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3

..

채식 옛말 고기 먹는 인도인

식습관 조사 결과 인구 60%가 “육식” … 대도시와 사회활동 많은 남성 비중 높아

  • 입력2008-04-21 17: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채식 옛말 고기 먹는 인도인

    닭고기로 ‘탄두리’를 요리하고 있는 인도인 요리사.

    인도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레’다. 하지만 ‘채식주의’ 역시 인도인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인도의 모든 음식은 채식과 채식이 아닌 것으로 나뉘고, 모든 인도인은 채식주의자-비채식주의자로 구분된다. 식물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식 또는 그런 음식만 먹는 사람을 베지태리언(Vegetarian), 줄여서 베지(Veg.)라고 부르며,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음식 또는 그런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넌베지태리언(Non-Vegetarian), 줄여서 넌베지라고 부른다. 인도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을 줄 때 승무원들이 늘 묻는 말이 “채식인가요, 육식인가요?(Veg. or non-veg.?)”다. 이 두 가지 구분 외에도 에지태리언(Eggitarian)이 있다. 채소와 함께 동물성 음식 중 달걀만 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교와 연관 채식에 강한 집착

    채식주의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롭다. 음식에 고깃덩어리가 보이지 않으면 채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나 생선을 끓여낸 국물이 아닌지, 양념이 순식물성인지,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꼼꼼히 살핀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고기나 멸치 국물로 만든 된장찌개나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모두 넌베지 음식이다. 또한 고기가 닿기만 해도 오염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은 위에 얹힌 고기를 들어내고 채소만 남았다 하더라도 그 음식에는 손대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들이 한식집에서 주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식은 비빔밥이다. 하루는 채식주의자인 인도인 친구와 함께 한식집에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비빔밥을 시켜주었더니 그만 달걀 프라이가 얹힌 비빔밥이 나오고 말았다. 아차 싶어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을 달라고 부탁했으나, 매우 당연하게도(?) 위에 얹은 달걀만 들어낸 비빔밥이 다시 나왔다. 상황을 눈치챈 친구는 ‘상관없어’를 연발하며 맨밥에 소금과 후추만을 뿌려 먹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인도인 의사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몇백만 달러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순식물성’이라고 표시된 감자튀김에 동물성 조미료가 들어가 그의 종교적 신념을 깨뜨렸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동물성이 다른 동물이 아닌 소였다니, 쇠고기는 어떤 경우에도 금기인 힌두교도에게는 정신적 충격이 컸을 법도 하다.

    이처럼 인도인들의 채식에 대한 집착은 종교와 연관돼 더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채식주의자는 전 인구의 70~80%에 이른다고 알려졌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주민 대부분이 채식을 고집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구자라트 주에는 세계 유일의 채식주의자 전용 피자헛이 성업 중이다.

    그러나 1991년 인도의 신경제정책 발표와 함께 시작된 대외 개방이 이미 20년 가까이 지속된 요즘, 인도 대도시에서는 고기를 먹는 인도인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최근 인도의 ‘CNN-IBN’ 방송과 ‘힌두’지가 합동으로 실시한 인도인의 식습관 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육식을 한다는 인구가 60%에 이른다. 채소만을 먹는 순수 베지태리언은 31%, 채소와 달걀도 먹는 경우가 9%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온 가족이 고기를 먹는 넌베지 가족은 44%로 개인을 기준으로 한 60%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또한 채식만 한다는 가정도 21%로, 채식주의 개인의 31%에 비해 낮았다. 과거에는 종교나 관습에서 비롯한 식습관 때문에 온 가족이 같은 식습관을 갖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종교나 전통 외에도 개인의 식습관을 결정하는 요인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사에 나타나는 수치와는 별개로 인도의 거리로 나서보면 이 변화가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도시의 음식점들 중 채식만 파는 곳은 극소수다. 물론 모든 음식점에는 ‘베지’와 ‘넌베지’ 메뉴가 구분돼 있지만 채식의 비중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채식주의 전문으로 시작한 음식점이 얼마 못 가 메뉴를 바꾸는 경우도 눈에 띈다.

    채식 옛말 고기 먹는 인도인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카르바 페스티벌’ 에 참석해 음식을 나눠 먹는 인도 여성들.

    닭고기 ·양고기 소비 증가 애그플레이션 일조

    델리에서 가끔 드나드는 이탈리아 음식점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예상했던 답이 나온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있는데, 잠재 고객 수를 일부러 줄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음식점이므로 당연히 고기를 팔 것이라 생각하고 왔던 손님들이 채식밖에 없는 메뉴를 보고 실망해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단다. 반면 메뉴에 고기를 집어넣고 술을 팔기 시작한 이후 부쩍 손님이 늘었다고. 재미있게도 술과 담배는 성분상으로만 보면 채식임이 분명한데 늘 넌베지로 구분된다. 채식주의자가 술과 담배를 즐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역시 베지와 넌베지의 구분에는 인도인들이 적용하는 종교적 잣대가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넌베지 열풍은 남인도 지역에서 더욱 거세다. 전통적으로 육식 인구가 많았던 북부에 비해 남부지역은 인구 대부분이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육식 습관의 확산은 매우 놀라운 현상이다. 남인도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북인도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고 닭고기, 양고기를 사용한 북인도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렇게 육식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닭고기, 양고기의 소비도 증가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닭고기의 소비량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1차적 이유 외에 고기 색깔이 흰색이어서 거부감이 적고 붉은 살코기보다 오염 정도가 덜하다는 인도인들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닭 사료 시장이 급부상해 인도가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람의 먹이가 될 닭을 먹이느라 사람들이 먹어야 할 곡식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결국 제한된 곡식을 가지고 사람과 닭이 경쟁하는 꼴이 돼버렸으니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