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전체 회의에 참석한 인수위원들.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교수 출신이다.
30년 전 삼청동에 가득했던 ‘군인’들이 밀려나가고 이젠 ‘교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성균관 박사와 유생’들이 경복궁 주변을 장악하자 조선조 사대부들이 고관대작의 집을 드나들며 선을 대던 ‘분경(奔競)’의 악습이 500년이 지난 오늘날, 그것도 백주에 재연된 셈이랄까.
요직(要職)은 한정돼 있고 경쟁자는 그간 한솥밥을 먹어온 지인들이다 보니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이후 가장 관심을 모은 인사는 다름 아닌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외교 및 안보 분야 장관 인선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부 해체’ 의지는 확고부동했지만 야당에 의해 저지된 바 있다.
당초 외교안보수석 기용이 유력시된 A교수 사례를 보자. 그는 경쟁자들의 급부상이 신경 쓰였는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른바 경쟁 교수들에 대해 평가절하 발언을 시도한 것이다. 사내 정치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대통령은 그 사실을 접하고 곧 그를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대북 강경론으로 잘 알려진 남성욱(고려대) 교수와 남주홍(경기대) 교수의 운명은 더욱 얄궂다. 애초 이 대통령과의 친분의 시작은 남성욱 교수가 먼저였다. 그는 자신의 선배격인 남주홍 교수를 이 대통령에게 소개했고, 한때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던 중 남성욱 교수는 이 대통령의 말과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사석에서 그대로 옮기다가 가벼운 처신이 문제가 됐고, 결국 새 정부 첫 통일부 장관의 영광은 ‘뉴라이트 그룹’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굴러온 돌’ 남주홍 교수에게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대선 캠프에 합류한 직후 “폴리페서라는 말 대신 현실정치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선비’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사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일주일 만에 낙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 교수들은 언론사에 제보를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모 교수는 “정치판이나 교수판이나 권모술수는 엇비슷하다”고 촌평했다.
대선 전 MB 지지선언 전문직 중 교수가 절반 넘어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대립이 첨예하던 지난해 7월 말, 대학총장을 포함한 수백명의 교수와 변호사, 의사 등 1016명의 전문직 인사들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선진경제 도약을 열망하는 지식인 1000인 선언’이다. 이 가운데 교수가 절반이 넘는 643명에 달했다.
물론 5년 전인 2002년에도 100여 명의 교수들이 편을 갈라 당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이 같은 지식인들의 대선후보 지지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로부터 10년 만에 수십 배 규모로 확대된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정치권으로 달려가는 교수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학계에 몸담은 전문가로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 자신의 이데아를 펼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플라톤 시대 이후 계속된 ‘이상론’과 ‘현실론’의 갈등, 바로 그것인 셈이다. 불행히도 한국 대학들은 학자들이 살기엔 지나치게 좁았고, 학문시장은 BK21 사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치권력에 휘둘려왔다.
이명박 캠프에 잠시 몸담았다는 한 국립대 교수는 “그간 보고서를 많이 써왔다. 내가 써낸 보고서를 들고 이 후보가 정책으로 발표할 때는 벅찬 전율을 느꼈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 것 이상의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학계로 되돌아가며 “정치적인 인간관계, 누군가를 밟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에 숨이 막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학계로 돌아간 실제 이유는 요직에 발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과 교수는 주로 동문회나 지인 소개로 만나
지금까지 대학교수가 장관급에 오른 경우는 얼마나 될까. 문민정부(YS 정권) 이후로만 따져도 장관을 지낸 전현직 교수는 족히 100명은 된다. 대학교수에서 곧장 장관으로 수직 상승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관료→교수→관료’ 또는 ‘교수→관료→교수’의 길을 걸었던 인사도 상당수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유달리 교수직 타이틀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답 역시 간단하다. 먼저 교수들이 가진 전문성을 기존 정치인들이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제너럴리스트라면, 아무래도 스페셜리스트는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나 대학 교수에서 충원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장관 보좌관을 지낸 한 정치인은 “두 명의 장관 중 한 명이 교수 출신이었는데 확연히 달랐다. 정치인 장관보다 전문지식과 관련된 경험이 풍부하니 혁신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한다. 김대중(DJ) 정부에서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교수는 “조직생활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한 것을 제외한다면 교수라는 직위는 인품과 전문성을 보증하는 담보수표로 인식되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관료나 정치인 출신은 대중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없다. 정조 이산에게 홍국영이 필요했다면, 오늘날의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비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야심 있고 실력 있는 학자’가 필수적이다.
