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을 압승으로 이끈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 개표가 진행된 이날 밤 온 국민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지만, 정작 그는 국민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세 과정에서의 피로를 이유로 잠적해버린 것.
일각에서 ‘건강 이상설’이 대두됐고, ‘오만한 태도’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는 1991년 협심증으로 쓰러진 병력이 있다.
그러나 ‘잠적’ 이틀 만인 31일 당직자회의에 나타난 그는 “건강에 문제없다”면서 세간의 억측을 일축했다. 당직자들에게는 “여러분 덕에 당분간은 나가타(永田·정계를 일컬음) 정에서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 과반수를 깨지 못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던 자신의 선언을 빗댄 발언이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242개 참의원 의석 중 45%가 넘는 109석을 차지해 사상 처음 참의원 제1당으로 도약했다. 이는 무소속(13석), 공산당(7석), 사민당(5석) 등과 의기투합하면 절반(121석)을 넘길 수 있는 수치다.
민주당 109석 차지 참의원 제1당 도약
양원제인 일본에서 더 큰 힘을 가진 곳은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의원이다. 그러나 참의원은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을 거부할 수 있다. 부결된 법안은 다시 중의원으로 돌아가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쳐야 가결된다. 그럼 어차피 중의원의 뜻대로 되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시간이나 에너지 소비 차원에서 보통 일이 아니다.
“1차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참의원을 큰 싸움터로 삼아 (정권교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전력을 다하자.”
7월31일 당직자회의에서도 말했듯, 오자와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교체다. 그는 ‘미국식 보수 양당체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그는 참의원을 무대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중의원 해산, 총선거, 정권교체의 절차를 밟아나갈 태세다.
사실 그는 지난해 4월 민주당 대표에 앉은 순간부터 이번 참의원 선거에 대비하며 정권교체에 집념을 보였다. 지난해 9월 아베 총리 취임 직후에는 “아베라면 승산이 있다”며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일본 언론은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데는 자민당이 자멸한 탓도 있지만, 지난해부터 여러 지방을 뛰어다니며 표밭을 다진 오자와 대표의 선거전략도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손대는 선거마다 승리로 이끌어 ‘선거의 오자와’라는 평가를 받은 그가 또다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
모호한 구호를 내건 아베 총리와 달리 오자와 대표는 ‘약자와 지방’에 초점을 맞췄고, 연금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자 ‘생활이 제일’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반면 아베 총리는 “내가 더 총리에 어울리는지, 오자와 대표가 더 어울리는지를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 발언은 선거 결과가 나온 뒤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면서도 왜 퇴진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오자와의 존재감은 민주당 대표에 앉을 때부터 감지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이전까지 역대 민주당 대표에게는 여유를 보였지만, 오자와가 대표로 등장하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야당과 공조 아베 사퇴 다각도 압박 계획
오자와는 27세에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며 ‘자민당의 황태자’로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을 지내며 막후의 ‘킹메이커’로 군림했다. 1991년 10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총재직을 맡으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 그가 ‘총리’를 노리냐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이미 한 차례 총리직을 거부했다. 따라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1993년 정치개혁을 내걸고 탈당한 뒤에는 호소카와 연립정권을 탄생시켜 ‘정계 개편의 설계자’로 불렸다.
저서 ‘일본열도 개조론’에서도 잘 드러나듯 오자와는 보수주의자이자 철저한 시장원리주의자다. 흔히 거론되는 ‘보통국가’론도 그가 저서에서 처음 주창했다. 이런 그가 이번 선거에서 격차문제 등 서민복지 문제를 호소하자 ‘선거용’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차가운 시선도 따라다녔다.
선거 후폭풍은 이미 시작됐다. 민주당은 앞으로 사민, 공산, 국민신당 등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아베 총리 사퇴와 중의원 해산을 관철하기 위해 다각도로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언론은 올 가을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정부제출 법안에 수정을 요구하거나 대립법안을 통과시킬 뿐 아니라, 각료의 문책 결의안, 나아가 총리의 문책 결의안이 참의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오자와의 구상대로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사회당 몰락 이후 자민당 독재가 이어진 일본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향후 일본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쥔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만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다 해도 오자와가 총리를 맡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도 적지 않다. 본래 막후 참모 스타일로 대중정치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본인도 무대위 정치를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밥만 먹어도 쉬어야 하는 건강문제도 계속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 좀더 젊은 세대로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 대표 등 민주당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 ‘건강 이상설’이 대두됐고, ‘오만한 태도’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는 1991년 협심증으로 쓰러진 병력이 있다.
