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무채색 위주의 차분한 색상이 자전거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면 요즘엔 화려한 색상이 대세다. 올 봄은 패션에서도 원색의 ‘비비드(Vivid)’한 컬러가 인기를 끄는데, 이 트렌드가 자전거에도 고스란히 옮겨온 셈이다.
자전거 차체인 프레임뿐 아니라 핸들, 안장, 변속기, 바퀴 등 부품에까지 원색의 물결이 이어지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중. 원하면 타이어, 체인까지 원색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고 있는 자전거 업계가 내놓은 히든카드가 바로 ‘컬러’다.
기어 = 뉴요커 스타일의 싱글기어
싱글기어는 변속기 없이 기어가 하나만 달린 자전거로 ‘픽시’라고도 불린다. ‘픽스드 크루(Fixed Crew)’의 축약어로 뒷바퀴와 페달이 1개의 기어로 연결된 경륜용 자전거 같은 모델을 지칭한다. 1960~80년대 우리나라 곳곳에서 짐을 싣고 다니던 커다란 자전거도 싱글기어 방식이다.
최근 한국에 유입된 싱글기어 트렌드는 미국 뉴욕에서 유래했다. 자동차로 꽉 찬 뉴욕의 도로를 누비는 메신저(우리로 치면 퀵서비스 기사)들의 자전거와 그들만의 독특한 패션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 이 트렌드에는 두 가지 ‘코드’가 녹아 있으니 첫째는 심플한 구조를 바라보며 느끼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요, 둘째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반(反)트렌드(Anti-Trend)적 라이프스타일이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란 디지털 시대의 반인간적 특성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옛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가리킨다.
반트렌드적 라이프스타일은 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아웃사이드적 삶의 방식을 뜻한다. 단, 싱글기어는 변속기가 없으므로 언덕을 오르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평지가 많은 도심에 적합하다.
소재 = 카본 전성시대
카본 소재 자전거가 최근 갑작스럽게 선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이런 모델들이 출시됐고 몇몇 브랜드를 통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다 요즘 메이저급 회사들이 너도나도 생산하는 메인 모델로 성장하게 됐고, 같은 소재의 자전거 부품, 액세서리도 쏟아져나왔다.
카본 자전거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핸들과 시트 포스트(Seat Post) 위주로 사용되던 카본은 이제 변속기, 포크(앞바퀴를 잡는 부위), 바퀴, 페달 등에까지 이용된다. 카본 성형기술도 크게 진화해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양의 공기역학적 제품이 나온다. 카본의 장점은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탄성과 강도가 우수하다는 점이다. 무게가 가벼워 소비자들의 성원이 이어질 전망이다.
무채색 위주에서 원색으로 과감히 변신한 ‘산타크루스(Santacruz)’의 프레임들. 본사가 자리한 지명을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한 미국 브랜드다. 가격 미정. 공급처·오디바이크(odbike.co.kr 윗 작은사진) <br> 최근 유행하는 싱글기어 자전거 ‘픽시’의 ‘귀환’에는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반디지털적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다. ‘픽시’ 동호회 회원들(아래 작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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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전거에 주목하라
업그레이드 미니벨로가 뜬다
바야흐로 미니벨로 전성시대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조그만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에 관심 없던 사춘기 여학생들도 대표적 미니벨로 브랜드 중 하나인 ‘스트라이다’만큼은 알아본다. 만약 아내나 여자친구가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른다면 열에 아홉은 미니벨로가 갖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미니벨로가 이제는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고성능화하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 미시령에서 열린 로드바이크 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한 사이클(로드바이크)보다 불과 3분 뒤진 기록으로 미니벨로가 결승선을 끊었다.
