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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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존안파일’이 손안에 있소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서 고위직 관찰 기록 … 인사 후보자 은밀한 조사 철저 검증에 한계

  • 김시관 기자 ks21@donga.com

    입력2005-01-26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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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 ‘존안파일’이 손안에 있소이다
    정찬용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지난해 9월 백악관을 방문했다. 잠시 휴식을 하겠다는 의미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미국의 인사검증 제도를 알아보려는 목적이 더 컸다. 파월 인사보좌관과 곤잘레스 법률고문이 정 전 수석에게 던진 조언은 간결했다고 한다.

    “인사 검증 과정을 급행으로(express) 처리하면 꼭 사고가 생긴다.”

    인사의 첫 번째는 ‘만만디 검증’임을 강조한 말이었다.

    2004년 1월4일 개각을 앞두고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특명이 떨어졌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등 장관 후보자 30여명에 대한 검증 작업을 추진하라는 지시였다. 주어진 시간은 3일이 전부였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은 급행열차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결론은 알려진 대로였다.

    “서울대 총장을 그만두면서 불거졌던 사안의 폭발력이 아직 유효하다. 이기준씨를 교육부총리에 임명하면 다시 논란이 될 수 있다.”



    3일 만에 30명 검증 “이기준씨 부적격 판정”

    교육부총리로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셈이다. 박정규 당시 대통령민정수석은 이 결과를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장인 인사추천위원회에 풀어놓았다. 그러나 인사추천위는 이를 외면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아들의 부동산 의혹이 불거져나오면서 ‘부실 검증’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참여정부가 자랑으로 삼던 투명한 인사 시스템이 고장 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이 일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지휘하던 박정규 수석이 정찬용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공무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 가운데 한 곳이다. 물론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정비서관실도 있지만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보통의 공무원이라면 별 상관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고위 공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곳이어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존안파일’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비서관 외에 감사원 국세청 경찰 등에서 파견된 10명 안팎의 행정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일상 업무는 국가정보원이나 경찰 등에서 올라온 고위 공직자에 대한 ‘관찰기록’을 ‘존안파일’에 기록하는 일이다. 따라서 여기에 ‘사생활 문제 있음’ 또는 ‘대통령 비난 발언’ 등으로 기록되면 나중에 장·차관 등 고위 공직에 진출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직자 ‘존안파일’이 손안에 있소이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과 문재인 민정수석(오른쪽).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분주해지는 때는 개각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 수요가 있을 때다. 인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일명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도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하기도 했지만, 사직동팀이 없어진 지금은 국세청 등에 협조를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닌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후보자 본인과 배우자, 미혼 자녀의 재산과 병역 등을 조사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하기도 하고, 미심쩍은 부분은 당사자에게 직접 묻기도 한다. 그 이상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때문에 조사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제는 부실 검증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때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료는 “시간이 촉박한 데다 무엇보다 인사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은밀히 조사하다 보니 검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보자 본인이 협조하지 않으면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33개의 질문 항목을 들고 50여일 동안 쫓아다니며 공직 후보자의 성격, 주변 인물관계, 평판, 애국심, 능력, 편견 혹은 선입관, 생활양식과 소비·지출 습관까지 조사하는 미국과의 비교는 애초 무리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한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철두철미하게 검증한다는 것은 곧 개인기밀보호법을 어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한 어떻게 숨겨놓은 재산과 고지를 거부한 아들 재산, 국적을 확인할 수 있나.”

    ‘추천과 검증’ 이원화 주장 설득력

    주로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검증 방법도 한계가 있다.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검증을 하려면 현장 검증 등은 꿈도 못 꾼다”고 말한다.

    청와대도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이런 인사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거듭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주변에서는 ‘추천과 검증’에 대한 더욱 확실한 이원화를 주장한다. 참여정부 초기 인사문제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인사 추천자(인사수석)와 검증자(민정수석)가 함께 (인사추천)회의에 참석하면 검증자는 의견을 제대로 제시하기 어렵다”면서 “인사 검증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들어 인사수석실을 신설해 추천과 검증을 분리했으나, 한자리에서 함께 토론하는 바람에 ‘절반의 분리’에 그쳤다는 것.

    한편 청와대는 1월6일 노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씨 변호를 맡았던 김진국 변호사를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에 임명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전해철 변호사와 함께 노 대통령의 386 측근 안희정씨 변호를 담당했던 인물. 능력 유무를 차치하고 두 인사의 전진배치는 인사 검증과 대통령 친인척 및 정권 실세를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정권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는 민정수석실의 구실과 기능에 대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사유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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