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게임 포커 머니 200조원은 현금 3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결국 심심풀이용 게임이 진짜 도박으로 변질되었고, 이에 사이버 머니를 얻기 위한 네티즌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적어도 10만명 이상이 한게임 연관 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주민등록번호 수집 전문 해커)
“한게임 포커 머니 관련 사건은 사이버 범죄의 약방의 감초예요.”(일선 경찰)
국내 최대의 인터넷 게임사이트인 ‘한게임(www.hangame.com)’의 도박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 해킹한 불법프로그램 유포 등 사이버 범죄 대부분이 한게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표 참조).
게임의 현실감을 위해 각 업체에서 제공하는 사이버 머니 가운데 특히 한게임 머니가 주목받는 이유는 현금과 교환할 수 있는 환금성이 있기 때문. 현재 한게임 포커 머니 200조원이 사이버 암시장 소매가로 32만~35만원, 도매가로는 28만~32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고스톱 머니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런 거래는 한게임 채팅창, 게시판, 관련 카페, 교환사이트 등에서 이루어진다. 지난 1년간 일명 ‘오링프로그램’이라 불리는 한게임 머니 제조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를 제작 판매해온 김용남씨(31·가명)는 경찰에서 “불법프로그램 제작팀 6~8개, 대여팀 100여개, 사이버 머니 도매상 300여개, 소매상 2000여개가 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팀도 수백 개에 이른다는 게 김씨의 얘기다.
이런 거래로 인한 문제는 한게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00년부터 끊임없이 불거졌으나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개인정보 해킹을 부추기고 심지어 사이버 범죄의 돈세탁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박창규 경위는 “한게임 머니 거래는 과거 리니지 아이템 거래와는 달리 개인정보 유출 범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금과 교환 환금성 지녀
전국민이 애용하는 한게임 포커와 고스톱이 개인정보 유출의 원인이 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한게임에서는 하층민인 평민에서 초인인 신에 이르기까지 계급이 정해진다. 1조원 이상의 사이버 머니는 ‘신’에 이르는 기본요건. 그러나 포커의 특성상 아무리 큰 액수라도 단 한 판에 잃어버릴 수 있다. 일반회원의 보유 한도인 200조원이 순식간에 0원이 되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다. 그러나 평민에서 시작하여 1조원 이상을 버는 데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성질 급한 ‘겜티즌’들이 게임머니를 구하기 위해 사이버 암시장으로 몰려들면서 머니 중개상들이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났다.
머니 중개상들이 돈을 모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팀을 구성해 서로 연락을 하며 사기도박을 벌이는 일명 ‘짱구게임’. 둘째는 보다 전문적인 수법으로 한게임의 제도적 맹점을 이용하여 머니를 만드는 것. 게임용어인 ‘올인(All-In)’이 변형돼 붙여진 이름인 ‘오링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주민등록번호로 한게임 회원으로 등록해 게임을 자동으로 진행시키면 이 회원은 순식간에 ‘신’의 등급으로 올라가고 대출까지 받아 쓸 수가 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당 1조원의 머니를 만들 수 있는 것. 이에 따라 해커들은 한게임 연관산업의 원료인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암시장 법적 제재 현실적 어려움
서울 당산동에 사무실까지 두고 2000만원을 투자해서 머니 제조에 나섰던 김용남씨는 “주민등록번호를 100원에 사서 머니 1조원을 만들면 1500원에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머니로 충전된 ID는 한꺼번에 구매자에게 넘겨지거나 게임방에서 포커를 쳐서 잃어주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문제는 한게임 자체가 이런 사이버 도박시장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머니 중개상 이모씨(38)는 “한 주민등록번호로 ID를 3개씩 만들고 사이버 머니를 되팔 수 있는 시스템이 여타 업체와 달리 너무 허술해서 ‘꾼’들이 한게임으로 대거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한게임측은 아바타나 패키지를 구입하면 사이버 머니를 충전해 주고 있다. 한게임을 통해 1000여만원을 잃고 전문 머니상의 길로 들어선 한 30대 여성은 “40만원 정도면 합법적으로 200조원을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은 한게임측이 암시장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경찰관은 “한게임 이용자가 신용카드까지 사용해가며 거액을 잃는 등 한게임이 도박으로 인정될 만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터넷 업체가 제공하는 사이버 머니는 현실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는 데다 게임업체가 직접 환급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대해 한게임의 박성호 법무팀장은 “한게임 출범 초기부터 머니 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모니터링 요원을 증원하고 대기실 채팅창을 제거하는 등 꾸준히 노력해왔다”며 “그 결과 초기에 1조원에 4만원에 거래되던 고가의 사이버 머니를 현재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이버 머니는 디지털 기호에 불과하고 이를 이용한 거래는 한게임과 무관한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일 뿐이라는 게 박팀장의 주장이다.
현재 게임업체의 수익모델의 핵심은 아바타나 패키지를 구입하면 사이버 머니를 충전해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간접판매는 사이버 암시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의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영상물심의위원회조차 이 같은 도박성에 대해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한편에서는 일반화한 사이버 머니 간접판매를 규제할 경우 벤처산업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중의 도박중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벤처업계에 책임이 크지만 이미 거래가 시작된 이상 완전히 근절하기는 불가능한 만큼 이용자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