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방자치는 지금 평화적인 혁명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5000년 동안의 중앙집권체제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한국의 지방자치 정착을 돕는 데 전력해 온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서울사무소 로널드 마이나르두스 대표(46)는 5년간 머물렀던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신년 벽두인 1월2일, 필리핀 사무소를 맡기 위해 정들었던 한국을 떠난다. 나우만재단은 자유주의 사상을 모토로 설립된 독일의 정치재단으로,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난 96년부터 이 재단의 서울사무소 대표로 일해왔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난 5년간 한국의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와 공동으로 각종 세미나와 교육, 출판활동을 벌여왔다. 누구보다 우리 지방자치의 수준과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답게 한국 지방자치 문화에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중앙 정치인보다 지방 정치인이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와 존경을 받습니다. 주민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정치인이기도 하겠지만 지방의원들 스스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그의 지적에는 우리 지방의원들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지방의원들이 대부분 중소상공업자나 자영업자들로 구성되는 것은 이들이 지방정치 무대를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지방의회에 여성의원 비율이 5%밖에 안 되는 것은 ‘스캔들감’이라고 강조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방의원은 직업 정치인을 꿈꿀 것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얼마 전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고 재직중인 한양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마흔 넘어 처음 둥지를 틀었던 한국 생활 5년의 결실인 셈이다. 게다가 얼마 전 40대 중반 나이에 얻은 아들 사진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로 요즘 아들녀석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애들은 몇이며 몇 살이나 되었는지’ 호구 조사하듯 캐묻는 한국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정작 아이를 갖고 보니 그런 심정을 이해할 듯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이제 그가 다음 부임지인 필리핀에 있든, 독일로 돌아가든 한국은 그에게 ‘아들의 고향’이라는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의 지방자치 정착을 돕는 데 전력해 온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서울사무소 로널드 마이나르두스 대표(46)는 5년간 머물렀던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신년 벽두인 1월2일, 필리핀 사무소를 맡기 위해 정들었던 한국을 떠난다. 나우만재단은 자유주의 사상을 모토로 설립된 독일의 정치재단으로,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난 96년부터 이 재단의 서울사무소 대표로 일해왔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난 5년간 한국의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와 공동으로 각종 세미나와 교육, 출판활동을 벌여왔다. 누구보다 우리 지방자치의 수준과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답게 한국 지방자치 문화에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중앙 정치인보다 지방 정치인이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와 존경을 받습니다. 주민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정치인이기도 하겠지만 지방의원들 스스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그의 지적에는 우리 지방의원들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지방의원들이 대부분 중소상공업자나 자영업자들로 구성되는 것은 이들이 지방정치 무대를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지방의회에 여성의원 비율이 5%밖에 안 되는 것은 ‘스캔들감’이라고 강조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지방의원은 직업 정치인을 꿈꿀 것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얼마 전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고 재직중인 한양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마흔 넘어 처음 둥지를 틀었던 한국 생활 5년의 결실인 셈이다. 게다가 얼마 전 40대 중반 나이에 얻은 아들 사진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로 요즘 아들녀석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애들은 몇이며 몇 살이나 되었는지’ 호구 조사하듯 캐묻는 한국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정작 아이를 갖고 보니 그런 심정을 이해할 듯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이제 그가 다음 부임지인 필리핀에 있든, 독일로 돌아가든 한국은 그에게 ‘아들의 고향’이라는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