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당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정부 개각 때마다 장관급에 내정된 이들은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라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전적 의미를 빌리면 사회적 지위 변화에 따른 의례인 셈이다.
2월에 접어들자 여야 모두 청문회 모드로 전환했다. 그동안의 전례를 보면 청문회는 큰 흠집 없이 내정자들을 무사히 통과시키려는 여당과,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내정자 자리에서 끌어내리거나 흠집을 내려는 야당 간의 ‘혈전(血戰)’ 양상을 띤다.
이번에도 야당의 파상공세로 대부분의 내정자들은 청문회 이전부터 크고 작은 내상을 입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부인의 경기 양평군 부동산 투기 의혹, 자녀 주택구입자금 편법 증여 의혹 등에 대해 공격받았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논문 중복 게재 의혹에 이어 학술진흥재단 게재 논문 무더기 삭제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고,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는 대학교수인 부인과 이중으로 배우자 소득공제를 받은 데 따른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따질 것 따지면서 왠지 마뜩지 않은 태도
하지만 정작 민주당이 ‘제1의 타깃’으로 삼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태평’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 때 한 차례 야당으로부터 검증을 받았기 때문. 당시 그를 둘러싼 논란은 본인의 병역면제 과정에 대한 의혹, 아들의 병역특혜 논란 정도였다.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를 앞두고 또다시 원 내정자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이상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지 못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한 의원실 보좌관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원따로’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 따로 움직인다는 말을 조사 과정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별다른 문젯거리가 없는 것 같다”는 게 이 보좌관의 설명. 그는 “원 내정자는 고집이 세서 한번 결정한 일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문회의 기본 취지는 장관 내정자들의 자질과 전문성, 업무 적격성 여부다. 민주당이 원 내정자에 대해 그나마 새롭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정보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점과 ‘용산 참사에 대한 책임’ 여부다. 어쩌면 이 두 가지가 국정원장으로서 원 내정자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함께.
하지만 민주당 내 분위기는 원 내정자 개인과 가족의 흠결을 찾아헤매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문제라도 제기한다는 쪽에 가깝다. 정작 봐야 할 것을 보면서도, 따져야 할 것을 따지면서도 흠집을 내지 못해 마뜩해하지 않는 이 어색한 상황, 이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현주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