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은 곰의 아픈 전설이 살아 있는 곰나루.
민병욱 동아일보 출판국장이 쓰고 서양화가 박수룡 화백이 그린 ‘들꽃길 달빛에 젖어’는 박화백의 엄숙한 말이 발단이 됐다. 이런 ‘아이 같은 애국심’이 두 사람을 대한민국의 산과 강, 들과 바다를 헤집고 다니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푸근한 황금빛 넘실대는 땅끝 해남에서 시작해 하동포구 80리, 단양팔경, 경북 영덕, 서울 인사동과 한강, 그리고 북녘 땅 금강산까지 20곳을 샅샅이 누볐다.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기자로서의 자존심이 대단한 민국장이 절경의 아름다움을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내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중견 서양화가인 박화백은 100여점의 화려한 그림으로 글에 생명력을 더했다.
절경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실 이들이 포착한 정겨운 사람살이다. 하루에 진국 30그릇만을 내는 해남 읍내 허름한 추어탕집 주인 할머니는 음식맛이 좋다는 손님의 칭찬에 “인자 허리가 아푼께 더는 탕을 못 끓여내지라”라며 짐짓 딴소리를 하고, 독재의 칼날을 피해 다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거기에 평생을 바친 강원도 평창의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은 “난 말이요, 사실 선무당이오’라며 자신을 낮춘다.
‘그래, 시골길을 돌다 보면 이런 생각지도 않은 삶도 만나게 마련이지. 나서거나 교만하지 않으며 정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조우할 것을 우린 길 떠나기 전에 어디 생각이나 해봤던가.’
기자도 화가도 산하의 아름다움 앞에서 “글과 그림을 무딘 붓과 펜으로 감당 못할 때 애꿎은 술만 죽였다”며 뒤로 나앉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발품 팔아 국토의 부드러운 속살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고풍스럽고 시적인 묘사, 천연 색감의 그림이 눈길을 잡아챈다.
이 책은 2002년 1월부터 월간 ‘신동아’에 연재된 ‘화필기행-붓 따라 길 따라’가 토대가 됐다. 그러나 실과 바늘처럼 함께 다니던 이들에게 지난 여름 위기가 닥쳤다. 박화백에게 깊은 병이 든 것이다. 박화백은 하루에도 몇 번씩 혼수상태에 빠지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 무사히 수술을 끝내고 이제는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민국장은 책 머리말에서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그림에 혼신을 쏟아 부은 그가 자랑스럽다. 병을 이기고 다시 떨쳐 일어날 것을 믿는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