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연단에서 한 젊은 최고경영자(CEO)가 한창 발표를 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에 도전장을 던진 ‘창업 분투기’입니다. 요즘 흔하디흔한 여느 스타트업 관련 모임인가 했는데 앗, 아닙니다. 좀 더 귀 기울여보니 놀랍게도 발표자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임에 참석한 사람도 대부분 변호사입니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바로 ‘스타트업하는 변호사들’입니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에 뛰어든 변호사, 스타트업처럼 일하는 변호사, 스타트업에 관심 많은 변호사가 모여 ‘스타트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상의 변화와 각자의 혁신 노력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흔히 ‘변호사’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어디서든 대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아니, 달라졌습니다. 전국 변호사 수는 2만여 명,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만 해도 2000명가량 됩니다. 최근 변호사업계를 관통하는 화두가 ‘생존’일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그럼에도 법이라는 보수적 분야를 다뤄서인지 그동안 눈에 띄는 혁신을 찾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정보기술(IT) 혁명에서 법률서비스 분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기업가 정신과 열정으로 충만한 젊은 변호사들이 혁신을 시작한 배경입니다.
이날 강연을 한 이는 ‘실력 있는 변호사 찾기’ 헬프미의 박효연 대표변호사입니다. 아직도 법률 문제가 생기면 주변에 물어봐서 아는 변호사를 소개받는 게 현실입니다. 박 대표는 단지 ‘아는 변호사’가 아니라 ‘좋은 변호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실력 있는 변호사와 실시간 상담예약이 가능한 온라인 서비스를 론칭한 것입니다. 대면상담뿐 아니라 전화 및 채팅상담까지 가능하고, 상담료도 대폭 낮췄습니다. 이른바 ‘IT를 기반으로 한 법률 분야의 정보혁명’입니다.
‘혁신’이 일상이 된 세상
이날 모임에 참석한 또 다른 변호사는 ‘드론 전문 변호사’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드론과 관련한, 현실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에 대한 법률칼럼을 쓰면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갖게 된 것입니다. ‘1인 1드론’ 시대가 점쳐지는 가운데 사생활 침해 방지, 안전 관련 법률 제정 등 드론 법률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모임을 주관한 또 다른 변호사는 문제해결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스타트업의 CEO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협업공간인 ‘인생공간’을 운영하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진격의 거인들’이 아니라 ‘혁신의 변호사들’입니다.로봇이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로봇 저널리즘’에 이어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 자문을 해주는 세상입니다. 가천대 길병원이 인공지능 ‘왓슨’을 이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온 게 지난해 말입니다. 업종과 직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변화하고 혁신해야 생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날 모임에 참석한 젊은 변호사들의 혁신과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에는 혁신을 모험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혁신하지 않는 것이 모험이다.” 상시적 혁신을 강조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말입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핀란드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 · 강의와 자문, 집필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