대선을 앞뒀던 지난해 말로 다시 돌아가보자.
당시 정치교수들의 집결지는 다름 아닌 정치 1번지 여의도였다. 교수들이 주축이 된, 여야 대선주자들과 손잡은 기묘한 형태의 학술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정치권으로 달려가는 교수들을 통칭하는 ‘폴리페서(polifessor)’를 꼬집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 수는 오히려 늘기만 했다. 모임 이름에는 대선주자들의 캠프가 차려진 빌딩 이름이 주로 쓰였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주변에는 10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자문그룹 형태로 자리잡았다(캠프 정책자문단 400여 명+국제정책연구원 60여 명+바른정책연구원 500여 명). 그리고 지금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의 인재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예비 장관, 예비 수석이라는 꿈을 안고 지금도 정치권을 향해 ‘줄 대기’를 시도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인재풀에 이름이 오른 교수들만 300명은 족히 넘는다”고 털어놓는다.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문국현 캠프 역시 각각 200~400명에 이르는 자문교수단을 운영하며 세를 과시해왔다.
유력 정치인과 교수들의 만남은 주로 동문회나 지인의 소개로 엮어진다. 평소 소신에 따른 정책결정으로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정책 보따리’를 들고 여야 캠프를 전전하는 교수들도 많다.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교수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대 교수 A씨의 경우 처음에는 고건 전 총리를 돕다가 고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쪽으로 돌아섰고, 정 전 총장마저 낙마하자 한나라당의 유력 캠프에 몸을 의탁했다.
지방국립대 행정학과 교수 B씨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거의 서울에 살다시피 했다. 몇몇 아는 기자와 정치인들을 만나느라 여의도에 출근도장을 찍었고, 이명박 후보의 사무실에 매일 드나들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든지 브리핑이 가능한 정책 자료집이 들려 있었다.
B씨는 기자에게 “국가예산을 10조원 이상 줄일 수 있는 대안이 여기에 담겨 있다. 후보님께서 보신다면 분명히 정책으로 채택하라고 지시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이 후보와 인연이 있는 기자들 목록까지 만들어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
서울지역 사립대 교수 C씨는 대선기간 내내 술집을 전전했다. 유명 사립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정책포럼을 꾸렸다. 이름도 그럴듯하게 ‘여의도·#52059;·#52059;포럼’이라 붙였다. 30여 명에 달한 이 모임에는 C교수의 대학 동창, 후배들이 참여했다. 그는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교수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 돈 들여가며 한나라당을 돕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며 반박했다.
여의도에 기댈 곳을 찾지 못한 교수들은 차선으로 당선이 유력한 정치인과 가까운 시민단체 등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는 뉴라이트 그룹이 그 구실을 했다. 다행히 남주홍 김성이 교수가 공동대표 타이틀을 받아냈고 당당히 국무위원 내정자 지명을 받아냈다.
칼럼 기고와 방송 출연은 정치교수들의 무기
이번 이명박 정부 ‘인사 파동’의 주역이 된 남주홍 박은경 김성이 교수 모두 ‘폴리페서’라는 시각에서 보면 정치 지향 교수의 성공 조건을 대략 확인할 수 있다.
남 교수는 방송의 힘을 일찍이 활용한 사람이다. MBC와 KBS 안보 관련 객원해설위원을 역임하고 안보 관련 토론회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최근 TV를 통해 유명세를 얻는 교수를 총칭해 ‘텔레페서(telefessor :television+professor)’라 부르기도 한다.
박 교수와 이 교수는 20여 년의 강단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단체 대표로 진출한 경우다. 이들 모두 10개가 넘는 사회단체 대표를 겸직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교수는 가장 적극적으로 교수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한 경우다. 10만여 명에 이르는 사회복지사를 ‘사회복지사협회’란 이름으로 조직했고, 한때 국민복지당을 창당해 공동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폴리페서들의 무기는 매스미디어다. 매스미디어에도 일정한 유행이 있는데, DJ 정부 시절에는 ‘TV토론회 사회자’가 인기를 끌었고 참여 정부 때는 인터넷 진보매체 칼럼니스트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인쇄매체 기고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대통령이 조간신문을 탐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 신문사 오피니언팀에 칼럼을 싣고 싶다는 정치교수들의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매스미디어에 학자의 철학을 홍보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입신양명을 위해 기존의 학문적 소신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는 경우다.