미니벨로의 경량화, 고성능화 없이는 불가능한 기록이다. 최근 선보이는 미니벨로들은 차체만 작을 뿐 기존 고급 사이클이나 MTB의 부품과 사양이 그대로 적용돼 있다. 또 고급 서스펜션과 고가 자전거에 쓰이는 티타늄, 카본 재질도 사용된다. 물론 ‘고성능=고가(高價)’라는 공식은 어김없이 성립한다. 고성능 미니벨로를 원한다면 얇아진 지갑은 감내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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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날렵하게, 하이브리드 자전거
하이브리드(Hybrid) 자전거는 MTB와 사이클(로드바이크)의 장점을 한데 모은 자전거다. MTB 특유의 안정된 자세와 강력한 브레이크 성능, 사이클의 가벼운 무게와 날렵한 속도감을 결합한 모델. 산이 아닌 도심에서 주로 타기 때문에 무거운 앞 서스펜션과 산악용 바퀴를 떼어버리고 가볍고 날렵한 사이클형 포크와 바퀴를 사용했다. 또 허리를 많이 숙여야 하는 사이클 프레임 대신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산악자전거 프레임을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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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패션·자동차 브랜드의 비싸고 멋진 녀석들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하는 럭셔리 패션, 자동차 업체들 역시 최근 몇 년간 ‘그린 이코노미’의 근간이 되는 자전거 디자인에 몰두해왔다. 자전거에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감성적 코드’와 환경보호라는 ‘사회적 코드’, 그리고 무엇보다 자전거 자체가 가진 ‘미학적 코드’가 녹아 있어 명품 브랜드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삼천리자전거와 손잡고 ‘앙드레김 자전거’를 출시해 화제다. 국내외에서 이슈가 된 럭셔리 브랜드들의 ‘명품 바이크’를 소개한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메르세데스 벤츠 Mercedes Benz
올 봄 새롭게 선보인 메르세데스 벤츠 바이크에는 8가지 모델이 있다. 화이트 프레임으로 출시된 ‘피트니스 바이크’는 보디 프레임 디자인에 따라 역동적인 느낌의 ‘스포츠 에디션’과 세련된 분위기의 ‘컴포트 에디션’으로 나뉜다. 27단 변속기어와 운전자의 기호에 맞게 앵글을 조절할 수 있는 핸들 시스템이 편안한 주행을 돕는다는 설명. 297만원.
첫선을 보이는 ‘트레킹 바이크’ 역시 보디 프레임 디자인에 따라 2가지 모델이 있다. 쿠퍼 브라운 컬러가 클래식한 느낌을 주며 라이트 장비와 도난 방지 시스템이 장착된 디스크 브레이크가 포함돼 있다. 330만원. 두 단계로 접히는 ‘폴딩 바이크’(418만원)와 어린이용 바이크(79만2000원)에도 벤츠의 앞선 기술이 녹아 있다는 설명.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6월30일까지 바이크 8종을 25% 할인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구찌 Gucci
2006년부터 고객의 요청에 따라 주문 제작하는 자전거를 선보여왔다. 브론즈 컬러의 스틸 소재 프레임에 초콜릿 색상 가죽으로 만들어진 안장, 핸들, 브레이크를 접합했다. 구찌의 로고 ‘GG’가 새겨진 크롬 소재 벨이 인상적. 초콜릿 컬러의 가죽 가방과 용품을 수납할 수 있는 ‘툴 케이스’도 매력을 배가한다. 지난해에는 베이징올림픽을 기념한 ‘리미티드 에디션’ 자전거가 중국 본토와 홍콩의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판매됐다. 색상은 역시나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색. 옵션에 따라 가격은 달라지나 700만~1000만원대.
샤넬 Chanel
지난해 봄, 여름 선을 보인 샤넬 자전거는 특히 할리우드 여성 스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프렌즈’의 커트니 콕스가 절친한 친구 제니퍼 애니스턴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자전거 앞부분에 도난 방지를 위한 자물쇠 장치가 달려 있으며 충격으로 인한 비틀림을 막아주는 강력한 휠이 돋보인다. 하지만 정작 ‘여심’을 흔든 것은 자전거 뒷부분에 ‘탐스럽게’ 매달린 3개의 샤넬 백(‘2.55백’ 형태)이 아니었을까. 총 50대 한정 생산돼 국내에 2대가 수입됐으며 그중 1대를 영화배우 배두나 씨가 구입해 화제가 됐다. 1500만원대.
에르메스 Hermes
마차에 필요한 용구와 안장 등을 판매하는 마구상에서 시작된 브랜드 에르메스.자전거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몇 년 전부터 네덜란드의 유명 자전거 업체 ‘바타뷔스’와 콜래버레이션한 자전거를 출시했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검은색 에나멜로 처리된 프레임이 에르메스 특유의 심플한 멋을 재현한다. 핸들과 안장은 에르메스 가죽을 씌운 뒤 일일이 한 땀, 한 땀 꿰어 완성했다. 500만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