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원 안모씨(30)는 정년퇴직한 아버지에게 “월 100만원씩 용돈을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아버지의 퇴직금 중 2억원을 빌렸다. 그 돈을 굴려 부모님댁 생활비도 보태고 자신도 ‘한몫’ 잡겠다는 심산이었지만 막상 돈을 넘겨받고 나니 이만저만 고민되는 게 아니었다. 은행에 넣어놔 봐야 돌아오는 이자는 고작 월 50만원 남짓이고, 부동산 시장은 심심하면 대책이 나오는지라 상투 잡는 건 아닌지 영 찜찜했다.
투자 고민으로 밤잠까지 설치던 안씨는 10월 초 대학 동기 모임에 나 갔다 솔깃한 투자조언을 들었다. 경제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친구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리츠’에 투자하라고 추천한 것. 예상수익률이 10%가 넘는 상품도 있다는 설명에 안씨는 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런데 리츠는 그가 처음 들어본 투자상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망설이던 안씨가 입을 뗐다. “리츠가 도대체 뭔데?”
선진화한 부동산 투자제도인데도 활성화 안 돼
과자이름 같기도 하고, 호텔이름 같기도 한 리츠는 2001년 7월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이다. ‘Real Estate Invest Trusts’의 첫 글자를 따 ‘REITs’라는 이름이 붙었다. 리츠를 이용하면 수십억원 이상을 소유한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쌈짓돈으로 수백억원대의 빌딩에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100억원짜리 빌딩을 사려면 어떤 식으로든 100억원을 구해와야 했다. 하지만 리츠는 빌딩을 근거로 주식을 발행해 수십만명의 주주가 공동으로 빌딩을 소유한다. 발행된 주식은 액면가(5000원) 단위로 쪼개져 사고 팔게 되니 배타적 권리인 부동산 ‘물권’이 쪼개져 채권(화폐)처럼 유통되는 것이다. 부동산이 소유의 개념에서 유통의 개념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을 거라던 리츠의 장밋빛 청사진은 2년여의 기간 동안 송두리째 사라졌다. 부동산 시장은 펄펄 나는데 부동산 투자상품인 리츠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있는 것. 도입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일반에겐 여전히 낯설고 시장의 반응은 영 떨떠름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7차례 진행된 리츠 일반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는 2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투자하는 사람들만 계속 투자하고 일반 투자자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부동산 시장의 구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선진화한 부동산 투자제도’인 리츠가 활성화되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리츠가 제대로 정착되면 극소수 부유층에게 부동산 소유가 편재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으며 부동산 현황, 가격, 임대료, 과세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돼 부동산 시장이 ‘투기’가 아닌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가 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건국대 이현석 교수(부동산학)는 “리츠가 활성화하면 부동산의 흐름이 단기투자에서 장기투자로 조금씩 옮아가게 돼 비상식적인 부동산 값 상승을 막을 수 있다”면서 “하루빨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교부 관계자도 “리츠는 유동자금의 흡수,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의 안정, 투기 수요를 투자 수요로 유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서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의 반대로 관련 규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리츠는 또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기능도 할 수 있다. 리츠의 투자대상에 부동산개발사업 대출투자가 포함되는 등 자산운용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이는 부동산 시장의 공급 확대로 이어진다. 오용현 메리츠증권 부동산팀장은 “리츠는 초저금리로 고통받고 있는 여유자금 투자자의 숨통을 터주는 동시에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부동산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금리나 세금 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리츠를 활성화해 공급을 늘리는 방법은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리츠는 왜 일반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을까. 리츠는 기업 구조조정용 부동산만 구입하는 기업구조조정(CR)리츠와 일반리츠로 나뉜다. 현재 상장된 6개의 CR리츠는 적게는 2%에서 많게는 4%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을 감안하면 최고의 금융상품인 셈이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들이 주로 쥐고 있어 유통이 잘 되지 않는 데다, 기업구조조정용으로 나온 부동산만 투자대상으로 삼고 있어 리츠의 본 목적을 실현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리츠의 꽃인 일반리츠는 지나치게 높은 최저자본 요건(500억원)과 법인세, 취득·등록세 등에 대한 조세당국의 지원책 미비 등으로 수익률 확보가 어려워 회사 설립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일반리츠의 수익률은 은행 정기예금 이자에도 미치기 어려운 터라 펀딩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CR리츠에는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준 반면 일반리츠에는 취득세 50% 감세 혜택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지난해부터 일반리츠 활성화를 위해 현행 500억원으로 돼 있는 초기자본금을 250억원으로 낮추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재경부가 건교부의 정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규제 완화를 위한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은 앞으로도 어려울 전망이다.
