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employed’ ‘own account worker’ 등 나라별로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경기 불안과 아웃소싱 비율 상승에 따른 1인 기업 증가 추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국가에서 특히 지식서비스 분야를 다루는 1인 기업은 ‘프리랜서’로 불린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독일 오스트리아의 프리랜서 트렌드를 살펴본다.
미국 >>> 전체 일자리 중 4분의 1이 ‘1인 기업’
미국에서 프리랜서란 작가에서부터 개인택시 운전사까지 고무줄처럼 그 정의가 유연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개인사업자(self-employed)나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를 뜻한다. 미국 전체 산업분야에서 프리랜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수는 1997년 1540만명에서 2006년 208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공공 부문을 제외한 미국 전체 일자리에서 6분의 1을 차지하는 수치다. 이 가운데 독립계약자는 2005년 현재 103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7.4%에 해당한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프리랜서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다니엘 핑크가 쓴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에 따르면, 미국에는 3300만명가량의 프리랜서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 전체 일자리 가운데 4분의 1을 개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셈이다.
프리랜서 증가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기업체들의 아웃소싱이다. 보고서 작성은 프리랜서 작가에게, 콘퍼런스 준비는 이벤트 플래너에게, 리크루팅은 헤드헌터에게 맡기는 식이다. 아웃소싱은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등 경비 절감에 매우 효과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 노동통계국이 독립계약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체에 고용된 전통적 형태의 직업환경을 선호한 사람은 10% 미만이었다는 사실이다. ‘소기업경영저널(Journal of Small Business Management)’에 실린 한 연구논문에서도 개인사업자의 일 만족도가 월급생활자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개인사업자의 평균연봉은 월급생활자보다 높다. 미국의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맨해튼 인스티튜트’가 발행하는 ‘시티 저널’에 따르면, 뉴욕의 경우 개인사업자의 평균연봉은 5만9000달러로 월급생활자의 4만7000달러보다 많았다. 그러나 개인사업자의 연봉 중간값은 오히려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개인사업자의 연봉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다.
프리랜서들이 모두 막대한 연봉을 벌어들이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허울만 프리랜서일 뿐, 정식 직원과 동일하게 일하면서도 계약직이라는 한계 때문에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큰 불편은 건강보험. 프리랜서 잡지 기자로 일하는 아멘트 씨는 “내게 프리랜서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했다. 카이저가족재단이 2008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연봉이 20만 달러 이상인 개인사업자 가운데 건강보험을 가진 사람은 58%에 그쳤다. 이는 개인보험이 단체보험보다 비싸고 가입요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랜서들은 사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데다 정부가 제공하는 실업보험제도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또 사회보장세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몫을 모두 내야 한다. 본인이 사장인 동시에 직원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최근 저작 ‘부의 미래’에서 프리랜서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다. 미래는 시공간의 구속 없이 개인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직업 환경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프리랜서가 비정규직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면, 프리랜서 시대는 복지보다 경쟁 문법에 더 익숙한 미국식 사회에서만 환영받는 미래일 수 있다.
스탠퍼드=김수경 통신원 sookim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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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간판’보다 실력이 밥 먹여주는 프리랜서의 천국
영국에서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 프리랜서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프리랜서 창업 지원 사이트 ‘프리랜스어드바이저’의 초기화면(위·사이트 캡처)
당장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전문가들만 해도 그리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프리랜서가 한두 명이 아니다. 프리랜서 작가는 그냥 작가(writer)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방송 출연을 직업으로 하는 프리랜서는 방송인(broadcaster)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요즘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웹캐스팅을 하는 프리랜서도 ‘방송인’ 대열에 합류했다.
번듯한 소속 단체를 내세우지 않는 자선활동가(charity worker), 시민단체 활동가(campaigner) 같은 타이틀도 전혀 낯설지 않다. 분석가(analyst)나 논평가(commentator) 같은 직함도 종종 등장한다. 모두 소속 기관의 후광보다 개인 능력을 중시하는 지적 풍토와 실용적 가치관이 낳은 ‘프리랜서’ 문화의 영향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영국을 휩쓸면서 기업들이 너도나도 감원에 돌입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리랜서를 택하는 사람이 더욱 늘고 있다.
프리랜스어드바이저(www.FreelanceAdvisor.co.uk) 같은 프리랜서 창업 지원 웹사이트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 웹사이트는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 창업에 나선 구직자들에게 다양한 창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프리랜서들을 연결해주고 이들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창구 구실도 한다.
이 웹사이트를 고안한 다렌 펠은 최근 프리랜서 창업 바람을 타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사업가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그는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이 너도나도 군살 빼기에 나선 요즘, 프리랜서 창업이야말로 영국 경제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프리랜서 창업 열풍 덕에, 유관 단체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영국 전역에서 1400만명이나 되는 프리랜서가 활동 중이다.
