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관장 임기 만료 상태가 오래 이어진 공공기관은 당장 황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기에는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공공기관 인사권 행사에 대한 법 규정이 명확지 않다. 일각에선 내년 정권이 바뀌면 곧바로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인사가 있을 예정이라 황 권한대행이 무리하면서까지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총리실 “법리해석 중”, 일부 부처는 후보 제청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12월 말 현재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 인선이 완료되지 않은 공공기관은 총 22곳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에서는 박구원 한국전력기술 사장과 최외근 한전KPS 사장, 김영학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의 임기가 끝났다. 이외에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은 12월 7일 임기를 끝내고 이임식까지 마쳤지만 후임자 인선과 관련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대통령 부재에 따른 국정공백이 길어질수록 기관장 없는 공공기관은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 3월 5일까지 IBK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한국수출입은행 등 총 15곳의 공공기관장 임기가 끝난다. 이 중 12월 27일 임기가 끝나는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후임자 없이 물러날 경우 ‘중소기업은행법’ 제25조 2항에 따라 수석부행장인 박준홍 전무가 행장대행을 맡게 된다. 그러나 박 전무 역시 한 달가량 뒤인 1월 20일부로 임기가 끝난다. 최악의 경우 행장대행의 대행을 맡는 이사까지 나올 수 있다.
신임 기관장이 없다고 그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8조 5항에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이 있다. 즉 후임자가 없으면 전임자가 계속 기관장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각 공공기관은 “새 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전임 기관장이 계속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사업이 불가능하다. 당장 전임 기관장은 본인이 언제 기관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새 사업을 하려 들지도 않는다. 만약 새 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곧 떠날 기관장이 제안한 사업에 열정적으로 임할 직원은 많지 않다. 결국 유임된 기관장은 기존에 하던 사업을 관리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6개월짜리 기관장 누구도 안 원해
몇몇 공공기관은 이미 임추위를 거쳐 후보자를 추렸지만 탄핵정국과 맞물려 후속 작업을 멈춘 상태다. 12월 말 기관장 임기가 끝나는 기관 22곳 중 총 6곳의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그 사례다. 미래부 관계자는 “일부 기관은 후보자를 추려서 올린 것으로 안다. 이 후보자들을 최대한 빨리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제청할 예정이지만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관은 임추위 구성도 못 하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통상 임기 만료 두세 달 전 임추위를 꾸리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절차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12월 말 현재 임기가 만료된 지 2~3개월이 넘은 공공기관장도 적잖다. 8월 임기가 만료된 김명열 코레일로지스 사장과 임광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장, 9월 김윤기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장,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10월 박구원 한국전력기술 사장, 최정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이 그들이다. 이들 자리는 임기 만료 후 각 부처의 후임자 추천이 이뤄졌지만 청와대가 11월 초까지 낙점을 늦추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임명이 무산됐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공석 상태가 유지되거나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그대로 근무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각 부처가 올린 신임 기관장 후보가 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모두 탈락하고 새로운 인물을 찾는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거나, 아니면 검증은 통과했지만 일부 국립대 총장의 사례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임명을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추천된 인물이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임기 만료된 기관장이 무척 맘에 들어 편법적으로 임기를 늘려주려는 의도가 있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기관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논공행상’ 차원에서 공공기관장 자리를 노리는 이가 많은 정권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하마평도 나오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석환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장은 정권이 바뀌면 바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관행이다. 조기 대통령선거가 유력한 상황에서 길어야 6개월짜리 감투를 위해 무리하게 기관장에 오르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이 낙하산 인사 등 논란이 불거질 위험이 있어 본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인사권 행사는 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기획재정부 공공운영위원회에 새 회장 후보군을 추천했지만, 후보군이 정해지더라도 임명은 지연될 개연성이 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의 이름으로 인사


실제 박 대통령이 직무 정지 전 낙점해둔 공공기관장 인사가 있다면 황 권한대행이 이를 이행할 공산이 크다. 실질적인 국정공백 상태인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후임자가 정해진 공공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11월 30일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 이관섭 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이 새로 취임했고,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도 12월 8일부로 임기가 1년 연장됐다.
일각에서는 공공기관장 자리가 대거 비어 있는 지금을 공공기관 인사 때마다 나오는 ‘낙하산’ 비판에서 탈피할 기회로 보기도 한다. 황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합리적 인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내부 인사나 실력 있는 외부 인사를 기관과 정부 부처가 추천하고 황 권한대행이 원칙에 따라 기관장을 임명하는 합리적 절차를 따른다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기관장 체제하에서 각 공공기관이 자율경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