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냥 져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한마디가 ‘전쟁’을 예고했다. 날선 신경전. 이번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키워드였다. 경기도 물론 치열했지만, 장외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그라운드 안팎, 응원 스탠드에서도 서슬 퍼런 대립각을 세웠다. 10월15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행사 때부터 KIA와 SK의 격전이 벌어졌다.
SK 김성근 감독의 제자인 KIA 조범현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우승 전망을 묻자 “스승님이 두 번 우승하셨으니 이번엔 제자를 봐주실 것 같다”고 선수를 쳤다. 그러자 김 감독은 “내가 제자랑 이 자리에 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스승 노릇 잘한 것 같다”고 운을 띄우더니 “스승이 쉽게 지면 스승의 가치가 없다. 악착같이 좋은 경기를 하겠다”며 다부지게 응수했다.
서재응 vs 정근우 제2라운드
두 감독의 설전에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흠칫 놀란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사회자가 “(양 감독께서) 져준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라는 멋쩍은 농담을 던져 가까스로 ‘얼음판’을 수습했다. “스승님이 봐주실 것”이라는 조 감독의 말은 ‘스승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에둘러 한 말이지만 강한 투지가 엿보였다. ‘야신(野神)’ 김 감독도 제자의 말을 애교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웃음 한 번 짓지 않았다.
팀 전력과 목표에서 자신감을 드러낸 조 감독은 자신의 승리 징크스도 잊지 않았다. 정규시즌 중 얇은 살구색 점퍼를 입고 경기에 나온 날엔 반드시 팀이 승리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조 감독은 1, 2차전 홈경기에서 두꺼운 점퍼 대신 굳이 얇은 살구색 점퍼를 입고 나와 승리를 거둬 징크스의 위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살구색 점퍼를 입지 않은 3차전 원정경기에서 대패한 뒤 4차전에 다시 이 점퍼를 입고 나왔지만 3대 4로 석패해 징크스 효과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봉박두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연출된다 싶더니, 결국 운명의 1차전도 ‘사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1차전이 열린 10월16일 광주구장. KIA 벤치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SK가 사인을 훔쳐보려고 준비했다며 흥분한 것.
KIA 측은 “SK가 우리 사인을 파악해 선수들에게 교육시켰다고 들었다”면서 “상대방의 사인을 알아챈 것 자체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전력분석 미팅 때 선수들에게 그걸 알렸다면 선수들에게 ‘출루하면 사인을 훔쳐서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노발대발했다. 이에 SK 측이 “사인을 노출하는 게 바보 아닌가. 야구는 상대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맞대응함으로써 거센 충돌이 일었다.
김 감독은 KIA 측의 문제 제기를 토대로 한 언론보도에 화가 났는지, 이후 기자회견에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일은 또 있었다. 이날 4회 KIA 김동재 코치가 오석환 주심을 찾아가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이 관중석에서 사인을 내 수비수들의 위치를 지시한다”고 항의했다. 오 주심은 SK 측에 이를 시정하라고 지시했다.
수비수의 위치 변경은 코치나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지시해야만 한다. 사인 훔쳐보기, 원격조종 등은 모두 대회요강 26조 위반사항이다. 사인 훔쳐보기 논란은 KIA 측 주장 말고는 증거가 없어서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지만, 원격조종은 이후 KBO까지 나서면서 또다시 문제가 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광주 1, 2차전을 뒤로하고 양 팀 선수들은 인천문학구장으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진정되는 듯했다.
SK 선수들은 “홈구장에 오니 좀 안정된 느낌이다.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겠다”고 별렀으며, KIA 선수들은 “내친김에 4전승으로 시리즈를 마치겠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3차전 더그아웃의 분위기로 봐서는 명품 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4회 KIA 투수 서재응과 SK 2루수 정근우가 감정적으로 충돌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진 것. 정근우의 강습 타구를 잡은 서재응이 1루에 공을 천천히 던졌는데, 이를 놀리는 제스처로 본 정근우가 서재응에게 눈을 흘겼고, 서재응은 정근우에게 욕설을 한 것이다.
