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로 쓰이는 메칠페니데이트 성분 약.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약품은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큰 해를 입힌다. 때문에 현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사용과 유통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메칠페니데이트는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도록 제한된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을까.
시험 앞둔 학생들 암암리에 신경정신과 찾아
주간동아 취재 결과 마약류를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일선 의원들에서도 메칠페니데이트가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험생들이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메칠페니데이트를 ‘합법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것.
대학생 A씨(22)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메칠페니데이트를 달라고 하면 몇 가지 주의사항만 일러주고 약을 처방해준다”고 털어놓았다. 의사에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 약이 꼭 필요하다는 말만 하면 된다는 것. A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한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메칠페니데이트 약 한 달치를 구입한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약효가 12시간 지속되는 제품이 있더라고요. 의사에게 그 제품을 처방해달라고 하니까 1알에 4000원이라고 해요. 너무 비싸서 약효가 4시간 정도 지속되는 좀더 싼 제품을 구입했어요. 의사는메칠페니데이트가 공부할 때 잠깐 효과 보기에 좋은 약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신경정신과는 원내 처방이 가능하니까, 약국 갈 필요도 없어 편하지요.”
A씨처럼 특별한 정신 장애를 앓고 있지 않는데도 신경정신과에서 메칠페니데이트를 처방받는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한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2∼3년 전부터 수험생들이 집중력을 높일 목적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아와 메칠페니데이트를 처방받아 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신경정신과 개업의는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몇 달 앞둔 때에 성적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수험생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코넬 대학 의과대학 김해암 부교수는 “미국의 기숙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부모가 보내준 메칠페니데이트를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어린이.
그런데 주간동아 취재 결과 일선 의원들이 ADHD 환자 치료 목적으로도 메칠페니데이트 처방을 남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확한 진단 없이 환자를 ADHD로 판단해 이 약을 복용시키고 있는 것.
“쫛쫛야, 공부 잘하고 싶지? 선생님이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 줄까? 아침 점심때마다 까먹지 않고 먹어야 해, 알았지?”
최근 가정주부 B씨는 초등학교 6학년 진학을 앞둔 아들을 데리고 서울의 한 신경정신과 의원을 찾았다. 평소 B씨는 아들이 공부할 때 주의력이 떨어지는 점을 걱정해왔는데, 메칠페니데이트 성분 약을 복용하면 주의력이 향상되어 성적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찾기로 결심한 것. B씨는 의사에게 “담임교사한테서 아들이 수업시간에 떠드는 등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주의력을 향상시켜주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고 의사와 20분가량 상담했습니다. 별다른 검사 없이 제 말만 믿고 우리 아이가 ADHD라고 진단하더군요. 그리고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하루 두 알씩 먹이면 산만했던 아이가 차분해지는 등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변할 거라고 하더군요.”
식욕부진·수면장애 부작용 우려 … 중독 위험성도 충분
가정주부 C씨는 수도권의 한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아예 딸을 의사에게 보여주지 않고도 메칠페니데이트를 처방받았다. 딸아이가 정신과 병원에 가길 꺼려한다고 전화로 문의하자 간호사가 “부모만 와서 의사와 상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해 혼자 병원을 찾아간 것. C씨는 “딸아이가 좀 산만한 편이며 충동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고 설명한 즉시 의사한테서 ‘공격성 집중력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약을 복용한 지 4시간 정도 지나면 아이가 조용하고 순해지며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20∼30분 동안의 부모 면담만으로 ADHD로 진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어린이의 정서적 심리적 특성상 정신 장애를 앓고 있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욱 면밀하고 조심스러운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의진 교수(연세대 소아정신과)는 “두세 번에 걸친 면담, 심리 평가, 주의력과 충동성을 재는 신경인지검사, ADHD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부모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부모 말만 믿고 바로 약을 처방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신 교수는 “면담이나 심리검사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산만한 환자일 경우에만 검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메칠페니데이트를 복용시켜 환자의 상태를 좀 가라앉힌다”고 설명했다.
비만클리닉에서 체지방 검사를 받고 있는 여성.
