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뭐라 해도 억지로라도 섞어놔야 한다. 목수 아들과 대기업 임원 아들이 설사 질시의 다툼을 벌일지라도 한 반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서로를 알아야 한다. 엘리트 배출보다, 전반적인 학력 제고보다,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 몇 년 새 비교적 열심히 참석한 연말 자리가 있다. 바로 학교 동창회나 반창회 같은 것. 이유야 말할 나위없다. 재미있기 때문. 초대장이 있을 리 만무한 그 사사로운 모임의 날짜를 기억하느라 애쓰고, 서울 구로구 개봉동 굴다리 지나 무슨 슈퍼마켓 몇째 골목 두 번째 집 ‘쫛쫛갈비’ 같은 데를 찾아간다. 중학교 때 아이들, 고등학교 때 녀석들이 중늙은이가 되어 불콰한 얼굴로 손을 흔든다. 대뜸 욕설이다. “얌마, 니 테레비에도 나오고 출세했다 야아….”
사회 계층 간 섞이기 가장 좋은 방법 … 욕하지 말라
올해 신문을 장식한 뉴스 가운데 반갑기 그지없던 게 하나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각국 청소년들의 학력을 비교 평가했는데 우리나라 고교생들이 매우 높은 평점을 받았다는 뜻밖의 결과였다. 온통 공교육이 붕괴 위기라는 절망적 진단에만 익숙해온 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허구한 날 야단만 맞던 어린이가 갑자기 칭찬을 받고 어찌할 줄 모르는 형국이다.
하지만 ‘봐라, 평준화가 우째 나쁜고?’보다는 평가의 적실성에 의문을 표하는 신문기사가 더 많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제도 교육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전제 아래 평준화 제도를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질타하는 게 하나의 상식으로 통용돼왔으니 어떻게 갑자기 논조를 바꿀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1974년 최초의 ‘뺑뺑이’ 선발 방식으로 명문 고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역시 내가 입학하기 3년 전부터 추첨제가 시행되어 입시 지옥 없이 중·고교에 진입한 셈이다. 중학교 때 석차는 비교적 중·상위급에 속했지만 고교 때 그놈의 ‘문학병’이 들어 거의 바닥을 헤맸다. 재수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적인 개가다. 그 막막했던 재수 시절, 거의 날마다 찾아온 절망감대로 대학을 포기했더라면 이 학벌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아찔한 일이다.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개탄하는 사람들에게, OECD의 공신력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녕 평준화 교육, 정확히 말해 사회 계층 허물기 교육이 문제의 초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찾아다닌 연말 송년회 참석자들의 면면을 한번 보시라. 현직 검사에게 역시 현직 사채업자가 ‘임마 점마’ 하며 킬킬대는 자리에 어울려 놀아보시라.
내게는 대학원 시절 짧은 고교 교사 경험이 있다. 학교 좌우로 호화주택과 슬럼가가 함께 있는 특이한 지역이었다. 그곳 학생들의 학적부를 들여다보며 부르르 온몸을 떨었던 젊은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성적도 성격도 외모도 가정형편 순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확신을 가졌다. 섞여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억지로라도 섞어놔야 한다. 목수 아들과 대기업 임원 아들이 설사 질시의 다툼을 벌일지라도 한 반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서로를 알아야 한다. 엘리트 배출보다, 전반적인 학력 제고보다,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고교 문예반 행사 때 기자재가 필요해서 1학년생 후배에게서 빌린 일이 있다. 행사가 끝나고 고마워서 라면을 사줬다. 그땐 뉘 집 자식인지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 그 아이는 국내 몇 대 재벌 그룹 총수로 신문에서 얼굴을 본다. 그때 그와 같은 반이어서 섭외해준 문예반 후배 녀석은 요즘 오토바이 배달을 다닌다. 나는 지금 시사 지면에 그 이야기를 쓰고 있다. OECD 조사 하나를 갖고 희희낙락하거나 남을 설득하려 들지는 않겠다. 다만 당신이 상위 10% 이내의 엘리트가 아니라면 평준화 교육의 정신을 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