응원 앰프 소리 크기 놓고도 으르렁
그렇다고 해도 벤치 클리어링 소재로는 좀 약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정규시즌에서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9월8일 광주 맞대결 때 3회 2사1루 상황에서 정근우가 서재응의 공에 맞았고, 정근우가 서재응을 노려보면서 둘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KIA 측은 “정근우와 친분이 있는 우리 팀 선수가 당시 그에게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시리즈가 워낙 치열하게 진행되다 보니 사소한 일로 싸움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3, 4차전을 마친 양 팀 선수들은 5차전을 위해 서울 잠실로 이동했다. KIA는 5차전을 하루 앞두고 잠실구장에서 훈련했고, 이 자리에서 SK의 원격조종을 또다시 문제 삼았다. 1차전 때 어필해 시정되리라고 봤는데, 4차전까지 계속 하더라는 것. KBO 운영부와 심판위원회는 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증거가 있으면 관련자를 퇴장시키겠다”고 밝혔다.
SK 측이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전력분석팀이 코치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나 일단락됐지만, 두 팀 모두 뒷맛이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 간 신경전도 팽팽했다. 먼저 응원이 문제였다. 4차전 때 앰프 소리가 지나치게 커 심판이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SK 측은 KIA의 앰프 소리를 문제 삼았고, KIA 측은 SK가 홈구장인 인천문학구장의 서라운드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섰다. 사전에 합의된 앰프 소리의 용량은 10kW. 하지만 두 팀 모두 이를 가볍게 넘어섰다. 그 와중에 KIA 응원도구 판매소의 전원이 나가 막대풍선에 바람을 넣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고의성 여부를 놓고 충돌까지 빚어졌다.
신경전은 큰 경기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신경전 자체가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차 제어하기 쉽지 않다. 모 구단 관계자는 “신경전도 경기의 일부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시리즈에 3회 연속 진출한 SK는 이를 활용할 줄 안다. 이에 비해 KIA는 1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섰다.
KIA가 그런 SK의 신경전에 맞서는 데 열을 올리면서 분위기가 과열됐다. 신경전에서는 냉정함이 생명이다. 승패는 여기서 갈린다”고 말했다. 어쨌든 매 경기 접전을 벌인 KIA와 SK의 한국시리즈는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시리즈로 야구사에 기억될 것이다.
이 한마디가 ‘전쟁’을 예고했다. 날선 신경전. 이번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키워드였다. 경기도 물론 치열했지만, 장외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그라운드 안팎, 응원 스탠드에서도 서슬 퍼런 대립각을 세웠다. 10월15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행사 때부터 KIA와 SK의 격전이 벌어졌다.
SK 김성근 감독의 제자인 KIA 조범현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우승 전망을 묻자 “스승님이 두 번 우승하셨으니 이번엔 제자를 봐주실 것 같다”고 선수를 쳤다. 그러자 김 감독은 “내가 제자랑 이 자리에 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스승 노릇 잘한 것 같다”고 운을 띄우더니 “스승이 쉽게 지면 스승의 가치가 없다. 악착같이 좋은 경기를 하겠다”며 다부지게 응수했다.
서재응 vs 정근우 제2라운드
두 감독의 설전에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흠칫 놀란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사회자가 “(양 감독께서) 져준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라는 멋쩍은 농담을 던져 가까스로 ‘얼음판’을 수습했다. “스승님이 봐주실 것”이라는 조 감독의 말은 ‘스승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에둘러 한 말이지만 강한 투지가 엿보였다. ‘야신(野神)’ 김 감독도 제자의 말을 애교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웃음 한 번 짓지 않았다.
팀 전력과 목표에서 자신감을 드러낸 조 감독은 자신의 승리 징크스도 잊지 않았다. 정규시즌 중 얇은 살구색 점퍼를 입고 경기에 나온 날엔 반드시 팀이 승리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조 감독은 1, 2차전 홈경기에서 두꺼운 점퍼 대신 굳이 얇은 살구색 점퍼를 입고 나와 승리를 거둬 징크스의 위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살구색 점퍼를 입지 않은 3차전 원정경기에서 대패한 뒤 4차전에 다시 이 점퍼를 입고 나왔지만 3대 4로 석패해 징크스 효과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봉박두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연출된다 싶더니, 결국 운명의 1차전도 ‘사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1차전이 열린 10월16일 광주구장. KIA 벤치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SK가 사인을 훔쳐보려고 준비했다며 흥분한 것.