실업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는 영국 정부도 감원 바람에 밀려난 경제활동인구를 ‘1인 창업’으로 흡수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영국 정부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각종 지원 대책 마련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임을 되풀이해 강조해왔다.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들이 개인사업 대출에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서자, 총리가 직접 나서 은행들을 향해 수차례 경고성 발언을 던짐으로써 창업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러한 창업 활성화 지원 대책은 야당인 보수당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당은 소규모 사업체나 1인 기업 창업자들을 위해 연금 부담 완화, 6개월 부가세 면제 같은 혜택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을 빼고 글로벌 금융위기에 가장 크게 노출된 영국 경제가 프리랜서 창업 열풍으로 소생의 기회를 얼마나 잘 잡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그러나 최근의 ‘1인 창업’ 열기가 겉으로 드러난 ‘간판’보다 개인의 실질적 능력을 중요시하는 영국 고용시장의 풍토를 한층 강화해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일본 >>> 정규직 업무환경 나빠지면서 프리랜서 인기 쑥쑥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도쿄의 한 구인·구직 정보센터. 일본에서는 프리랜서가 직업군 중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는 추세다.
“왜 멀쩡한 직업을 놔두고 대학원생이라고 적어?”
당시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여행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곳과 계약을 맺어 글을 써주고 책도 몇 권 냈다. 그런데 직업을 ‘대학원생’(실제로 대학원 휴학 중이기도 했다)이라고 쓴 이유는 나 자신이 프리랜서라고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원생이라고 쓰는 것이 한국에서는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프리랜서가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그러니 아내 처지에서는 ‘왜 멀쩡한 직업을 놔두고…’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프리랜서가 각광받는 데는 샐러리맨을 둘러싼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현실이 한몫한다. 일본은 1992년 샐러리맨의 노동시간을 연간 1800시간 이내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법률을 제정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시간이 해마다 늘고 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파견사원(한국의 계약사원)을 늘리고 있고, 그에 따라 정사원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멀쩡한 직장에 잘 다니는 젊은이 가운데 많은 수가 자신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해 프리랜서가 되고 있다. 일본의 리크루트워크연구소가 현역 프리랜서 800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프리랜서가 되기 전 직장 경험이 있는 경우가 전체의 90%에 달했고, 근무한 회사의 평균 근속 연수는 8.2년이었다. 이런 현실은 샐러리맨을 목표로 하는 구직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작가, 저널리스트, 방송 PD, 디자이너, 아나운서, 프로그래머, 이벤트 기획자 등 개인 능력에 따라 업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는 직종의 경우 프리랜서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프리랜서 업무가 전문화, 다양화되면서 이를 관리하는 에이전트도 많이 생겨났다. 실례로 일본에서는 우리의 자유기고가에 해당하는 프리랜서가 프리라이타(フリライタ)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잡지사나 출판사의 요구에 맞는 프리라이타를 소개해주는 전문 에이전트의 활동도 비교적 활발하다.
일본에서는 프리랜서의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프리랜서의 노동조합 설립이나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프리랜서 출판인노동조합 ‘유니언 출판네트워크’는 2006년 일본의 유명 음악정보 서비스 회사 오리콘이 조합 소속의 우가야 히로미치(烏賀陽弘道)를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우가야의 재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프리랜서가 이미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변함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도쿄=김동운 여행작가 dogguli@hotmail.com
호주 >>> 온라인 등록 시스템 구축, 이익단체 조직 등 권익보장
호주에서는 IT, 예술 등에 국한되던 프리랜서 영역이 다른 직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프리랜서 마켓 ‘오즈랜스’의 초기화면(아래·사이트 캡처)
2006년 호주는 프리랜서 등록(freelancer register) 시스템을 구축했다. 리쿠르트 회사들이 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프리랜서를 찾는 기업과 일거리를 찾는 프리랜서 사이에서 메신저 구실을 하는 것. 대표적인 회사가 앞서 언급한 호주 프리랜서 마켓인 ‘오즈랜스’다. 대형 프로젝트 위주의 지하자원개발업 등 1차산업과 관광업 같은 3차산업이 발달한 호주에는 다양한 직업 형태가 공존한다. 크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비정규직은 다시 계약직(contract job), 임시직(casual job), 시간제 근무(part-time job)로 세분화되는데, 업종 특성상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본인이 원해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최근 IT와 생명공학(BT)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는 정규직을 버리고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프리랜서로 빠르게 옮겨간 것.
