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허영만 화백이 1년4개월째 연재 중인 만화 ‘꼴’을 처음부터 정독하고, 관상이론의 대가를 취재한 뒤부터입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손을 씻거나, 식사 후 이를 닦다가도 거울을 보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는 겁니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는 사이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탐색하게 된 거죠.
‘내 눈썹은 왜 가지런하지 않지? 인중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턱이 부족해. 말년에 고생하는 거 아냐? 아~ 코! 후훗 이건 맘에 들어. 이마와 귀는 잘 모르겠네, 훔…. 뭐,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겠지, ㅋㅋ.’
번뜩 정신을 차린 순간, 내가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취재하랴 마감하랴 늦은 밤까지 일하다 귀가해서는,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 그냥 못 지나쳤습니다. ‘툭 튀어나온 이마에 큼지막하게 잘생긴 귀, 내 아들 아니랄까 봐 나를 빼닮은 긴 인중과 잘생긴 코. 와우~! 나중에 아들 덕 좀 볼라나. 커서도 내 턱은 닮지 말아야 할 텐데….’
회사 선후배나 동료들 얼굴을 볼 때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평소 무심했던 그들의 얼굴 생김새를 유심히 뜯어보게 된 거죠.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는 후배가 있으면 한마디 던집니다.
“이야~, 눈썹이 좋은데? 재복이 있어. 미간이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관상이야, 후후.”
고작 2주 남짓 관상을 취재하고 나서 겪고 있는 후유증입니다. 이러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눈썹과 턱의 관상학적 평가에 자꾸 신경을 쓰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은근히 오기가 났습니다. ‘눈썹이 가지런하지 못하면 형제간에 우애가 깊지 못하다고?’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 석 달 만에 동생과 통화를 한 겁니다(다른 가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자주 통화 안 합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관상 덕분에 동생이랑 통화도 하고, 다 생각하기 나름이네.’ 관상, 믿을 만한 건지 못 믿을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닌가 싶네요.
‘내 눈썹은 왜 가지런하지 않지? 인중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턱이 부족해. 말년에 고생하는 거 아냐? 아~ 코! 후훗 이건 맘에 들어. 이마와 귀는 잘 모르겠네, 훔…. 뭐,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겠지, ㅋㅋ.’
번뜩 정신을 차린 순간, 내가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취재하랴 마감하랴 늦은 밤까지 일하다 귀가해서는,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 그냥 못 지나쳤습니다. ‘툭 튀어나온 이마에 큼지막하게 잘생긴 귀, 내 아들 아니랄까 봐 나를 빼닮은 긴 인중과 잘생긴 코. 와우~! 나중에 아들 덕 좀 볼라나. 커서도 내 턱은 닮지 말아야 할 텐데….’
회사 선후배나 동료들 얼굴을 볼 때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평소 무심했던 그들의 얼굴 생김새를 유심히 뜯어보게 된 거죠.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는 후배가 있으면 한마디 던집니다.
“이야~, 눈썹이 좋은데? 재복이 있어. 미간이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관상이야, 후후.”
고작 2주 남짓 관상을 취재하고 나서 겪고 있는 후유증입니다. 이러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눈썹과 턱의 관상학적 평가에 자꾸 신경을 쓰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해졌습니다.
은근히 오기가 났습니다. ‘눈썹이 가지런하지 못하면 형제간에 우애가 깊지 못하다고?’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 석 달 만에 동생과 통화를 한 겁니다(다른 가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자주 통화 안 합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관상 덕분에 동생이랑 통화도 하고, 다 생각하기 나름이네.’ 관상, 믿을 만한 건지 못 믿을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