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의 빈민가에 농구 실력이 출중한 두 흑인 소년이 있었다. 이 둘은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꿈꿨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절반이 넘는 또래 흑인들이 교도소에 가거나 총기에 맞아 숨지는 도시 슬럼가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꿈이기도 했다.
윌리엄 게이츠(사진 오른쪽)와 아서 아지. 이들에게 NBA는 가난과 인종 및 계급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의 높은 벽 너머에 있는 무지개였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스티브 제임스는 두 소년의 삶을 6년(250시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고, 1994년 ‘후프 드림스’라는 제목의 영화로 세상에 내놓았다.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는 그 해 미국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10년.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영화 10주년 기념식에서 상봉한 이 두 사람의 현재를 소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사람은 미국 고교 농구선수 76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진출한다는 NBA에 진출하지 못했다.
현재 33살의 게이츠는 95년 농구 장학생으로 마르케트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탈출했다’. 그러나 3년간 경기당 평균 3.7점을 기록한 뒤 농구를 그만뒀다. 방송 학위로 99년 대학 졸업 뒤 맥도널드 점원, 식료품 가게 점원, 해충 박멸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교회 성직자가 돼 지난해 자신이 살던 빈민가 ‘카브리니 그린’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곳에서 목회 활동을 겸해 빈민 아동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1살의 아지는 아칸소 주립대학에 입학한 뒤 최근까지 농구 2부리그에서 뛰었고 가끔 덩크슛 대회에도 참가하지만, NBA의 꿈은 못 이뤘다. 그는 영화로 알게 된 사업가들을 끌어 모아 불우 아동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아서 아지 롤 모델 재단’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후프 드림스 스포츠웨어’라는 꽤 규모 있는 의류회사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이츠는 그간의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후프 드림스’는 농구가 아닌, 삶에 대한 영화였어요. 지금도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과거의 꿈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죠.”
윌리엄 게이츠(사진 오른쪽)와 아서 아지. 이들에게 NBA는 가난과 인종 및 계급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의 높은 벽 너머에 있는 무지개였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스티브 제임스는 두 소년의 삶을 6년(250시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고, 1994년 ‘후프 드림스’라는 제목의 영화로 세상에 내놓았다.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는 그 해 미국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10년.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영화 10주년 기념식에서 상봉한 이 두 사람의 현재를 소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사람은 미국 고교 농구선수 76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진출한다는 NBA에 진출하지 못했다.
현재 33살의 게이츠는 95년 농구 장학생으로 마르케트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탈출했다’. 그러나 3년간 경기당 평균 3.7점을 기록한 뒤 농구를 그만뒀다. 방송 학위로 99년 대학 졸업 뒤 맥도널드 점원, 식료품 가게 점원, 해충 박멸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교회 성직자가 돼 지난해 자신이 살던 빈민가 ‘카브리니 그린’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곳에서 목회 활동을 겸해 빈민 아동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1살의 아지는 아칸소 주립대학에 입학한 뒤 최근까지 농구 2부리그에서 뛰었고 가끔 덩크슛 대회에도 참가하지만, NBA의 꿈은 못 이뤘다. 그는 영화로 알게 된 사업가들을 끌어 모아 불우 아동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아서 아지 롤 모델 재단’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후프 드림스 스포츠웨어’라는 꽤 규모 있는 의류회사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이츠는 그간의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후프 드림스’는 농구가 아닌, 삶에 대한 영화였어요. 지금도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과거의 꿈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