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무제(Boxer)’, 193×243cm, 리넨에 아크릴릭과 오일 페인트스틱. KO승을 거둔 무하마드 알리.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고, 제44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매케인의 2배가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둔 버락 오바마. 그가 누구보다 주목받은 까닭은 232년 미국 역사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죠?
오바마가 각종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동안 미술 관련 매체에는 그래피티, 일명 낙서화로 유명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Boxer)’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바로 그의 작품이 크리스티 옥션하우스의 이브닝 세일에 나왔기 때문이죠. 경매가 열리기 몇 주 전부터 과연 새로운 세계 경매기록이 세워질지에 미술계 사람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답니다.
바스키아는 아이티와 푸에르토리코의 피를 물려받은 흑인으로, 17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의 화가로 활동하다 20세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는 백인 아트딜러와 컬렉터 일색인 당시 미술계는 물론 현대미술에서 흑인을 묘사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잘 안 떠오르시죠?
그는 1982년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 중 최고라고 꼽는 ‘무제’, 일명 ‘Boxer’라 불리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두 손을 번쩍 든 권투선수. 당시 바스키아 영감의 원천은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헤비급 챔피언 조 루이스였습니다.
‘갈색 폭격기’ 루이스 영웅으로 묘사한 ‘Boxer’ 경매에 관심 고조
“조 루이스란 이름만 들어도 코피가 쏟아진다”고 영국의 헤비급 챔피언인 토미 파르가 말했듯, 당시 루이스는 27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 그것도 23 KO승을 거둔 영웅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8년, 훗날 그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기게 되는 독일 슈멜링과의 경기를 앞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루이스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식사하며 “당신의 두 팔에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하죠? 네, 그는 1회 2분4초 만에 승리의 두 팔을 번쩍 들게 됩니다. 언론들은 앞다퉈 나치에 대한 승리라고 보도했고요. 루이스뿐 아니라 당시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스포츠 영웅이자 사회저항가로 활동했던 무하마드 알리도 바스키아에게는 영원히 작품으로 남겨야 할 전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영웅만을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바스키아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누락된 흑인을 영웅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노예로 실려오면서 두 팔을 위로 결박당한 채 채찍질을 당해야 했던 흑인의 비극적인 역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이 흑인 복서의 머리 주변에는 후광이 가시 면류관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며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직접 체험했던 바스키아는 자신을 포함한 흑인을, 세계를 향해 어퍼컷을 날리는 전사로 표현하고자 했지만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비애가 어려 있습니다.
바스키아가 영웅으로 묘사한 조 루이스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고, 알려졌듯 알리도 파킨슨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바스키아 역시 1988년 27세라는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말로를 비극적으로 보냈음에도 그의 작품은 오바마가 승리한 지 꼭 일주일 만에 1352만2500달러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앤디 워홀의 작품까지 유찰되는 상황에서 아주 선전한 셈이죠.
눈썰미 있는 분들은 작품 속 복서의 왼쪽 팔 위에 KO라는 낙서를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흑인들이 대부분 스포츠 선수였다는 사실과 유일한 흑인 예술 스타였던 바스키아의 짧은 생애를 돌이켜보면 오바마의 손이 번쩍 치켜올라가기까지, 그가 KO승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인종차별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다운당하고 패배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예술은 모든 편견을 부수는 강펀치를 항상 품고 있습니다. 바스키아가 이미 오래전 이 작품에서 예견했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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