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일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6·2 동시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이번 선거부터 휴대전화 통화와 SMS 동보전송 등이 허용되면서 선거의 최대 승자는 이동통신 업체라는 얘기가 나온다. SKT, KT, LGT(왼쪽부터).
개정 공직선거법이 1월25일 공포 시행되면서 6월2일 치르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최대 승자는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가 될 것이라는 웃지 못할 분석이 여의도 정가에서 흘러나온다. 선거에서 승자는 당선자와 당선자를 많이 낸 정당일 터. 선거와 이통사의 함수관계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정치관계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비후보자와 후보자는 동보(同報)통신으로 최대 5회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직접 통화도 가능하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는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선거법 개정으로 이통사는 땅 짚고 헤엄치게 됐다는 얘기다.”
후보자들 “휴대전화 적극 활용”
서울의 한 정치 컨설팅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선거에서는 최대 5회까지 동보통신을 이용해 문자메시지(SMS)를 대량 발송할 수 있게 됐다(제82조의 4). 동보통신은 하나의 송신 장치에서 여러 수신 장치로 동시에 같은 내용의 정보를 보내는 통신방법. 흔히 신용카드 결제 확인이나 주문·예약 확인처럼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이동전화 가입자에게 대량의 SMS를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서비스다. ‘기업용 메시지’ ‘ C2P(Computer to Phone) 메시지’로 부르기도 한다. 정부의 재난·질병 알림 서비스나 학교 동문회에서 회원들에게 보내는 SMS도 동보통신에 해당한다.
동보통신 허용과 이통사의 ‘땅 짚고 헤엄치기’ 사이 함수는 동보통신 운영 실태를 살펴보면 풀 수 있다. 개인이 휴대전화로 SMS를 보내면 건당 요금은 20원. 동보통신은 기업이나 대량 SMS 발송 중계업체가 KT나 SKT 등 이통사와 계약을 맺고 발송량에 따라 건당 10~20원 차등 적용한다. 월 10만 건 이하는 건당 20원, 100~200만 건을 발송하면 건당 15원, 1500만 건을 초과 발송하면 건당 10원을 받는 식이다. KT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체들이 기업형 메시지 발송 신청을 하면 플랫폼을 열어 통신망을 쓸 수 있게 한다. 발송 후 요금표에 따라 요금을 청구하는데, 재난선포나 질병전파 등 국민 안전과 권익을 목적으로 국가행정기관이 운영하는 전산센터일 경우 요금은 15% 할인 적용한다.”
물론 이통사가 개인과 직접 대량 발송 메시지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지방선거 후보자가 직접 3000만원대의 서버 장비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SMS 발송을 중계하는 별정사업자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수신자 전화번호와 SMS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입력하면, 이들 중개업체는 다른 고객(혹은 유권자)들의 SMS를 함께 모아 이통사에 전달해 발송한다. 인터넷상에서 각종 모임 알림서비스나 새해 인사 대행서비스를 해주는 업체는 이미 수십 개가 넘고, 시장 규모도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업체는 추산한다.
“우리는 C2P SMS를 모아 이통사에 전달하는 C2P 중계서비스 업체라고 보면 된다. SMS 도매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객들에게 받은 요금 중 이통사에 내고 남은 차익을 수익으로 챙긴다. 발송 건수를 많이 모으면 그만큼 월 사용요금 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고객 유치가 관건이다. 각종 동문회 소식이나 스케줄 알림, 금융 정보, 유흥업소의 고객관리 등 SMS 내용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선거 SMS 관련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보자는 정해진 양식에 맞게 컴퓨터로 수신자 전화번호와 SMS 내용을 입력하면 된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건당 요금은 15~25원 선. 만약 후보자가 유권자 3만명에게 SMS를 보내려면 45만원(건당 15원)이 든다. 이 중 30만원가량은 이통사에게 지불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6·2지방선거는 8개의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역대 최대 규모다. 1명의 유권자가 8명의 후보를 뽑는 ‘1인 8표제’가 실시된다. 선출인원만 3991명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만5000여 명의 후보자가 이번 선거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예비후보자와 후보자들은 법이 바뀐 만큼 (예비) 대부분 동보통신을 이용하려 한다. 서울의 한 기초단체장 출마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자.
정치권 “수익 논란 생각 못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8명을 찍어야 하는데 사실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당(黨)에서도 후보자 공천심사의 주요 기준으로 후보 인지도를 평가한다. 예비후보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비용이 훨씬 더 드는 설문조사도 돌리는 판에 SMS를 안 하겠느냐.”
이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6개 시도(市道)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선거에 각 5명의 후보가 등록했다고 가정하면 후보자만 160명. 시도별 평균 유권자 236만명(18대 총선 당시 유권자 3779만6035명÷16)의 10%(약 23만6000명)에게 SMS를 발송하면 3776만 건이 된다. 이통사의 최대 할인액(1500만 건 초과 시 10원)을 적용하더라도 이통사는 최소 3억7760만원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230개 기초단체장 선거에 지역구별 5명의 후보가 출마한 경우를 가정하면 1150명. 이들이 기초지자체 평균 유권자(16만4330명)의 10%에게 SMS를 발송하면 1890여 만건이 되고 금액으로 치면 1억8900여 만원이다. 이를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에게 적용해도 각각 1억8900여 만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최대 5회까지 동보통신을 보낼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광역·기초단체장, 교육감, 광역·기초의원 5개 선거에서만 SMS 발송으로 50억원의 수익이 난다.