재경부는 부실업체의 난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양산되고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논리로 리츠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경부의 논리를 모기지제도(장기주택담보대출)에 그대로 적용하면 내년 말 도입을 목표로 재경부가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모기지제도 역시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재경부는 또 리츠에 대한 규제 완화엔 반대하면서도 다른 쪽에선 리츠와 비슷한 금융상품 도입을 준비해왔다. 투신업계에 뮤추얼펀드 형식(리츠 형식)의 부동산투자신탁 상품 판매를 허용해주려고 했던 것. 이 같은 재경부의 움직임에는 “죽 쒀서 뭐 준 꼴”이라며 거꾸로 건교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리츠와 유사한 상품이 등장할 경우 동일한 상품에 대해 규제하는 법률이 달라 법률간 중복 및 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건교부의 논리다.
뮤추얼펀드형 부동산투자신탁 상품 판매 허용 여부를 가늠할 자산운용업법 관련 조항은 건교부의 반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경부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투신업계의 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경부와 건교부가 자산운용업법, 부동산투자회사법을 놓고 2년 동안 밥그릇 싸움을 하는 통에 리츠가 바닥을 기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리츠는 연기금, 뮤추얼펀드와 함께 미국인들의 주요 노후자금 마련 수단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초년엔 모기지제도를 이용해 ‘장기’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중년엔 리츠를 비롯한 뮤추얼펀드로 ‘장기’투자에 나선다. 더 나이가 들면 아예 집을 투자회사에 넘기고 대신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기도 한다. 투자는 ‘단기’로, 그것도 대박을 터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에게 리츠는 어울리지 않는 투자상품인지도 모르겠다. ‘강남에 입성해, 엉덩이에 돈을 깔고 살아야’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세상 아닌가.
투자 고민으로 밤잠까지 설치던 안씨는 10월 초 대학 동기 모임에 나 갔다 솔깃한 투자조언을 들었다. 경제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친구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리츠’에 투자하라고 추천한 것. 예상수익률이 10%가 넘는 상품도 있다는 설명에 안씨는 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런데 리츠는 그가 처음 들어본 투자상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망설이던 안씨가 입을 뗐다. “리츠가 도대체 뭔데?”
