명 중 101명의 동의를 얻어왔다. 손쉽게 해결되는가 했던 문제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꼬였다. “130m 성토를 하면 우리 집이 내려간다” “마을이 성토되면 재산 가치가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의 반발에 부딪히자 경기도시공사가 태도를 바꾼 것. 이들은 대다수 주민이 마을 주변을 성토해달라고 민원을 넣으면 다시 반대민원을 넣어 계획이 진행되지 못하게 했다. 상황이 이러자 경기도시공사는 전체 주민의 동의가 있어야만 마을 주변 성토가 가능하다며 한 발짝 발을 뺐다.

    경기도시공사 정상준 산업단지처장은 “도와주고 싶어도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임의로 성토를 할 수는 없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는데 무작정 마을 입구를 성토했다가는 다시 원상복구해야 한다. 더욱이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비롯해 여러 기관이 나와 검토한 결과 침수피해 등에 문제가 없음이 드러났다”며 난색을 표했다.

    경기도시공사의 주장에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주민 이모(68) 씨는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100% 동의를 얻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성토 문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직접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두서너 명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말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성토 문제를 둘러싸고 마을 주민과 경기도시공사, 그리고 주민들끼리 갈등이 계속되자 그만큼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한 주민은 “반대민원을 넣는 주민들이 지자체나 공사 측과 연관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민들 간에 다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평생 농사일만 알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2년째 대책위를 꾸미고 농사도 뒤로한 채 관공서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씨는 “산업도 중요하고 공사도 중요하지만, 먼저 주민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민원부터 조속히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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