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에게 위촉장을 주고 있다.
“액티브(Active)요.”
사람들에게 코오롱그룹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나오는 대답이다. 코오롱은 이렇듯 섬유·의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액티브’는 코오롱에서 생산하는 의류와 신발의 대표 브랜드. 전체적으로 그룹 체제의 변화 시도가 적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거나 외풍에 시달린 적도 없으며, 그저 ‘정중동(靜中動)’의 길을 걸어온 중견 대기업 정도로 인식돼온 게 코오롱그룹이다.
그러나 이명박(MB) 정부 출범 이후 코오롱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적극적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지난해부터 MB 국가 발전전략의 최우선 분야로 꼽히는 저탄소 녹색성장산업, 그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사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재계와 정치권 등이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오롱은 올해 초부터는 아예 그룹 체제를 녹색성장산업 중심 구도로 재편했다. 이웅열 회장부터 연일 ‘올인’을 외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대비해 신성장동력사업 기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과감한 의사 결정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시무식에서 녹색성장 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코오롱건설 이주홍 부사장을 환경사업부문 사장으로 승진시켜 그 의지가 말뿐이 아님을 보여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계획수립 단계에 있던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사업이 올 들어서는 계열사별로 적극 실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케이원스(K-ONES) 등 새로운 계열사를 조직하고, 기존 계열사에 관련 업무를 신설하면서 뛰어든 태양광 에너지사업은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경북 경주시에 자리한 마우나오션리조트 안에 1MW급 실리콘 박막형 태양광 발전소를 가동시킨 데 이어, 태양전지 제조업체인 일본 가네카사와 제휴해 실리콘 태양전지 셀의 국내 독점 공급 기반을 갖췄다. 지난 5월8일 발표된 건국대와 유럽 최대 응용기술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 ISE(독일)의 차세대 태양전지 원천기술을 위한 공동연구 과정에도 코오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존 섬유사업에 친환경사업을 가미한 신사업 발굴 노력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한국섬유개발원과 녹색성장형 슈퍼섬유 소재 산업원천기술 및 융합제품 개발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최근엔 친환경 제품 생산사인 듀폰과 공동개발 협력관계를 구축해 친환경 첨단 섬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가기로 했다.
물 및 수질 관리사업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물속에서 염소로 처리되지 않는 원생생물을 없앨 수 있는 수처리용 고분자물질 보강막과 침지형 모듈을 개발해 지난해 연말 장영실상과 대한민국 기술대상을 받았고, 그 상승세를 타고 탄천물 재생센터 고도 처리시설 건설사업 등도 수주했다.
특히 물사업은 코오롱이 전개하는 녹색사업 중에서 이 회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 상하수도 사업의 민영화 여부가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세계적 물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는 곳곳에서 묻어난다. “물사업은 공히 1등 사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직원들이 1등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임원들의 몫”이라는 이 회장의 말이 코오롱 사보에 여러 차례 실린 바 있다.
코오롱이 1997년 환경부 산하 환경관리공단으로부터 100% 지분을 인수한 환경시설관리공사는 3월18일 미국의 바이오 제네시스사와 퇴적물 세척·정화기술 사용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퇴적 침전물을 유용한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친환경 기술이다. 코오롱그룹의 5월호 사보에 따르면, 회사 내에선 이 기술협약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4대강 정비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
기후변화 부문도 공략 대상이다. 코오롱베니트는 4월29일 주요 기후변화 이슈 및 동향, 탄소 배출권에 관한 내용을 담은 ‘기후변화 동향보고서’를 발간하고, 기후 관련 IT 서비스 시장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녹색성장산업 홍보의 일환으로 최근 사내 재단법인 ‘꽃과 어린 왕자’를 통해 기후변화 및 에너지 위기대응 교육사업인 ‘에코 롱롱’을 공식 론칭했다.
이처럼 코오롱이 다른 대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녹색성장사업에 나서면서 그 배경이 주목을 끈다. 이에 대해선 코오롱 관계자들과 현 정부 실세들의 ‘네트워크’에 비중을 두고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비즈니스’ 지원체계가 아직 걸음마 수준이고, 사업 성공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 녹색성장사업 추진에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코오롱과 현 정부의 관계는 여러 갈래로 걸쳐 있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도 코오롱그룹, 코오롱상사, 코오롱호텔 대표이사를 지냈고, 이웅열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로 친분이 있다. 게다가 이 회장은 대기업 사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5월, 2년 임기의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이 회장은 위원회 산하 5개 실무위원회 중 미래환경·에너지·과학분과에 속해 있다. 당연히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뿐만 아니다. 이수영 코오롱 경영전략본부 상무도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물·환경 관련 산업 확산,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범국가적 논의가 이뤄지는 기관이다.
코오롱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코오롱의 노력과 의지를 인정한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라면서도 “녹색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는 우리 그룹을 상징하는 두 그루의 상록수에서도 볼 수 있듯, 인간이 녹색의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명제하에 당위성을 찾고 시작한 것일 뿐”이라며 해석의 외연이 확대되는 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