KIA 측은 “SK가 우리 사인을 파악해 선수들에게 교육시켰다고 들었다”면서 “상대방의 사인을 알아챈 것 자체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전력분석 미팅 때 선수들에게 그걸 알렸다면 선수들에게 ‘출루하면 사인을 훔쳐서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노발대발했다. 이에 SK 측이 “사인을 노출하는 게 바보 아닌가. 야구는 상대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맞대응함으로써 거센 충돌이 일었다.
김 감독은 KIA 측의 문제 제기를 토대로 한 언론보도에 화가 났는지, 이후 기자회견에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일은 또 있었다. 이날 4회 KIA 김동재 코치가 오석환 주심을 찾아가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이 관중석에서 사인을 내 수비수들의 위치를 지시한다”고 항의했다. 오 주심은 SK 측에 이를 시정하라고 지시했다.
수비수의 위치 변경은 코치나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지시해야만 한다. 사인 훔쳐보기, 원격조종 등은 모두 대회요강 26조 위반사항이다. 사인 훔쳐보기 논란은 KIA 측 주장 말고는 증거가 없어서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지만, 원격조종은 이후 KBO까지 나서면서 또다시 문제가 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광주 1, 2차전을 뒤로하고 양 팀 선수들은 인천문학구장으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진정되는 듯했다.
SK 선수들은 “홈구장에 오니 좀 안정된 느낌이다.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겠다”고 별렀으며, KIA 선수들은 “내친김에 4전승으로 시리즈를 마치겠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3차전 더그아웃의 분위기로 봐서는 명품 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4회 KIA 투수 서재응과 SK 2루수 정근우가 감정적으로 충돌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진 것. 정근우의 강습 타구를 잡은 서재응이 1루에 공을 천천히 던졌는데, 이를 놀리는 제스처로 본 정근우가 서재응에게 눈을 흘겼고, 서재응은 정근우에게 욕설을 한 것이다.
응원 앰프 소리 크기 놓고도 으르렁
그렇다고 해도 벤치 클리어링 소재로는 좀 약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정규시즌에서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9월8일 광주 맞대결 때 3회 2사1루 상황에서 정근우가 서재응의 공에 맞았고, 정근우가 서재응을 노려보면서 둘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KIA 측은 “정근우와 친분이 있는 우리 팀 선수가 당시 그에게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시리즈가 워낙 치열하게 진행되다 보니 사소한 일로 싸움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3, 4차전을 마친 양 팀 선수들은 5차전을 위해 서울 잠실로 이동했다. KIA는 5차전을 하루 앞두고 잠실구장에서 훈련했고, 이 자리에서 SK의 원격조종을 또다시 문제 삼았다. 1차전 때 어필해 시정되리라고 봤는데, 4차전까지 계속 하더라는 것. KBO 운영부와 심판위원회는 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증거가 있으면 관련자를 퇴장시키겠다”고 밝혔다.
SK 측이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전력분석팀이 코치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나 일단락됐지만, 두 팀 모두 뒷맛이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 간 신경전도 팽팽했다. 먼저 응원이 문제였다. 4차전 때 앰프 소리가 지나치게 커 심판이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SK 측은 KIA의 앰프 소리를 문제 삼았고, KIA 측은 SK가 홈구장인 인천문학구장의 서라운드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섰다. 사전에 합의된 앰프 소리의 용량은 10kW. 하지만 두 팀 모두 이를 가볍게 넘어섰다. 그 와중에 KIA 응원도구 판매소의 전원이 나가 막대풍선에 바람을 넣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고의성 여부를 놓고 충돌까지 빚어졌다.
신경전은 큰 경기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신경전 자체가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차 제어하기 쉽지 않다. 모 구단 관계자는 “신경전도 경기의 일부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시리즈에 3회 연속 진출한 SK는 이를 활용할 줄 안다. 이에 비해 KIA는 1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섰다.
KIA가 그런 SK의 신경전에 맞서는 데 열을 올리면서 분위기가 과열됐다. 신경전에서는 냉정함이 생명이다. 승패는 여기서 갈린다”고 말했다. 어쨌든 매 경기 접전을 벌인 KIA와 SK의 한국시리즈는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시리즈로 야구사에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