선진화한 부동산 투자제도인데도 활성화 안 돼
과자이름 같기도 하고, 호텔이름 같기도 한 리츠는 2001년 7월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이다. ‘Real Estate Invest Trusts’의 첫 글자를 따 ‘REITs’라는 이름이 붙었다. 리츠를 이용하면 수십억원 이상을 소유한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쌈짓돈으로 수백억원대의 빌딩에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100억원짜리 빌딩을 사려면 어떤 식으로든 100억원을 구해와야 했다. 하지만 리츠는 빌딩을 근거로 주식을 발행해 수십만명의 주주가 공동으로 빌딩을 소유한다. 발행된 주식은 액면가(5000원) 단위로 쪼개져 사고 팔게 되니 배타적 권리인 부동산 ‘물권’이 쪼개져 채권(화폐)처럼 유통되는 것이다. 부동산이 소유의 개념에서 유통의 개념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을 거라던 리츠의 장밋빛 청사진은 2년여의 기간 동안 송두리째 사라졌다. 부동산 시장은 펄펄 나는데 부동산 투자상품인 리츠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있는 것. 도입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일반에겐 여전히 낯설고 시장의 반응은 영 떨떠름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7차례 진행된 리츠 일반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는 2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투자하는 사람들만 계속 투자하고 일반 투자자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부동산 시장의 구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선진화한 부동산 투자제도’인 리츠가 활성화되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리츠가 제대로 정착되면 극소수 부유층에게 부동산 소유가 편재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으며 부동산 현황, 가격, 임대료, 과세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돼 부동산 시장이 ‘투기’가 아닌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가 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건국대 이현석 교수(부동산학)는 “리츠가 활성화하면 부동산의 흐름이 단기투자에서 장기투자로 조금씩 옮아가게 돼 비상식적인 부동산 값 상승을 막을 수 있다”면서 “하루빨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교부 관계자도 “리츠는 유동자금의 흡수,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의 안정, 투기 수요를 투자 수요로 유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서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의 반대로 관련 규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리츠는 또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기능도 할 수 있다. 리츠의 투자대상에 부동산개발사업 대출투자가 포함되는 등 자산운용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이는 부동산 시장의 공급 확대로 이어진다. 오용현 메리츠증권 부동산팀장은 “리츠는 초저금리로 고통받고 있는 여유자금 투자자의 숨통을 터주는 동시에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부동산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금리나 세금 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리츠를 활성화해 공급을 늘리는 방법은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위)와 서울 중구 중림동에 세워질 브라운스톤 서울.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유동자금이 주상복합 아파트에 몰리고 있다.
리츠의 꽃인 일반리츠는 지나치게 높은 최저자본 요건(500억원)과 법인세, 취득·등록세 등에 대한 조세당국의 지원책 미비 등으로 수익률 확보가 어려워 회사 설립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일반리츠의 수익률은 은행 정기예금 이자에도 미치기 어려운 터라 펀딩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CR리츠에는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준 반면 일반리츠에는 취득세 50% 감세 혜택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지난해부터 일반리츠 활성화를 위해 현행 500억원으로 돼 있는 초기자본금을 250억원으로 낮추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재경부가 건교부의 정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규제 완화를 위한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은 앞으로도 어려울 전망이다.
재경부는 부실업체의 난립으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양산되고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논리로 리츠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경부의 논리를 모기지제도(장기주택담보대출)에 그대로 적용하면 내년 말 도입을 목표로 재경부가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모기지제도 역시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재경부는 또 리츠에 대한 규제 완화엔 반대하면서도 다른 쪽에선 리츠와 비슷한 금융상품 도입을 준비해왔다. 투신업계에 뮤추얼펀드 형식(리츠 형식)의 부동산투자신탁 상품 판매를 허용해주려고 했던 것. 이 같은 재경부의 움직임에는 “죽 쒀서 뭐 준 꼴”이라며 거꾸로 건교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리츠와 유사한 상품이 등장할 경우 동일한 상품에 대해 규제하는 법률이 달라 법률간 중복 및 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건교부의 논리다.
뮤추얼펀드형 부동산투자신탁 상품 판매 허용 여부를 가늠할 자산운용업법 관련 조항은 건교부의 반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경부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투신업계의 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경부와 건교부가 자산운용업법, 부동산투자회사법을 놓고 2년 동안 밥그릇 싸움을 하는 통에 리츠가 바닥을 기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리츠는 연기금, 뮤추얼펀드와 함께 미국인들의 주요 노후자금 마련 수단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초년엔 모기지제도를 이용해 ‘장기’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중년엔 리츠를 비롯한 뮤추얼펀드로 ‘장기’투자에 나선다. 더 나이가 들면 아예 집을 투자회사에 넘기고 대신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기도 한다. 투자는 ‘단기’로, 그것도 대박을 터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에게 리츠는 어울리지 않는 투자상품인지도 모르겠다. ‘강남에 입성해, 엉덩이에 돈을 깔고 살아야’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