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인물 구보가 대사를 통해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신문물’을 비교적 자유롭게 접했던 지식인들인 이상 박태원(구보) 정인택과 그들이 동시에 흠모했던 카페 여급 권영희이며, 극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들의 연애사다. 권영희에게 마음을 뺏긴 이상과 정인택은 구보에게 권영희에 대한 마음을 따로 털어놓고는 상대에 대한 질투심을 내비친다. 사실 구보 역시 얼마 전 결혼했음에도 그녀에게 남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택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해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방 안에서 토사물을 늘어놓고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이상과 권영희. 정인택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이를 계기로 권영희와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각각 구보에게 들려주는 사건의 경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보는 세 사람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지만 결국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이든 연극의 주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깃븐우리절믄날’은 복잡한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 젊은 지식인들의 내면을 비추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부립도서관, 병원, 영화관 등의 ‘옥상’이다. 이러한 배경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우월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구보와 이상은 답답한 조선의 문단과 ‘아이스 고히’를 찾아볼 수 없는 퀄리티 낮은 ‘가짜 미쓰코시 백화점’의 카페를 한탄하고, 우리말에 일본어를 마구 섞어 쓰며 ‘내지(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드러낸다. 그들의 정체성이 진짜와 가짜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듯, 그들이 하는 말 역시 그러하다. 한편 인물들의 고민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당대 사회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시선을 느끼기 힘들다.
흥미로운 것은 ‘삼각관계’를 넘어서서 ‘사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벌이는 일들이 전혀 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난간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느끼한 포즈의 구보와 낭랑한 소리로 다소 오버하며 웃어주는 권영희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정작 충격적인 스캔들을 일으키는 장본인인 정인택과 권영희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러브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인물들의 ‘대화’에 있다. 중요한 사건은 무대에서 직접 일어나지 않고 대화를 통해 묘사된다. 각 장면마다 주요 인물이 ‘짝으로’ 등장하는데, 구보는 극을 관통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인물들의 대화에서는 당대 문인들의 내면세계, 그들에 대한 현대적 관점에서의 문제 제기, 당시의 풍속 등이 다채롭게 묻어난다. 영상으로 제시되는 신문기사와 삽화,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이 팩션의 재미를 더한다. 복선이 치밀하게 짜여 있지만 대사가 주를 이루는 만큼 극의 리듬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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