그러나 ‘잠적’ 이틀 만인 31일 당직자회의에 나타난 그는 “건강에 문제없다”면서 세간의 억측을 일축했다. 당직자들에게는 “여러분 덕에 당분간은 나가타(永田·정계를 일컬음) 정에서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 과반수를 깨지 못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던 자신의 선언을 빗댄 발언이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242개 참의원 의석 중 45%가 넘는 109석을 차지해 사상 처음 참의원 제1당으로 도약했다. 이는 무소속(13석), 공산당(7석), 사민당(5석) 등과 의기투합하면 절반(121석)을 넘길 수 있는 수치다.
민주당 109석 차지 참의원 제1당 도약
양원제인 일본에서 더 큰 힘을 가진 곳은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중의원이다. 그러나 참의원은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을 거부할 수 있다. 부결된 법안은 다시 중의원으로 돌아가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쳐야 가결된다. 그럼 어차피 중의원의 뜻대로 되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시간이나 에너지 소비 차원에서 보통 일이 아니다.
“1차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참의원을 큰 싸움터로 삼아 (정권교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전력을 다하자.”
7월31일 당직자회의에서도 말했듯, 오자와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교체다. 그는 ‘미국식 보수 양당체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그는 참의원을 무대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중의원 해산, 총선거, 정권교체의 절차를 밟아나갈 태세다.
사실 그는 지난해 4월 민주당 대표에 앉은 순간부터 이번 참의원 선거에 대비하며 정권교체에 집념을 보였다. 지난해 9월 아베 총리 취임 직후에는 “아베라면 승산이 있다”며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일본 언론은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데는 자민당이 자멸한 탓도 있지만, 지난해부터 여러 지방을 뛰어다니며 표밭을 다진 오자와 대표의 선거전략도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손대는 선거마다 승리로 이끌어 ‘선거의 오자와’라는 평가를 받은 그가 또다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
모호한 구호를 내건 아베 총리와 달리 오자와 대표는 ‘약자와 지방’에 초점을 맞췄고, 연금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자 ‘생활이 제일’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반면 아베 총리는 “내가 더 총리에 어울리는지, 오자와 대표가 더 어울리는지를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 발언은 선거 결과가 나온 뒤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면서도 왜 퇴진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오자와의 존재감은 민주당 대표에 앉을 때부터 감지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이전까지 역대 민주당 대표에게는 여유를 보였지만, 오자와가 대표로 등장하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야당과 공조 아베 사퇴 다각도 압박 계획
오자와는 27세에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며 ‘자민당의 황태자’로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을 지내며 막후의 ‘킹메이커’로 군림했다. 1991년 10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총재직을 맡으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 그가 ‘총리’를 노리냐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이미 한 차례 총리직을 거부했다. 따라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1993년 정치개혁을 내걸고 탈당한 뒤에는 호소카와 연립정권을 탄생시켜 ‘정계 개편의 설계자’로 불렸다.
저서 ‘일본열도 개조론’에서도 잘 드러나듯 오자와는 보수주의자이자 철저한 시장원리주의자다. 흔히 거론되는 ‘보통국가’론도 그가 저서에서 처음 주창했다. 이런 그가 이번 선거에서 격차문제 등 서민복지 문제를 호소하자 ‘선거용’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차가운 시선도 따라다녔다.
선거 후폭풍은 이미 시작됐다. 민주당은 앞으로 사민, 공산, 국민신당 등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아베 총리 사퇴와 중의원 해산을 관철하기 위해 다각도로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언론은 올 가을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정부제출 법안에 수정을 요구하거나 대립법안을 통과시킬 뿐 아니라, 각료의 문책 결의안, 나아가 총리의 문책 결의안이 참의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오자와의 구상대로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사회당 몰락 이후 자민당 독재가 이어진 일본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향후 일본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쥔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만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다 해도 오자와가 총리를 맡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도 적지 않다. 본래 막후 참모 스타일로 대중정치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본인도 무대위 정치를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밥만 먹어도 쉬어야 하는 건강문제도 계속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 좀더 젊은 세대로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 대표 등 민주당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