뉴사우스웨일스주 문교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는 한인동포 김지태 씨도 본인이 원해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옮겨간 경우다. 그는 호주에서 가장 큰 은행인 웨스팩의 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연소득이 거의 2배에 이르는 문교부 계약직을 선택했다. 김씨는 “소득보다 매력적인 점은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여건이다. 정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벌써 10년째 재계약이 이어지다 보니 정규직의 장점인 직업의 안정성을 똑같이 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호주의 실업률이 5.2%로 치솟는 등 경기가 나빠지면서 프리랜서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호주 프리랜서 연대(Freelancer Union Australia)’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호주에는 호주작가협회(Australian Writers’ Guild), 호주시인협회(Australian Poet Union) 등 다양한 프리랜서 단체가 있다. 브룩 에머리 호주시인협회 회장은 “5000여 명의 회원 가운데 70% 이상이 프리랜서로 일한다”면서 “시인협회는 회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을 상대로 프리랜서의 권익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상을 전개해나간다”고 밝혔다.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독일·오스트리아 >>> 국가의 적극적 지원정책 … 악용 사례도 적지 않아
독일은 여러 선진국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1인기업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80여 년이 흐른 지금 대공황을 연상케 하는 글로벌 경영위기가 재현됐다. 유럽연합(EU) 가입국 확대와 동유럽 개방으로 지난 10여 년간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유럽에서는 현재 동유럽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위기에 처하는 등 심각한 경제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난을 이미 20년 전 겪은 독일의 경우는 어떠한가. 1989년 통일 이후 옛 동독 주민은 새롭지만 전혀 달갑지 않은 사회현상을 경험했으니, 바로 실업이다. 노동자 천국을 내세웠던 공산주의에서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적어도 직업은 갖고 있었다. 실업자들의 불만은 급기야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우자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당시 슈뢰더 총리는 폴크스바겐 이사이던 페터 하르츠(Peter Hartz)를 중심으로 실업률 감소와 노동경제 시장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한 ‘하르츠 법안(Hartz Konzept)’을 2002년 8월 발표하고, 2005년까지 4단계에 걸쳐 시행했다. 슈뢰더 정부는 400만명에 이르던 실업자 수를 4년 안에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단기적인 실업률 하락만 가져왔을 뿐 목표치의 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노조와 복지단체로부터 정당한 일자리 창출보다 통계상의 실업률 감소만을 목표로 하는 눈가림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은 이 정책은 차기 총선에서 슈뢰더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실패한 정책이라는 오명을 쓴 하르츠 법안 가운데 하나가 최근 독일 내 독립적 경제연구소들에 의해 나름대로 효과적인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실업수당을 받는 실업자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창업할 경우 3년간 지원해주는 ‘1인 기업 지원정책(Ich AG)’이다. 아무리 이력서를 내봐야 뽑아주지도 않는 위기의 세상,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신이 꿈꾸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1인 기업 지원정책의 지원을 받을 경우 처음 1년간은 매달 600유로, 2년차에는 360유로, 3년차에는 240유로를 보조받게 된다. 보조금 지급 대상은 연간 수입 2만5000유로 이하이며, 3년 후 사업이 실패하면 다시 예전 같은 조건으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어 비교적 위험부담이 적다. 그러나 창업 시 사무실 임대 및 기구 구입 등의 부대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하므로 자기 집 거실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이외의 직원을 둘 수 없어 ‘가족 기업’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정책은 2006년 8월 새로운 창업 지원정책에 통합됐다. 이로 인해 2006년 말까지 약 40만개의 1인 기업이 지원을 받았고, 그중 절반이 여성에 의해 세워졌으며 피부관리실, 미장원, 컴퓨터 수리, 아파트 관리, 배달 등 서비스업 계통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창업한 인구의 약 3분의 2가 현재까지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약 20%는 새로운 직장을 구해 재취업하는 등 지원금을 받고 다시 실업자가 된 경우는 소수에 그쳤다. 이 정책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지원금을 타내려고 유령회사를 만드는 등 악용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창업자는 “사업하기 위해 알아야 할 법규가 너무 많고,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하느라 힘들었으며, 무엇보다 돈을 떼어먹는 고객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창업할 때는 단단히 마음먹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리엔탈의 사례를 연구한 야호다는 장기 실업이 사회적 ‘혁명’이 아닌 개인적 ‘체념’을 가져왔다고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은 사회복지 예산의 지나친 감축 등 당시 브뤼닝 총리의 잘못된 긴축재정으로 16.3%에 이르는 사상 최고실업률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경제난에 봉착한 것이 나치 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유대인 야호다는 9개월간 징역을 살고 오스트리아 국적을 박탈당한 뒤 영국으로 망명했다. 실업이라는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빈=임수영 통신원 hofgarte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