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 역의 정선아(왼쪽)와 소니 역의 김희철.
이 영화는 당시 사운드트랙 앨범 판매가 200만장을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올리비아 뉴턴 존의 작곡을 전담했던 존 파라가 쓴 ‘매직’ ‘서든리’를 비롯해 ELO의 ‘이블 우먼’ ‘제너두’ ‘아임 얼라이브’ 등 주옥의 히트곡이 포함돼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영화 자체의 흥행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여신인 아홉 명의 뮤즈가 지상으로 내려와 소니라는 이름의 음반 표지 디자이너와 좌충우돌하는 스토리는 설정부터가 황당무계했고, 여주인공 키라 역을 맡은 올리비아 뉴턴 존이 호주 억양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도 실소를 자아냈던 것이다.
자칫 음반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제너두’의 스토리가 지난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부활했다. 소니의 직업이 음반 표지 디자이너에서 분필 화가로 바뀌었을 뿐, 삽입곡과 작품의 배경은 27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뮤지컬은 과거 영화의 단점을 애써 극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실패를 풍자하고 무대에 적합하게 각색을 한 것이 주효했다.
여주인공 키라를 비롯해 아홉 명의 여신은 남녀 배우가 고루 섞여 있어 첫 장면부터 폭소를 유발한다. 공연 내내 변화무쌍한 이들의 행동은 여신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최신 유행이라며 소개하는 롤러스케이트는 현재의 인라인스케이트에 비하면 골동품 같고, 작품 제목인 ‘제너두’란 소니가 꿈꾸는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으로 무대에 수많은 미러볼이 등장해 공연장은 거대한 나이트클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무대에는 ‘패너두석’이라는 이름의 객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무대 세트의 구실도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극에 참여하게 된다. 관객들의 표정이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 작품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가진 유명한 음악들이지만 무대를 이끌어가는 힘은 결국 배우들의 순발력에서 나온다. 키라 역의 정선아는 가히 그 배역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뛰어난 가창력, 정확한 발음에 코믹한 연기 감각까지 갖췄다. 소니 역을 나눠 맡고 있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강인, 김희철이 귀여움과 애교를 보여준다면 같은 역의 뮤지컬 배우 이건명은 무게감 있는 유머를 보여준다. 부유한 부동산개발업자 맥과이어와 제우스 신을 연기하는 김성기, 여신들로 등장하는 홍지민 양꽃님 등의 화려한 조연 연기는 막강 화력을 선보인다.
무대 디자인과 연출 동선은 브로드웨이 공연을 거의 복제했지만, 한국인의 감성도 고려하고 마치 가벼운 개그 애드리브로도 보이도록 세밀하게 배치한 유머들은 효과적이다. 에너지 넘치는 배우들이 선사하는 해피엔딩은 한바탕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11월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문의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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