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야 ‘닮은꼴’ 간사장 대격돌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왼쪽)과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간사장.

일본 열도가 11월9일로 예정된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선거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각 정당의 수뇌부는 북으로는 홋카이도에서 남으로는 규슈까지 일본 전국을 누비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이상 일본 정치를 지배해온 자민당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자유당과의 합당으로 세를 불린 제1야당 민주당이 일으키는 바람도 만만치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50% 이상의 유권자가 자민당이 재집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민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도 20~30%에 이른다.

인기 면에서 아베 간사장 우세

아사히신문 정치부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는 “1980년대 이후 치러진 선거 중 이번이 가장 재미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여권과 야권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자민당과 민주당 간사장 간 인물 대결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본 정당의 간사장은 한국으로 치면 사무총장에 해당한다. 정당의 자금과 조직을 관장하고 선거철에는 공천작업의 실무를 책임진다. 당의 살림꾼이라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최근 일본 정가에서 파벌이 약화되면서 과거 파벌 보스의 권한까지 넘겨받아 실제 파워는 일본 정당의 간사장 쪽이 훨씬 세다.



일본의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간사장은 대(對)북한 강경 발언으로 한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관방 부장관. 최근 대도시 젊은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지지도가 오르고 있는 민주당의 선거운동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이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다. 우선 일본 정계의 세대교체 분위기에 힘입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간사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올해 49세인 아베 간사장은 중의원 3선 의원이고, 그보다 한 살 많은 오카다 간사장은 중의원 4선 의원 출신이다. 경력과 연조(年條)를 중시하는 일본 정계에서 50세 안팎의 3선, 4선 의원이 사실상 당 서열 2위인 간사장을 맡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으로 여성 팬이 많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문가 출신이며, 차차기 총리에 대한 포부를 공개석상에서 털어놓을 만큼 정치적 꿈이 크다는 점도 닮았다.

아베 간사장은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당내 기반 강화와 총선 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꺼내든 회심의 카드다.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아들이자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인 그는 일본 정계의 보수우경화 흐름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신보수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11월 총선거를 앞두고 선거 유세에 나선 오카다 민주당 간사장(아래 가운데)과 아베 자민당 간사장(맨 아래사진).

기업가 집안 출신인 오카다 간사장은 명문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통산성 관료로 일하다 정계에 진출한 케이스. 지난해 말 민주당 대표 경선에 당내 소장파의 리더 격으로 출마해 간 나오토 대표와 대결을 벌여 간사장을 맡았다.

개인적인 인기만 놓고 보면 단연 아베 간사장 쪽이 우세하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의혹이 불거진 뒤 대북 강경 발언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그는 차기 총릿감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에 이어 3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TV 토크쇼에서 퇴근 후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 소개되자 해당 제품이 곧바로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자민당의 신진 후보들은 아베 간사장과 함께 찍은 포스터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하고 있을 정도.

반면 오카다 간사장은 정부 요직에서 활동할 기회가 없었던 터라 개인적인 인기 면에서는 자민당의 라이벌에 미치지 못한다. 아베 간사장의 약진을 어떻게 보는지 소감을 묻자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국민들에게 어필한 게 큰 효과를 낸 것 같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두 사람 모두 ‘친한파’ 자처

오카다 간사장은 인기 면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자민당측에 간사장끼리 1대 1 정책토론을 벌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본인이 주도해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등 민주당의 선거공약을 내놓은 만큼 정책대결에서는 자신 있다고 자부하지만 아베 간사장측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양대 정당의 실세인 두 사람 모두 ‘친한파’를 자처한다는 점. 오카다 간사장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끔씩 만나 식사를 하면서 일본 정계의 동향과 민주당의 정책 등에 대해 설명한다. 기자가 9월 초에 만났을 때는 당시 한국 정치권의 이슈였던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가능성과 여권의 분열이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자세히 묻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비슷한 연배의 몇몇 한국 의원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며 이들의 진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민주당이 승리해 자신이 입각하게 되면 통상 분야를 맡아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경제협력의 새로운 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간사장도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 입장이지만 한국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부산과 정기 선박편이 오가는 시모노세키가 지역구여서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데다 외상을 지낸 선친 때부터 한국 정계와의 인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NHK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 ‘겨울소나타’(원제 겨울연가)에 푹 빠져 한국말을 배우는 데도 열성”이라며 자신도 한국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아베와 오카다. 두 젊은 간사장의 정치적 명암은 일단 이번 총선거 결과에 따라 갈리겠지만 이들이 향후 10여년간 어떤 형태로든 일본 정치의 주역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데는 일본 언론의 시각이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