학부모 D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12시간 약효가 지속되는 메칠페니데이트 약을 복용시켰다. 그런데 한 달 동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해 하루 2알씩으로 복용량을 늘렸다가 밥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식욕부진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D씨는 “약 복용 후 전혀 행동 변화를 느끼지 못했고 아들도 오히려 전보다 집중해서 공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메칠페니데이트를 복용시키는 학부모 E씨는 “10개월 동안 약을 복용했는데 나아진 게 거의 없다”면서 “의사는 복용량을 늘리자고 하는데 부작용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고민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가들은 메칠페니데이트를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으로 간주해 남용할 경우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까지 메칠페니데이트에 중독된 임상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으나, 이 약이 중추신경흥분제에 속하기 때문에 중독 위험성이 있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 신경정신과 개업의인 김병석 박사는 “메칠페니데이트에 중독됐을 경우 약 복용을 중단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고, 복용량을 계속 늘리면 정신착란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정상인이 복용한다면 지나치게 흥분해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얌전한 아이가 난폭해지거나 진땀이 나고 피해망상이 생길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ADHD 치료를 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해암 부교수는 “ADHD 치료에서 약은 보조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가 산만하게 된 원인을 찾아 교정해주는 것이 근본 치료이며, 심리 상담과 더불어 스트레스를 덜 받게 생활환경을 개선해줌으로써 증세를 완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치료법을 모두 동원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을 경우에만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추신경 흥분하게 하는 ‘각성제’는 비만 치료용으로 쓰여
심지어 살을 빼는 비만치료에도 향정약품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중추신경을 흥분하게 하는 각성제가 비만치료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각성제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쓰이는 향정약품으로 수면을 방해하고 혈압을 올리며 피로감을 없애는 게 특징.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이 런던을 공습할 때 조종사의 졸음을 쫓기 위해 개발된 이 약물은 장기간 복용하면 만성중독 증상과 무기력, 환각, 정신분열증까지 일으키는 무서운 부작용이 있다. 각성제의 과용은 때때로 강간, 폭행, 상해, 살인 등의 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서울과 수도권 지역 일부 비만클리닉의 처방전에는 각성제가 일주일 단위로 몇 달씩 계속 처방되고 있었다. 이들이 각성제를 비만 치료제로 처방하는 이유는 각성제가 식욕을 떨어뜨리고 구토 증상을 일으키는 부작용(不作用)이 있기 때문. 이 의사들은 약품의 부작용을 약의 2차적인 효과, 즉 부작용(副作用)으로 쓰고 있었다.
2004년 6월13일 ‘머리 좋아지는 약’으로 소문난 메칠페니데이트 밀수범을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부가 메칠페니데이트 340정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약을 적게 쓰니 그래도 나은 편이다. 살 잘 뺀다고 소문이 나 아이들보다 어른 손님이 더 많은 수도권 지역의 한 소아과의원은 각성제에다 항우울제를 넣고 감기약 성분의 약을 두 알씩이나 넣은 뒤 이뇨제까지 쓰고 있었다. 한 번 먹는 비만 치료제에 들어간 약만 8알. 장기 복용하면 각성제만큼이나 부작용이 있는 항우울제를 덤으로 쓴 데다 제품설명서에 다른 감기약과는 함께 처방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는 감기약 성분을 과감하게 한번 더 처방했다. 해당 의원에서는 한 달에 10kg을 뺄 수 있는 폭탄 다이어트라고 홈페이지에 버젓이 광고까지 해놓았다.
이에 대해 대한비만체형학회는 “각성제는 식욕억제제로 FDA(미국 식품의약국) 인증을 받은 것이어서 비만치료제로 쓰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항우울제는 환자 증상에 따라 병용 처방하는 것으로 인증이 나 있으므로 쓰는 데 지장 없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10여년 전 FDA의 인증을 받은 각성제와 항우울제가 식욕억제제, 즉 살 빼는 약으로 국내에 밀반입돼 이를 과용한 한 여성이 환각상태에 빠져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얼마 뒤 이 약은 미국에서도 판매가 중지되었지요.”
각성제를 살 빼는 약으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는 대한비만학회 소속의 한 대학교수가 한 말 속에는 우리의 서글픈 의료 현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