이는 물론 유권자의 10%에 한정한 것이고, 공천을 받기 전까지 난립할 예비후보자의 동보통신 비용과 휴대전화 통화비용은 뺀 금액이다. 개정 선거법에는 휴대전화나 인터넷 무료서비스로 20인 이하에게 보내면 동보통신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를 합치면 수백억원에 이른다. “이통사는 손 안 대고 코 풀게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SKT 관계자는 “휴대전화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해 SMS를 발송했을 때나 가능한 경우다. 유권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하는 게 가능하겠느냐. ‘손 안 대고 코 푼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한 해 (SKT의) SMS 발송 건수 500억 건에 비하면 (선거용 SMS는) 미미한 수준이다. 후보자들의 불법 휴대전화 번호 수집 사례를 취재하는 게 어떠냐”는 반응을 보였다. 20원씩 단순 계산하면 SKT는 1년에 1조원의 SMS 사용 수익을 낸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SKT 관계자의 예상과 다르게 진행 중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설명이다.
“당 공천을 받으면 각 당에선 어느 정도 축적된 지역 유권자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전화번호가 적힌 명부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이 가진 데이터도 있다. 지역구 내 유권자의 연락처는 60~70% 확보할 수 있다. (기자가 가정한 유권자 10%에게 SMS를 발송한 것을 두고) 10%는 너무 적게 가정했다.”
또 다른 광역의원 출마 후보자의 설명은 더욱 구체적이다.
“후보자와 선거사무원이나 자원봉사자를 통해 각 100명 정도만 연락처를 모으면 금방 1만명이 넘는다. 데이터(유권자 휴대전화 명부)를 모을 때는 연락처를 준 사람의 이름도 표시해둔다. 만약 SMS를 보냈는데 상대 후보 지지자가 ‘개인정보(전화번호)를 어떻게 아느냐’고 항의할 때는 연락처를 건넨 소개자 이름을 대면 대부분 이해한다.”
그는 “일반 휴대전화 SMS는 주로 당원에게 투표를 독려하거나 선거운동 장소를 공지할 때 사용하고, 동보통신은 예비후보자 때 3회, 후보자 때 2회 정도 발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후보자가 선거운동에 사용한 동보통신 비용이나 SMS, 휴대전화 통화료는 선거비로 보전받을 수 있다. 중앙선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공영제는 선거운동에 꼭 필요한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취지다. 동보통신을 위한 고가의 서버 장비 구입 등은 통상적인 선거비용으로 보기 어렵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선거비로 보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휴대전화 통화와 대량 SMS 발송을 허용했지만 ‘이통사 수익 논란’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사진은 지난해 정개특위 모습(왼쪽). 6·2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등록 첫날인 2월2일 수원시 경기도선관위에서 한 경기도지사 후보 관계자들이 예비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이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이통사의 배를 불려준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법을 개정한 정치권에서도 대체로 이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2월10일 국회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선거운동에 사용되는) 돈은 묶고 발은 푼다’는 원칙과 SMS 한 통 잘못 발송해 후보자들을 대거 선거사범으로 만드는 규제를 풀어야 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동보통신을 허용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미처 그 부분(이통사의 수익 논란)은 생각하지 못했다. 선거비로 보전되면 당연히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이어서 업체와 (비용 인하 등을) 논의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YMCA 시민사회개발부 한석현 간사는 “SMS 발송 비용이 거의 미미한 상황이고, 특히 세금을 쓴다는 측면에서 정치권은 법 시행 전에 이 부분을 생각해봤어야 했다. 선거 이후 이통사와 정치권 양측 모두 (요금 문제는) 부담이 될 것이다. 게다가 선거 SMS에 ‘수신거부 표시’를 명시한다지만 유권자는 ‘수신거부’ 답변하는 것도 번거로워 자칫 ‘문자 폭탄’에 노출될 수 있다. 적정한 조정이 있어야 했는데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선관위 등에서 국민 권익 목적이라고 규정한다면 (선거 SMS 요금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권에서 선거법을 개정한 것을 우리가 먼저 나서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0년 현재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4951만명이다. 그만큼 휴대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시대적 추세임이 분명하다. 선거 SMS 발송 허용으로 국내 이통산업을 간접 지원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차량을 빌리거나 현수막 제작에 사용된 선거 비용을 보전하는 것과, 과점체제를 형성하며 높은 진입장벽 안에서 안정적으로 투자비용을 회수한 이통사의 SMS 요금을 보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 동량지재(棟梁之材)를 뽑는 중요한 국가 대사(大事)를 법으로 정하면서 세심한 부분까지 고민하는 입법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요원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