‘한반도 대운하’ 관련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기존 입장을 뒤집고 운하 찬성론으로 돌아선 교수들이 부지기수다. 영남지역 일부 지방대학에서는 토목, 건축은 물론 관광 관련 학과 교수들까지 자발적으로 ‘대운하 연구회’를 꾸리고 학술지까지 발간하기도 한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학술진흥비를 타내기 위해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학자들이 슬금슬금 ‘논문 세탁’에 나선 경우까지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안병영 장관은 교수 출신으로 성공 사례 꼽혀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학자의 정치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출세를 위해 학자적 양심을 파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 역시 “교수들의 정치참여는 평소 학문적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풀어낸다는 면에서 순기능이 있지만 잿밥(정치)에만 관심 갖는 교수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이번 조각(組閣)에서 등용되지 못한 한 교수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학계에만 국한된 인맥도 문제였고 정치력이 부족한 한계도 있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렇다면 유독 인사 검증과 관련해 교수 출신들에게 많은 문제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들은 이미 많은 부분이 언론에 노출되는 생활을 해온 탓에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해온 경우다. 따라서 최소한 재산이나 가족 문제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교수는 상대적으로 ‘방종’하게 행동해온 측면이 없지 않다. 근래 논문표절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는 것 역시 캠퍼스 내에서 ‘소황제’로 살아온 교수들의 뒤처진 시대감각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항간에는 ‘정치가 3류라면 대학은 4류, 아니 5류’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게다가 정치적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인사 검증 자체에 대해 소극적이고 자기방어적이며 투박하기까지 하다. 정치에 대한 감각도 부족하다. “땅을 사랑할 뿐”(박은경 교수)이라거나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남주홍 교수) 등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물론 교수 출신들이 정치권에 들어가 성공한 경우도 많다. 참여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 전 연세대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장관 취임 직후 추진한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핵심 사업이던 ‘EBS 수능 강의 및 인터넷 서비스’는 지금도 교육부 주변에선 보기 드물게 성공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기시됐던 교원평가 문제를 전면적으로 들고 나온 점도 인상적이었다.
비록 노동계와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참여정부의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성공한 장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노동계의 불법파업에 분명히 선을 긋는 강단 있는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하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1000여 명의 폴리페서들이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부르자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은 독자 의견을 한 언론사에 보내왔다.
“멀리는 조선시대 유생들의 상소에서 4·19 혁명을 이끈 대학교수들의 선언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지식인의 선언은 모두 목숨과 지위를 건 양심의 목소리 같은 것이었다. … 하지만 요즘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밑에서 한자리 얻으려는, 즉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이름 붙이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김영삼 정부 |
박재윤/ 경제수석·재무부·통상산업부/ 1993년 2월~1996년 12월/ 부산/ 서울대/ 부산대·아주대 총장 김시중/ 과학기술처/ 1993년 2월~1994년 12월/ 충남 논산/ 고려대/ 영남대 석좌교수 한완상/ 통일원/ 1993년 2~12월/ 충남 당진/ 서울대/ 대한적십자사 총재 오병문/ 교육부/ 1993년 2~12월/ 전북 남원/ 전남대/ 동신대 명예교수 김숙희/ 교육부/ 1993년 12월~1995년 5월/ 충남 천안/ 이화여대/ 농촌희망재단 이사장 김덕/ 국가안전기획부(부장)/ 1993년 2월~1994년 12월/ 경북 구미/ 한국외국어대/ 통일원 장관 박윤흔/ 환경처/ 1993년 12월~1994년 12월/ 전남 보성/ 경희대/ 대구대 총장 박영식/ 교육부/ 1995년 5~12월/ 경남 김해/ 연세대/ 광운대 총장 안병영/ 교육부/ 1995년 12월~1997년 8월/ 서울/ 연세대/ 연세대 명예교수 권숙일/ 과학기술처/ 1997년 3월~1998년 3월/ 서울/ 서울대/ 서울대 명예교수 최광/ 보건복지부/ 1997년 8월~1998년 3월/ 경남 남해/ 한국외국어대/ 국회예산정책처 처장 이명현/ 교육부/ 1997년 8월~1998년 3월/ 평북 신의주/ 서울대/ 태양학원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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