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광고물.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노 대통령은 이미지의 최대 피해자로 전락했다. 노 대통령이 3월12일, 탄핵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이미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능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과거 정권처럼 부정부패를 저지른 흔적도 없다. 그럼에도 탄핵 대상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연세대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심리 연구실 황상민 교수(심리학과)는 “지난 1년 동안 노 대통령은 바로 이 이미지의 희생양이었고, 이 때문에 탄핵의 위기에까지 몰렸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이미지의 포로가 된 것은 집권 초기, 평검사들과의 아슬아슬한 대화로 국정을 시작한 직후부터였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측근 비리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과장 왜곡 보도한다며 화를 냈다. 느닷없이 재신임을 묻겠다며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도 했다. TV 토론 국정연설 기자회견 등 공개된 장소에서 흥분하기도 했고, 거꾸로 차갑고 굳은 얼굴을 보이기도 했으며, 때로 눈물을 보이는 등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 대통령은 화내는 대통령, 안정감 없는 대통령, 무능한 대통령, 개혁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됐고, 그 이미지가 탄핵의 한 축으로 작용했다는 것.
최근 청와대가 뒤늦게 노 대통령의 이미지 통합관리(PI·President Identity)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1월18일 국회에서 “대통령의 이미지 메이킹과 국정철학 정리를 위해 심리적·통계적 접근법 등 다양한 연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며 이를 확인했다. 청와대가 PI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은 몇몇 학자들의 이미지 분석 보고서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광고물.
대통령 비서실은 지난해부터 몇몇 학자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와 노 대통령 개인의 이미지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다양한 심층 심리분석을 한 전문가들의 이미지 분석 결과 대통령의 긍정적 이미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황 교수팀이 2004년 10월 분석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탄핵 전인 1월 조사 때보다 긍정적 이미지가 훨씬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표 참조).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제시한 뒤 노대통령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물은 이 분석 작업에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개혁 연출가, 인간적 리더, 무능한 인간, 비정한 리더, 포퓰리스트, 독불장군형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했던 노 대통령의 이미지를 버리고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반면 개혁 연출가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을 개방적이면서 변화와 개혁을 중시하는 리더로 인식했다. 황 교수는 “이 이미지를 가슴에 담고 있는 국민들은 전체 국민의 10~15%로, 노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그룹”이라고 평가했다.
이 지지그룹과 대비되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이미지를 독불장군형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룹. 이 그룹은 노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특성을 가졌으며, 전체 국민 가운데 15% 내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황 교수는 “보통 사람들은 대통령감에 대한 기준과 기대치가 있는데, 안티 그룹은 노 대통령이 이 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이런 이미지를 갖는 이유는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리더십의 이미지가 노 대통령에게서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적극적인 지지그룹과 안티그룹은 노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떤 행동을 해도 이미지를 바꾸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이처럼 추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 피로증과 코드 정치, 불황 등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투영시킨 요인은 많다. 그 가운데 자기를 이해시키려는 노 대통령의 노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된다. 황 교수는 “노 대통령이 필요 이상으로 이상적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지금 ‘돌격 앞으로’ 할 때가 아니라는 게 많은 국민의 생각이지만, 청와대는 ‘나의 정치 이념과 소신은 이런 것’이란 전제 아래 자기 길을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식이다.
황상민 교수.
황 교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말과 행동을 통한 ‘신뢰’라고 주장한다. 황 교수의 11월 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이 70%에 달했다. 반면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은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오히려 국민은 신뢰가 없을 경우 실제보다 더 큰 불신과 거부감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령 노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경제 사정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
황 교수는 특정인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인식하는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각자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정치적 처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이미지를 그 사람의 본질로 확신한다.
황 교수는 “통계학상 노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지지도가 9%에서 45%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최근 청와대가 추진하고 있는 PI 작업과 관련해 “이미지 통합 관리는 화장술과 다르다”며 “잘못하면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