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를 알거나 모르거나, 모두 다 까만색 나일론 배낭과 토트백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여전히 그 강력한 유산이 남아 있고요). 1990년대 후반 반짝이는 검은색 프라다 천은 최강의 트렌드로, 옷과 신발에도 응용되고 가짜 ‘프라다 천’은 수천만 가지의 짝퉁 상품이 되어 전 세계에서 팔려나갔습니다. 까만색 프라다 ‘풍’ 가방에는 ‘PRADO’라 쓴 삼각형 금속로고가 달려 있어서 약간의 유머감각과 원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기도 했죠. 아아, 정말 대한민국 모든 여성이 프라다에 미친 시절이었어요. 아니, 다른 나라 여성도 다르지 않았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걸 보세요.
프라다의 천가방은 웬만한 가죽가방보다 훨씬 비싸서, 명품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비싼 가격을 붙여놓은 것’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그러나 프라다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에요. 현대 소비시장에서 가치란 소재가 아니라 ‘아이디어’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긴 했지만요.
프라다는 이탈리아에서 1913년 마리오 프라다라는 남성에 의해 가죽제품을 만드는 가게로 처음 태어났습니다. 1919년엔 이탈리아 왕실 공식 지정업체가 됐고요. 프라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마리오의 손녀딸 미우치아에 의해서입니다. 대학 땐 과격한 페미니스트였고, 공산주의운동에도 열심이었던 미우치아는 할아버지가 만드는 가죽제품이 사치스럽고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쟁 후 문을 닫은 낙하산 천 방직공장을 사들여 드디어 그 유명한 ‘프라다 천’을 개발했거든요. 낙하산용 방수천을 더 얇고 부드럽게 방직해서 가죽보다 싸고 실용적인 소재로 만든 거죠. 그 천은 커피를 엎질러도, 비를 맞아도 물수건으로 쓱쓱 닦아내면 새것처럼 반지르르 윤이 난다니까요.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지적이면서도 대담한 프라다는 커리어우먼들의 취향에도 맞았고, 부유한 주부들의 욕구도 만족시켰어요. 한때는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운전해 배달하느라 직장인보다 더 바쁜 한국 엄마들의 공식 유니폼이 짙은 감색 프라다였죠.
서울 경희궁 터에 프라다와 렘 쿨하스가 의기투합해 세운 ‘트랜스포머’입니다. 철골과 멤브레인 소재를 이용했답니다. 멤브레인은 원래 비행기를 덮어 보관할 때 쓴대요. 이게 용도에 따라 크레인의 힘을 빌려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천장이 되게 돌아가는 거죠. 참, 인터넷에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를 혼동한 자료가 꽤 많더군요. 또 유신정권 때 프라다를 입으면 잡혀갔다는 ‘정보’도 있어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 프라다가 서울 경희궁 터에 용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트랜스포머’라는 건축물을 설치하고, 첫 번째 행사로 프라다의 스커트들을 전시하는 ‘웨이스트다운’을 열고 있어요(5월24일까지). 건축가 렘 쿨하스(또 다른 천재죠)가 프라다와 함께 고안한 건물이랍니다. 크레인으로 건물을 들어올리고 철골 구조물이 회전해 변신 로봇처럼 쿵 하고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장면을 볼 수 없어 기대보단 심심하지만, 무료 전시니 한번 들러보세요. 걸을 때마다 허리 아래에서 ‘트랜스포밍’하는 프라다의 스커트들은 정말 놀라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