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MA 앞에 있는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
먼저 미술관의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규모만 큰 미술관이라면 “그 예산으로 차라리 소장 작품의 질을 높이는 편이 낫다”는 질책을 받을 수 있을 텐데, LACMA는 달랐습니다. 토니 스미스(Tony Smith)의 ‘Smoke’(1967)라든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Band’(2006) 같은 엄청난 규모의 작품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시원스럽게 배치하고, 모든 전시공간이 들숨과 날숨처럼 외부 환경과 연결되게 해 마치 자연이 미술관 내부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미술관 정문이었는데요, 입구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벽도 통로도 없었습니다. 문이 없는 정문(?)은 미술관 앞길 월셔가(街)와 바로 연결돼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어디부터가 거리인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둘의 중간 지점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쳐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가로등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것은 사실 LA 구석구석을 다니며 모은 202개의 오래된 가로등을 주철로 주조해 만든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설치작품 ‘Urban Light’(2008)입니다. 가로등 하나하나에는 그 가로등이 세워진 지역성과 문화가 반영돼 있기에, ‘Urban Light’는 LA에 사는 다양한 인종을 끌어안으면서도 이 도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상징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자체의 매력도 대단하고요. 이제는 한밤중에 빛을 뿜어내는 ‘Urban Light’를 보기 위해 LA에 오는 사람까지 생겼을 정도라네요.
미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작품 앞에 서면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가로등 사이를 걷기도 하면서 어느새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LACMA에서 ‘Urban Light’ 설치 1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작품을 소재로 한 사진과 비디오, 에세이 등을 모집하는 공모전을 열었는데, 1000점이 넘는 응모작이 쇄도해 ‘Urban Light’를 향한 관심과 열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했습니다. 아 참, 버든이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예술가라는 것도 밝혀야겠네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앞두고 미술관의 ‘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다는데요, 진정한 세계화의 출발점은 어디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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