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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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10분의 1 굵기 어떻게 잴까?”

과학 올림피아드 국가간 자존심 경쟁 … 과학도 축제 아닌 등위 연연 생각해볼 문제

  • 타이완=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news.co.kr

    입력2003-08-13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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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카락 10분의 1 굵기 어떻게 잴까?”
    책상 위에 놓인 것은 길이 4cm의 작은 금속막대와 건전지, 레이저포인터, 그리고 평범한 30cm자뿐. 학생들은 검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순간 당황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문제는 책상 위에 놓인 금속막대가 전압에 의해 변형되는 정도를 측정해야만 풀 수 있다. 4cm의 금속막대는 전압에 의한 팽창률이 다른 2개의 금속을 맞대어 붙여둔 바이메탈이기 때문에 전압을 가하면 미세하게 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주어진 실험조건에 따라 금속에 전압을 가하고, 그 금속의 휘는 정도를 측정하기만 하면 정답은 어렵지 않게 나올 법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과학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올림피아드에서 이렇게 쉬운 문제가 출제될 리 만무하다.

    학생들이 가득 들어찬 강당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십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변하는 금속의 변형률을 무슨 수로 측정한단 말인가. 머리카락 굵기(100㎛)의 10분의 1에 불과한 변화를 측정하라는 것은 막대자로 설악산 높이를 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

    영재들 창의력과 탐구능력 겨뤄

    그렇다면 문제를 출제하는 측에서 실수를 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 분명히 해결책은 있고, 그것을 도와줄 결정적 도구도 이미 학생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바로 레이저포인터. 미세하게 변하는 금속의 팽창률을 센티미터 자로 측정하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교수 할아버지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금속에 부딪혀 굴절된 빛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머리카락 10분의 1 굵기 어떻게 잴까?”

    2003년 국제과학올림피아드 공동 발대식.

    레이저포인터를 금속막대 끝에 조준해 반사된 빛이 벽에 부딪히도록 해서 그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금속에 전압을 가한 뒤 똑같은 방법으로 측정하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 차이를 측정한 뒤 빛의 반사각을 고려해 계산하면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변화도 측정 가능한 것이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레이저포인터가 장난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문제는 1997년 캐나다 서드베리에서 열린 제28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실험시험에 실제 출제된 것이다.

    당시 학생들을 인솔해 대회에 참가했던 김두철 교수(서울대 물리학과)는 이 문제가 물리올림피아드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멋진 문제라고 말한다. 전압을 가하면 금속이 미세하게 늘어난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물리이론과 거울의 각도가 약간만 변해도 반사된 빛의 진행방향은 크게 변한다는 상식을 이용해서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문제였다는 것이 김교수의 설명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이라면 책상 위에 놓인 레이저포인터로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가 힌트를 얻을 것이고, 문제를 풀면서 과학자로서의 자질을 배울 것이라는 게 당시 출제위원들의 의도였다고 한다. 그 계산대로 실제 많은 학생들이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출해 대회에 동행한 학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올림피아드에 출제되는 문제는 개최 시기나 장소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나 특성이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창의성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머리카락 10분의 1 굵기 어떻게 잴까?”

    8월2일부터 11일까지 타이완에서 열린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개회식 이후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8월2일부터 11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물리올림피아드 대회에서는 반도체 강국인 대만답게 압전소자(압력에 의해 전압이 발생하는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의 원리를 응용한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확실히 미래 과학기술을 이끌 리더들이 참가하는 대회다운 문제들이다.

    과학올림피아드는 대학생을 제외한 과학영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학적 창의력과 탐구능력을 겨루는 두뇌 올림픽. 한 국가의 기초과학 수준 및 미래 과학기술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회로 최근에는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의 자리가 되고 있다.

    과학올림피아드의 모체는 1894년 헝가리 수학올림피아드다. 이후 1959년 루마니아에서 열린 수학대회부터 국제대회로 공인되었으며 화학(1968년, 체코) 물리(1969년, 폴란드) 정보(1989년, 불가리아) 생물(1990년, 체코) 관련 대회가 차례로 열려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1988년 수학올림피아드를 시작으로 1992년 물리 화학 정보, 1998년 생물 분야에 참가하는 등 매년 대표단을 파견하고 있다. 올해는 새롭게 시작된 천문올림피아드에도 참가해 과학 올림피아드 전 분야에서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

    우리 학생들은 각종 올림피아드 가운데 5개 분야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생물올림피아드의 경우에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지켰을 정도로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중이다. IT(정보기술) 강국답게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우리 학생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참가 초반에만 약간 고전했을 뿐 97년 이후에는 줄곧 10위권의 성적을 지켰다.

    오랜 역사만큼 참가국 수도 많고 경쟁도 치열한 수학 물리 화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수학은 83개국이 참가한 2001년 대회에서 4위를, 물리는 2002년에 2위를 차지했다.

    우리 대표단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의 헌신적인 교육, 정부의 지원 등 3박자가 맞은 덕분이다. 매년 올림피아드 참가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과학재단(이사장 김정덕)의 이원근 과학교육진흥팀장은 “과학올림피아드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과학의 매력을 만끽하도록 돕는 기회인 동시에 국제감각을 익히게 하는 기회”라면서 대회에서 거둔 성적보다 참가 그 자체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올림피아드에 참가할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은 분야별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국내에서 치러지는 대표선발 시험격인 한국과학올림피아드(물리 화학 생물 정보는 연 1회, 수학은 연 2회)를 통해 결정된다. 이 대회 상위 입상자에게 여름과 겨울에 열리는 과학캠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최종 대표단은 이 캠프 기간과 통신 교육 기간에 이루어지는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 중에서 다시 추려 선발한다.

    물리·화학 올림피아드 개최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치러지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의 경우 약 2400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데, 이중에 6명이 최종 국가대표가 되므로 어림잡아 4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 치열한 경쟁에도 매년 응시자의 수가 늘어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학생들이 이처럼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기를 열망하는 데에는 극성스런 대학입시 문화도 한몫한다. 소위 국내 톱클래스의 대학들이 모두 국제대회 입상자들을 입학전형에서 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동상 이상 수상자에 대해 단과대별로 전형시 가산점을 주고 있고, 한국과학기술원은 참가자 전원에게 특례입학자격을 준다. 포항공대와 연세대 고려대도 동상 이상 수상자에 대해 특례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수상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연구장려금도 받는다. 금메달 수상자에게는 대학 재학기간 동안 학기당 120만원, 은메달 수상자에게는 100만원, 동메달 수상자에게는 80만원이 각각 지급된다.

    이 때문에 순수한 올림피아드가 대학 진학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한국과학올림피아드 참가 학생 중 상당수가 학교 교과 학습은 뒷전으로 하고 올림피아드 준비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일선 교사들의 푸념은 우리의 뒤틀린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미 사설 학원에 경시대회 특별반이 있고 학생들은 올림피아드 기출문제나 미국 대학원 시험문제풀이에 전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한 축제의 개념이 강한 올림피아드에서 지나치게 국가 등위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 정서도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올림피아드를 미인대회 정도의 수준으로이해한다.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 대회에서 한 개 학교나 지방에서 대표단을 구성했던 것에서도 이 대회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저 자국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 속에서 학생들의 수준을 가늠해 교육에 반영하는 것이 선진국들이 올림피아드를 대하는 태도다. 물론 최근에 선진국들도 보다 우수한 학생을 파견하는 등 변화가 포착되고는 있지만, 축제라는 근본 개념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2004년 포항에서 물리올림피아드를 개최하고 2006년에는 화학올림피아드도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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