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자원부가 주최한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폴 로머 교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소로우가 칭송을 아끼지 않는 폴 로머 교수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주창한 사람이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의 미국인’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선정했고, ‘뉴스위크’는 ‘새로운 세기를 위한 100인’에 그를 포함시켰는데, 그는 아직 ‘40대 청년’이다.
-신성장이론은 무엇이고,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통적 경제이론은 기계, 토지 등 뭔가 만질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이들 자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반면 인류는 계속 성장해왔다. 기존 경제학으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끊임없는 발명과 기술개발 등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가치가 창조돼온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의 경제학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신성장이론이다.
민간기업은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제품화하여 그 대가를 받게 되는데, 당장 제품화할 수 없거나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아이디어도 계속 개발되어야 한다. 후자의 아이디어는 대학을 통해 개발돼야 하는데, 그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때 그 효용이 커진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누가 아이디어를 개발할 것인가. 때문에 정부보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정의에 대해 좀더 분명히 말해달라.
“여기 구리와 주석이 있다고 하자. 이 둘을 어떻게 섞어야 좋은 메달을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이 바로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좋은 제도 안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시장제도만으로는 이런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나.
“미국의 시스템이 참고가 될 것이다. 미 정부는 대학 연구자들을 지원한다.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는 연구자들의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연구자들이 제안하고 정부가 이 제안이 실현 될 수 있도록 보조금을 통해 지원한다.”
-한국의 대학연구지원 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인 과학, 수학 경시대회 결과를 보면 한국의 초·중·고 교육은 잘 이뤄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아직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각 나라의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필요한 기술 수준이 다르지 않나? 현재 한국은 후발국가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모든 나라가 미국식 제도를 갖출 수도 없고, 갖출 필요도 없는 게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간의 발전 경험을 참고해볼 때 엔지니어링 분야의 질을 더욱 높이는 게 효율적이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려 하기보다는 기존 기술을 적용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19세기 제약 분야의 세계 최고 강자는 영국과 독일이었다. 이때 미국이 MIT를 세웠고 화학공학 과정을 신설했다. 여기서 당시 선진국의 기술을 어떻게 생산 과정에 적용시킬지를 연구했다. 이후 미국은 영국과 독일을 앞지를 수 있었다. 한국에도 이러한 경험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모든 나라가 대학 연구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렇다면 보조금의 양이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양을 늘리기보다도 기존 보조금이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공정하고 올바른 규칙이 실행될 수 있는 대학연구지원 제도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