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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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性’을 사하노라?

주교 출신 파라과이 루고 대통령 사생아 파문 … ‘순결 서약’은 사회 헌신 약속에서 비롯

  • 전헌 성균관대 초빙교수·국민대 강사(전 매코믹 신학대학원, 뉴욕주립대 교수) chun.hearn@gmail.com

    입력2009-04-29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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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uayan President Fernando Lugo, 57, admitted Monday he is the father of a child conceived while he was still a Roman Catholic bishop(57세의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이 자신이 로마 가톨릭 주교였을 때 임신시켜 낳은 한 아이의 아버지임을 인정했다).”

    4월13일 AP 등 각국 언론이 타전한 ‘파라과이 대통령의 숨겨둔 아들’ 기자회견은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은 2006년 12월 대통령 출마를 위해 가톨릭 주교 신분을 내놓겠다고 발표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7월31일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8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루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톨릭 주교 시절 한 여성 교구민(26)과 성관계를 맺어 두 살 난 아들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후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해 그의 여섯 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청에서 24년간 봉직하다 파문당한 엠마누엘 밀링고(78) 전 대주교는 수년 전 통일교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당시 “1100년 가톨릭이 자리 잡아갈 당시만 해도 교황은 결혼이 가능해 모두 39명의 교황이 결혼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금 약 15만명의 기혼 사제가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결혼한 가톨릭 사제들의 모임인 ‘매리드 프리스트 나우(Married Priest Now)’를 이끌면서 사제들의 결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두 살 난 아들 그리고 여섯 살 난 아들?

    그렇다면 사제와 성, 결혼이라는 ‘3차 방정식’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순결 전통’은 불교나 기독교 사회, 옛 그리스와 동양 등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했다. 기독교의 바탕인 예수와 바울 역시 순결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순결을 지키면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고 전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수도승들이 수도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결혼한 사람들이 가정을 돌보느라 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회봉사를 실천하고 학문적 성과도 거뒀다. 그만큼 독신 수도승들의 유능한 지도력이 사회에서 인정받았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제=독신’이라는 개념도 이때 만들어졌다. 300년경 교회 지도자 회의였던 ‘엘비라 공의회(Council of Elvira)’에서는 ‘사제나 교회 지도자는 결혼하지 마라’는 권고안이 나왔으며,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도 비슷한 결의가 있었다. 사제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서약, 즉 △가난하게 살겠다는 청렴 서약 △순결 서약 △절대복종 서약도 이 당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베네딕토 수도원의 전통만 보더라도 이미 6세기경 이러한 원칙이 완전히 성립됐다.

    가톨릭 사제는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순결 서약’을 지도자의 요건으로 받아들였다. 즉 ‘사제=독신’ 공식은 순결을 지키는 수도승들이 ‘가장 좋은 지도자’라는 경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권고안’이 필수 준법사항이냐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 중세 유럽, 아니 현대 유럽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수도승들의 스콜라 철학이 바탕을 이뤘기에 가능했다. 수도원의 남는 재화를 활용하면서 자본주의가 태동했고, 과학과 경제학이 싹을 틔웠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도 나온다. ‘목사는 결혼을 하고 성관계도 갖는데…’라는. 물론 개신교는 다르다. 16세기 마틴 루터는 ‘순결 서약을 한 교회 지도자들의 비리와 부도덕한 성행위’를 비판하면서 개혁을 외쳤다. 종교개혁이었던 것이다. 그는 수녀원 출신 독신 여성과 결혼했는데, 이는 부적절한 성관계로 인한 비리와 타락을 결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밀링고 대주교의 사례처럼 가톨릭 사제 중에는 성관계는 물론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제들은 순결을 강요하는 서약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꼭 가톨릭 사제가 돼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순결 서약을 하고 사제가 된 뒤 그 서약을 어기거나, 사제 서약이 강요에 의한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제직을 지키려 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문제다. 사제가 됐다면 사제의 길을 가면 되고, 그 길이 잘못된 것이라면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진리 존중 사제답지 않은 행동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사람에게 결혼도 하지 말고 성관계도 맺지 말라는 것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면, 가톨릭 사제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이 태어나려면 반드시 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다.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사람을 낳을 수 없다. 성관계를 한다고 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태어나려면 성관계는 필수다.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지만, 성은 그렇지 않다. 가톨릭 사제가 순결 서약을 지킨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제가 순결을 지키면서 고귀한 인생을 살고 빛나는 인류의 사표가 됐다.

    결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 성관계만 갖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사람은 결혼을 통해 ‘결혼 서약’을 하면서 부부끼리만 성관계를 갖겠다는 것을 세상에 공표하고 또 공인받는다. 동물 중에도 한 번 인연을 맺은 짝을 평생 바꾸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결혼 서약이 인류의 오랜 행태 가운데 하나인 것을 보면 사람도 그런 동물 중 하나인 듯하다. 결혼 서약을 하고도 ‘못할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결혼 서약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결혼 서약을 어기면서 사람 행세를 하려면 ‘뒤숭숭’해지게 마련이다. 혼외정사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엄마와 아빠의 아이다. 사람은 어른이라도 엄마와 아빠의 아이임은 틀림없다. 즉 사람은 누구나 엄마 반쪽, 아빠 반쪽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나라고 하기보다 ‘우리’라고 말한다. 나라는 몸은 엄마, 아빠, 나 그렇게 우리라는 몸이며 우리 몸의 엄마와 아빠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 영원한 진리는 성관계를 갖든 안 갖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어길 수 없다. 진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진리를 어기면서도 ‘못할 짓이 아니다’라고 착각하는 것이 버릇이 되다 보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돌이키기 어려워질 뿐이다.

    가톨릭 사제가 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서약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나,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 결혼 서약을 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나 외도이기는 매한가지다. 가톨릭 사제의 순결 서약은 결혼을 반대하는 제도가 아니라, 결혼 서약의 영원하면서도 엄연한 진리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제도다. 즉 사람은 성관계를 맺거나 결혼을 하지 않아도 엄연한 사람이지만, 성관계를 갖는다면 결혼 서약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톨릭 사제들은 스스로 순결을 지키면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진리를 보살피는 것이다.

    가톨릭 사제라면서 순결 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혼한다고 해서 결혼 서약을 제대로 지킬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기야 조용히 살면서 올바르고 사람답게 살기는 어렵지 않지만, 잘못을 하면서도 잘못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시끄럽기 쉽다. 세상은 그래서 시끄러운 것이다. 잘못을 해도 알아서 뉘우치고 고친다면 그것이 사람 사는 맛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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